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의 합일을 목도하는, 도서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글 입력 2019.09.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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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예술 그리고 창작이라는 아주 포괄적인 범주에는 함께 속할 수 있겠지만 내용의 전개와 구현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두 분야를 엮어 글을 써내려간 아주 인상적인 작가가 있다. 바로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 위화다. 1960년에 태어나 올해로 예순이 된 그가 쓴 수많은 글들 중에서, 이번달인 9월 2일에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제목부터가 참 신선하다. 보통은 음악에 선율을 빗대고 문학에 서술을 떠올릴 테니 말이다. 그러나 위화는 그가 고전문학과 고전음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그려나가며 문학과 음악이 서로 닮아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목     차


머리말 화성과 비익조


스스로에 대한 믿음
윌리엄 포크너
후안 룰포
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보르헤스의 현실
체호프의 기다림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심리적 죽음
카프카와 K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우리 공통의 어머니


문학과 문학사
회상과 회상록
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
음악의 서술
클라이맥스
부정
영감
색채
글자와 음
다시 읽는 차이콥스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나는 위화의 위명과 작품명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글을 실제로 접해본 적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 책을 받기 전에 먼저 그의 글을 읽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래도 위화의 여러 작품 중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 허삼관 매혈기 >를 읽은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책은 허삼관 매혈기가 아니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쓰기 전에 발표하여, 이미 그를 도약시킨 저력 있는 작품, < 인생 >을 선택해서 읽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 때 내 앞에 바로 있었던 책이 < 인생 >이었기 때문이다.


위화를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들 중에 휴머니즘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그래도 따스한 마음이 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 인생 >을 읽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가 소설 속에 담아낸 것들 중에 휴머니즘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는 이 잔인하게 서글픈 시대상을 담담하게 풀어낸 문체가 가슴을 후벼팠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에 태어나 중국의 격동기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피부로 느꼈을 그가 그 어떤 가치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고 관조하듯 풀어내는 그 글이 너무도 시렸다. 인생을 읽고 나면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보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폈는데, 다 읽고 책을 덮을 즈음에는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자신이 나지 않았다. 조용한 그의 글이 가진 파괴적인 위력이 내 감정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나니, 또 한 번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위화의 글을 읽고 나니 도대체 그가 어떤 음악에 어떻게 영향을 받은 것일까 궁금했다. 에세이에서는 좀 더 진솔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을 것 같아서, 그의 글이 어떻게 쓰여 있을지도 너무 기다려졌다.


*


책의 전반부는 위화가 만난 고전문학, 그리고 후반부에는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구조로 된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서문이었다. 글쓰기에는 없는 음악의 화성, 즉 소리들이 호의적으로 또는 경쟁적으로 어우러지는 방식을 부러워 하면서도 독서가 바로 언어 서술의 화성이라고 본다는 위화의 시선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음악과 글을 이렇게 연결지어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이 컸다. 왜냐하면 음악을 들을 때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감정을 글로 표현한 적은 있어도 글 자체를 음미하는 것과 음악을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음악을 연결짓기 위해, 위화는 먼저 본인이 속한 분야인 문학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수많은 문학 작가와 작품들을 언급하며 긴 이야기를 한 위화가 본질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자신에게 문학은 어떤 여정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작품들을 읽으며 위화는 위대한 작가들의 세계에 끌려 들어갔다. 그는 작가들이 이끄는대로 이야기 속 여정을 따라가며 때로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세계에 압도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 여정의 끝을 마주하면 자신은 이제 홀로 돌아서야 하지만,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서야 비로소 그 위대한 작가들이, 그들이 만든 세계가 본인과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 그의 진실한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위화는 이런 문학을 어떻게 음악과 연결짓게 된 것일까.


우연한 기회에 음향기기를 사고, CD를 사게 되면서 들은 음악은 '단숨에 사랑의 힘으로 그를 잡아끌었다.(본문 235쪽)' 비록 위화의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니기에 그 때 그의 세계가 어떻게 뒤바뀌는 경험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이 문장을 보고서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감정을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음악만큼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온전히 매료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온다.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지는 세계는 온전히 새롭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이전과 같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수도 있는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음악으로 수없이 맞이한다. 분명 위화 역시 음악으로 인해 그 갈림길을 만났을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확실히,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감수성을 함양해왔을 위화에게 음악이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아니, 음악과 만난 순간부터 음악과 문학이 동시다발적으로 그에게 자극을 주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미 풍부했던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그는 음악도 그저 고양되는 무언가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문학의 세계로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어떻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과 호손의 <주홍글씨>를 마치 쌍둥이처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두 작품을 모두 아는 나는 맹세컨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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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심지어 미술까지를 넘나들며 이 모든 것을 엮어가는 위화는 확실히 대가다. 소설에서 보였던 그의 필력이 담담한 파괴력을 가졌다면, 에세이에서 보이는 그의 글은 끝없는 확장성 그 자체였다.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분야를 깊게 알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위화의 그 식견에는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은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두고 읽어볼 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글이 될 것이다. 특히나 그가 너무나 많은 문학을 다루고 있기에 한 번쯤 그가 언급하고 있으나 나에게 생소한 문학작품들을 읽어보고 다시 이 글을 본다면, 그 때에는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화의 에세이를 읽어내리며 뇌리에 남았던 것은, 문학과 음악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그의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대에 대하여 날카롭게 저며드는 언어 서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에서, 위화는 '문화대혁명이 후반기로 접어들고 삶은 점점 더 깊어지는 억압과 평범함 속에서 아무 변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본문 229쪽)'라고 아주 담담히 말하고 있다.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버릴 지도 모를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검열을 겪었던 그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결단코 가볍게 넘길 만한 서술이 아니다. 깊어지는 억압, 평범함 그리고 아무 변화 없는 상태를 담담하게 대조하는 위화의 표면적인 텍스트와 그 이면의 컨텍스트는 그가 에세이 속에서도 표면적인 주제를 넘어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날카로운 통찰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기제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위화가 느낀 방대한 예술 세계가 합일을 이루는 경지를, 나도 느껴볼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만 하지 말고 그저 부던히, 매순간에 무뎌지지 않고 날카롭게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치 위화가 문학에 대해서든 음악에 대해서든 무디게 여기지 않고 깊게 파고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 생生을 헐어 쓴 글의 힘 -


지은이 : 위화余華

옮긴이 : 문현선

출판사 : 푸른숲

쪽 수 : 404쪽

발행일
2019년 09월 02일

정가 : 16,800원

ISBN
979-11-5675-793-1 (0382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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