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디애니페스트 2019, 올해도 볾! [영화]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보다
글 입력 2019.09.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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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야마무라 코지 특별전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인디애니페스트 학생 경쟁 부문에 작품을 응모한 애니메이터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갑작스러운 대화에도 친절하게 인디애니페스트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었다. 출품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먼저 학생 애니메이터 경쟁부문인 새벽비행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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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니페스트는 경쟁 영화제다. 경쟁 영화제라는 사실만으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인디애니페스트는 응모작을 독립보행, 새벽비행, 아시아로 이렇게 세 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달리 말해, 인디애니페스트는 아시아 애니메이터와 국내 애니메이터를 구분하고, 국내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기성 애니메이터와 학생 애니메이터를 구분하여 작품을 시상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학생 애니메이터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고, 결론적으로는 영화제가 더 많은 작품을 다루게 된다. 새벽비행 본선에 진출한 그녀는 아직 학생임에도 이렇게 큰 상영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무척 뜻깊다고 했다. 그러나 독립 애니메이션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매우 적은 것을 고려하면, 이것은 비단 학생 애니메이터에게만 뜻깊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녀는 국내 유일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애니메이션 관련 종사자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영화에 꽤나 관심이 있는 편인 나조차도 인디애니페스트의 존재를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실제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애니메이터들의 지인이거나 교수님의 추천으로 온 애니메이션 학과 학생처럼 보였다.


인디애니페스트, 더 나아가 독립 애니메이션이 발전하려면 관련 종사자들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독립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 또한 축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홍보가 절실한 인디애니페스트의 예산이 매년 10%씩 삭감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작업에 지치기도 하지만, 완성작을 보면 뿌듯하다는 그녀의 얼굴에 유일하게 슬픔이 비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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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애니메이터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독립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와 독립 애니메이션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독립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즈니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력과 전혀 다르다.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동영상은 현실을 프레임 안에 '포착'하는 예술이다. 최근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비현실적인-환상적인- 영화가 많이 개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구도부터 인물에 이르기까지 제작자가 직접 '창작'하는 예술이다. 애니메이터는 현실성을 위해 물리적 제약-중력의 법칙-을 유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비대칭적인 신체 비율이나 말을 하는 동물-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의 유무다. 60초짜리 영화라도 그 안에는 기승전결과 인물, 사건, 배경이 존재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특히 독립 애니메이션은 기승전결은커녕 사건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겨울왕국>이나 <도라에몽>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독립 애니메이션이 난해하고 현학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아무런 내러티브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시골 의사>나 <늙은 악어 이야기>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독립 애니메이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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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의 한 장면



회화와 영화의 경계에 서있다는 점에서 독립 애니메이션은-적어도 내가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본 독립 애니메이션들은- 독립 영화보다는 영상예술에 가까웠다. 첸 시(Xi CHEN)와 안 쉬(Xu AN) 감독의 <백로>는 한 장면이 5분 동안 여섯 번 반복되는 애니메이션으로, 남자와 여자, 그리고 백로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남자는 방에 들어와 여자를 안고 방을 나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남자는 다시 처음 들어왔던 그 문으로 다시 들어와 여자를 안고, 방을 나간다. 여기에는 어떤 사건도,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주목해야 할 것은 인물, 사건, 배경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백로>가 만들어진 기법과 그 안의 균형, 그리고 조화다.


<백로>는 Cut-Out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Cut-Out 기법이란 장면을 그린 종이를 잘라 배경 위에 붙이고 이를 조금씩 움직여 연속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Cut-Out 기법은 사진을 이어 붙여 움직임을 표현하기 때문에 장면 사이에 공백이 생겨 행동이 굼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백로>는 Cut-Out 기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밀한 그림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전환을 보여준다. 또한 수묵화처럼 흑과 백만을 사용한 그림은 중국의 전통적인 정취를 훌륭하게 재현해내며, 비현실적인 장면의 반복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그림을 영상으로 옮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야기 하나 없이도, <백로>는 놀랍도록 창의적이고 매력적이다.




Cut-Out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면, 야무구치 마이 감독의 <이후의 여행>를 시작으로 독립 애니메이션 세계에 발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아니메(Anime)의 향기가 나는 <이후의 여행>은 죽음 이후 노인의 여행을 묘사한 애니메이션으로, 무채색 배경에 아름답게 수놓아진 벚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의 여행>이 상업 애니메이션과 비슷하다고 해서 상업 애니메이션처럼 논리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꿈처럼, 우주비행사와 아내, 강아지를 오가는 여행은 비선형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그래서 아름답다.


애니메이션은 창조의 예술이다. 영상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는 사소한 소리마저도 하나하나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에서도 음향 및 음악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촬영할 때 잡히는 배경 소음이나 대사가 존재하는 반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에 맞는 소리를 찾아 입혀야 한다. <이후의 여행>은 대사나 소리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대사 대신, 야마구치 마이 감독은 영상의 주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사용한다. 작곡가가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이 파스텔 톤으로 흩날리는 벚꽃과 마주하면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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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여행>의 한 장면



2019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을 논하자면, 2003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수상한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두산>을 빼놓을 수 없다. <두산>은 일본 전통 1인 만담극, 라쿠고 '두산'을 애니메이션 화한 작품으로, 일본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三味線)과 구니모토 다케하루(国本武春)의 내레이션을 이용해 일본 특유의 느낌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디지털 방식보다 종이에 직접 '그림 그리는 일'을 선호하는 야마무라 코지는 <두산>을 만들기 위해 6년 동안 16000매가 넘는 그림을 그렸다. <두산>은 평면적인 드로잉에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작품이다. 야마무라 코지는 그림자를 그린 여러 개의 용지를 컴퓨터에 스캔하여 합성함으로써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하고자 했는데, 영상 초반 커튼을 걷는 장면을 보면 빛과 그림자를 향한 감독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두산>

 


추상적인 형태의 애니메이션부터 만담을 재현한 애니메이션까지. 독립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방대하며, 그 매력 또한 무궁무진하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회화와 영화 사이에서 불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독립 애니메이션이 회화와 영화의 장점을 모두 가진 예술 매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아직 설 자리가 많이 없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고 시상을 통해 제작을 장려함으로써 독립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지원하는 소중한 영화제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실험적인 기법과 독창적인 스토리가 쏟아져 내리는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아시아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지속적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야마무라 코지의 <두산>에 대한 설명은 [일본의 인디펜던트 애니메이션 작가 야마무라 코지의 작품 분석, 박기령, 한국 애니메이션학회, 2010]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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