[Opinion] 경계짓다. [사람]

글 입력 2019.09.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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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기 인생의 절반을 중국에서 살았다. 중국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아빠와 결혼하여 이곳에 왔다. 지금 아빠와 엄마는 서로 무관한 관계인 것처럼 산다. 왜 아빠 같은 인간과 결혼했냐고 물은 적 없다. 아빠 이야기를 하면 엄마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굳이 그 그늘의 양상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엄마는 가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눈자위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허공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허공 너머를 감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건 고등학생 때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때였다. 엄마는 당장 중국으로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지 못했다.


나에겐 한국인으로써의 감각만 있다. 나를 이루는 성분 중 절반이 조선족임을 실감하거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문해 본 일은 거의 없다. 나는 당연히 한국인이었다. 국내인 으로써의 경로로 학업을 이수했고 군대도 다녀왔다. 중국어 구사는커녕 그곳의 음식마저 비려하는데.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다. 스스로의 지위를 의심하는 건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였다. 엄마의 공허한 표정은 나와 무관했다. 그건 엄마의 인생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후아유>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소수자의 삶을 묘사한 기록이지만 소수자가 돼 본 작가 본인의 서사기도 하다. 작가는 남편의 국가에서 결혼이주여성이 된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한 할아버지와 나란히 걷게 됐다. 느린 걸음이 비슷해서였다. 작가는 난데없이 “나는 닥터에요”하고 말한다. 노인은 당황하여 의사냐고 묻는다. 작가는 “아니오 나는 박사(phD)에요”하고 말한다. 노인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 빨리 걷고 작가는 운다. 부끄러워서 울었다.


나는 한 차례도 엄마의 인생을 헤아려 본 일 없었다. 거대하진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게 있었을 거다. 지금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 시간을 경력이란 그럴듯한 단어로 치환하기 위해 목숨 걸었을 테다. 실패가 누적 됐어도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그나마 전진한 여력을 얻었을 거다. 그렇게 전진하여 당도한 곳이 이곳이었다. 겨우 나를 낳았다. 지금 무리 없이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과 섞일 수 있는 건, 외국인, 비주류 따위의 단어로 무수히 호명됐기 때문이었다. <후아유>의 그 대목을 읽는 순간, 엄마가 짓는 표정도 그런 맥락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엄마 말고, 누군가의 아내 말고,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로 규정되고 싶었을 테다. 이곳에서 엄마는 무엇도 금방 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나와 무관한 인생이라며 경계 지었다. 내 엄마임에도.


 


‘다문화’는 대상화를 내포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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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규 작가는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수 년간 일한 경험과 스스로 결혼 이주 여성이 돼 영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아유>를 썼다. 연구원에서 그는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등의 사회 일원을 무리나 집단으로 간주하여 대면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한 인간으로 봐줄 것을 지속적으로 역설했다. 그러나 자기가 발언했던 말이 주류 집단의 안락의자에서 마음 편히 훈수 둔 것과 다를 게 없었음을 고백한다. 영국 남자와 결혼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남편의 국가에서 삶을 꾸려보고 나서다. 스스로 역시 다문화 가정 내 인간들을 연구 대상 정도로 간주한 것이었다고 성찰 한다. 3년 주기로 집행 되는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엔 작가의 가정도 포함됐다. 주기적으로 실행되는 국가 제도임이, 조사 대상자는 성실히 답해야 함이 조사지 앞에 명시돼 있었다. 과거의 그는 그런 실태 조사 등의 질문지를 짜는데 여념없었지만 이제 조사 대상으로 분류돼 본인이 만들었을 법한 질문에 응답해야 했다.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생활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귀하께서는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합니까?”

“귀하는 배우자와 다툰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해당되는 것을 모두 선택하여 주십시오.” (이향규, <후아유>, 창비교육, 2018, p55)


    

질문에 답하면서 그는 대상화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파악한다. 그는 가르치는 이였고 연구자였다. ‘대상’으로써 존재하는 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그들의 생리를 알고 있다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내 삶이 객관식 보기에 의해 규정되는 게 어떤 일인지, 자기 마음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표현해야 하는 기분을 그제서야 체감한다. 이와 유사한 질문이 7쪽에 걸쳐 나열돼 있다.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은 이 같은 질문에 주기적으로 답할 의무가 있었다. 1만 5천여 다문화 가구를 표본으로 2015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보고서는 결혼 이민자와 귀화자의 66.6%가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같은 해 같은 처부에서 진행한 ‘전국 가족 실태 조사’의 결과는 전체 국민 가운데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하는 비율이 51.2%였다. 조사 결과를 단순 비교했을 때 오히려 다문화 가정의 결혼생활 만족 비율이 전 국민의 결혼생활 만족 비율보다 높다. 그럼에도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은 3년 주기로 위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부의 정책 브리핑 웹사이트는 위 같은 결과를 게재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왜 내 주관적 감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하는가. 외국인과의 결혼 여부로 가정 내 지원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국제결혼’도 그냥 결혼으로 ‘다문화 가족’도 그냥 가족으로 간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저 문항들엔 모두 ‘귀하의 가정이 다문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란 언어가 괄호 쳐져 있는 셈이다.


그는 ‘다문화’란 언어에도 회의적이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언급처럼 다문화라는 이름은 사회적 낙인이 됐다. 그들은 편견과 차별의 일상을 영위할 것이며 때문에 ‘정상’ 가정을 이룬 우리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맥락이 ‘다문화’에 내포돼 있다. 미디어가 맥락 형성에 기여했다. 농촌이나 지방소도시에 사는 한국남자와 베트남, 중국, 필리핀 같은 국가의 여성이 결혼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이 횡행한 가정이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다문화가정이다. 국제결혼 가정 내 에서 성장한 혼혈인 들은 한국 주류언론의 혼혈인 보도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가 한국인 어머니에 의해 성장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한국 언론은 혼혈인들의 현재를 다룬 모습을 보도했다. 그리고 보도의 대부분은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가를 조명하는 식이다. 대안 모색의 시도를 배제한 채 거기서 혼혈인들은 동정의 대상 정도로 회자됐다. 우리사회가 당연히 시혜를 베풀어야 할 집단. 그럼으로써 ‘우리’라는 집단이 얼마나 견고하고 안전한 집단인지를 공고히 하는 셈이다. 박경태 교수가 쓴 <소수자와 한국사회>의 인터뷰어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언론은 언제나 우리를 불쌍하게 그려요. 제목도 ‘한국 속의 이방인’ 뭐 이런 식이고요. 제발 우리를 불쌍하게 그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007, p 248)


 

따지고 보면 다문화 가정이 아닌 가정은 없다. 문화가 생활양식이나 삶의 방식을 지칭하는 언어라면 모든 결혼은 각자의 문화에서 성장한 이들의 결합이고 때문이 다문화가정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상태. ‘다문화’엔 모든 가정이 포함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세대 간 생활양식 또한 판이한 시점에서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은 문화적 갈등을 대면할 수 있다. 우리 가정의 일상에 이미 문화적 갈등의 위험이 장착돼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문화’란 이름을 구사하며 다양성의 문제를 민족 사이의 문제로 제한한다. 다름의 구체적 면모를 확인하려도는 시도는 배격된다. 다름은 결국 겉모습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데올로기는 확산된다.


그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어처럼 보이지만 어떤 집단을 한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그 집단 내부의 다양한 색깔을 하나로 뭉뚱그린다. 그리고 이처럼 집단을 규정하는 언어는 결국 나와 당신이 다르다는 구별 짓기의 의식을 촉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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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사회 역학 박사 김승섭 교수는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2012년 여성 가족부에서 진행한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국제 결혼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을 조사했다. 결혼 이민자 1만 4,485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 했을 때 결혼 이주자 중 28.9퍼센트가 직장 및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 있고, 26퍼센트는 상점이나 음식점 등에서 차별을 겪은 적 있다고 응했다.


세계가치조사라는 설문조사가 있다. 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며 매 주기마다 같은 질문을 묻는다. 해당 국가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개설된 조사다. ‘다른 인종의 사람이 이웃으로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란 질문에 한국은 응답자 중 34.1퍼센트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시행된 조사며 ‘34.1퍼센트’의 비율은 거기 참여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34.1 퍼센트의 인간들은 타 인종이 어떤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든 용납할 수 없다는 거다. 그들이 배격 되고 차별 받아도 그것은 정당한 취급이라고 간주한다는 거다.


대한민국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격한 일반화가 아니다. 앞의 수치들은 그것을 반증 한다. 차별이 정당하다는 의식이 사회적 분위기로 정착한 사회는 주류의 힘이 그만큼 거대하다는 거다. 주류의 배려가 없으니 소수자의 목소리는 외침조차 되지 못한다. 아무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주류인 인간들은 스스로가 주류라고 여기지 않고, 차별은 더 거대해진다. 주류이냐 아니냐를 가름 하는 기준은 상대적이다. 여성보다 남성이, 흑인보다 백인이 주류인 것처럼 외국인의 처지에서 우리 민족은 주류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였던 이자스민 의원의 인터뷰 기사엔 악플이 대부분이다. 그가 입법한 정책의 기조, 실천 양상에 대한 비난은 없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신공격이 많다. 이는 우리가 단일민족국가임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사회이며 동시에 외양 때문에 그 종교의 교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계속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다문화’란 언어는 공허하다. 적응하지 못하는 주제에 뭐 그리 요구하는 게 많냐는 말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매번 첨부되는 주석이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에게 적응이란 무엇인가. 고작 이 땅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기억을 지우고 자신이 자란 사회를 부정해야 한다면 적응이란 게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는가. 우리 같은 인간도 비좁은 한국 땅을 벗어나면 소수자다. 언제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엄마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살아왔는지. 나는, 엄마의 인생은 나와 무관하다며 경계 지었다 ‘나’를 성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참고문헌

 

이향규, <후아유>, 창비교육, 2018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008

김순양, <한국 다문화사회의 이방인>, 집문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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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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