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전우치' 속 추구의 플롯 [영화]

글 입력 2019.09.2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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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은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좋은 플롯이 좋은 영화, 드라마, 연극을 만들고 작품의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건이 어떤 인과관계를 가지고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플롯이 탄생하고, 그러한 플롯들이 우리의 이야기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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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유난히 작품의 흥행과 관련이 깊어 보이는 플롯이 있다. 바로 ‘추구의 플롯’이다.

 

추구의 플롯 속에서 주인공은 소중한 물건 혹은 사람 등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지내던 곳을 떠나고, 새로운 장소를 돌아다니고, 조력자를 만나고, 난관을 겪고, 고생한 끝에 추구하던 것을 발견한다. 이것이 추구의 플롯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만화 <이누야샤>에서 이와 같은 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 외에도 많은 흥행작들이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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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추구의 플롯의 구성에 입각하여, 이 글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흥행작 영화 <전우치>의 서사 구조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전우치>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에 개봉하여 약 6백만이라는 높은 관객 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최초로 한국형 히어로를 내세워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 영화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러한 구성이 작품의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메인 스토리 라인과 추구의 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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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선인인 표운대덕이 하늘나라의 감옥에서 악한 요괴들을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3000일 동안 피리를 불어 요괴의 마성을 완전히 잠재워야 했지만, 문을 지키던 세 신선의 실수로 감옥의 문이 하루 일찍 열려 요괴들의 마성이 부활하고 만다.

 

잠든 마성이 깨어버린 요괴들은 그대로 감옥을 탈출하여 인간 세상에 흩어진다. 이 때 신비로운 피리인 만파식적도 마성에 물든 채 인간 세상에 함께 떨어져 버리게 되고, 표운대덕도 지상에 떨어져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선인이 피리를 불면 요괴를 잠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요괴가 피리를 불면 세상이 어둠에 물들고 만다. 요괴들은 호시탐탐 피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신선들은 이를 막기 위해 명망 있는 도사 화담에게 요괴를 봉인할 것을 부탁한다. 피리를 둘러싼 요괴, 신선, 도사들 사이의 이야기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잇는 가장 큰 흐름이다.

 

한편, 전우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망나니짓을 하는 도사이다. 그는 오직 자신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며 최고의 도사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는 청동 거울과 청동 검을 찾아다닌다. 청동 거울은 영화 초반 전우치의 첫 등장 씬에서 획득하고, 나머지 청동 검이 그가 갈망하는 것이 된다. ‘도사 전우치가 청동 검을 얻고 최고의 도사가 된다’가 영화 속 추구의 플롯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난관 – 부적 없이 현대에 떨어진 전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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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요괴임을 깨달은 화담은 천관대사를 살해하고 이를 전우치에게 뒤집어씌운다. 누명을 쓴 탓에 전우치는 족자 속에 갇혀버리고, 2000년대의 한국에 이르러 봉인이 해방 된다.

 

화담이 모습을 감추어 요괴를 무찌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깨어난 전우치는 500년 만에 세상에 풀려나자마자 요괴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벼슬을 준다는 신선의 꾐에 넘어간 전우치는 흔쾌히 요괴를 상대하겠다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가 도술을 쓸 때 필요한 부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부적도 없이 맨몸으로 요괴를 맞닥뜨렸다가 자신의 무력함을 체감한 전우치는 체면이고 뭐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간다. 신선이 운전하는 차에 짐짝처럼 탑승하고 도심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영화에서 코믹하게 그려진 장면이었지만 전우치의 입장에서는 그가 눈을 뜨고 처음 맞이한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난관 – 요괴들과의 싸움과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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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마찬가지로 봉인되어 있었던 초랭이를 족자에서 풀어줌으로써 드디어 부적을 되찾은 전우치는 본격적으로 요괴들을 물리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아마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첫 번째 사진의 장면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괴를 상대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 전우치가 여러 장의 부적을 사용하여 자신의 분신을 만들고 화려한 액션으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많은 어린이들의 로망(?)인 분신술로 두 마리의 요괴 중 한 마리는 제압하여 봉인하게 되고, 한 마리에게는 치명상을 입혀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게 된다.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를 모두 붙잡았으니, 이로써 전우치의 역할은 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우치와 초랭이의 발목에는 신선이 족자에 봉인할 때 채워놨던 보이지 않는 족쇄가 존재한다. 그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우치와 초랭이는 또다시 봉인될 수 있고, 신선이 부르면 어느 곳이든 이끌려가게 된다. 둘은 족자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유의 몸이 아닌 것이었다.

 



청동 검을 얻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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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세상에서 전우치는 마침내 청동 검을 얻게 된다. 그런데 청동 검을 찾는 과정이 영 심심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닌 것 같고, 전우치의 반응도 생각보다 미지근하다. 비록 청동 검을 통해 전우치와 초랭이를 속박하는 족쇄를 파괴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큰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전우치도 직접 말하기를, 청동 검과 거울은 그자체로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 그저 ‘상징적인 것’이라고 한다.

 

비로소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전우치가 영화의 처음부터 그렇게 찾아 다녔지만 결국 그것은 전우치 일행이 만파식적에 얽힌 주된 이야기의 흐름에 섞여 들어가기 위한 매개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보물들은 소위 맥거핀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청동 검을 찾고 나서도 러닝 타임은 약 40분 정도가 남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은 전우치의 화담을 향한 복수, 그리고 과거에 그가 봉인되기 전 첫눈에 반했던 과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서인경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마지막 난관을 극복한 전우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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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토리의 최종 관문은 화담이며, 그와의 싸움이 플롯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마지막 부적을 서인경을 구하는데 사용한 전우치는 화담의 공격으로 인해 무력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나 자신의 전부였던 부적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 비로소 그는 성장한다.

 

전우치는 그의 스승인 천관대사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도사로 거듭난다. 항상 그가 마음을 비울 수 없게 그의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존재는 다름 아닌 부적이었고, 그것을 마침내 깨달은 전우치가 더 이상 부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도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정한 도사가 된 전우치, 그의 조력자 초랭이, 화담의 정체를 깨달은 신선들, 그리고 여기에 반전으로 알고 보니 표운대덕의 환생이었던 서인경까지 힘을 합세하여 화담을 물리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 추구의 플롯은, 전우치가 청동 검으로 시작한 모험에 또 다른 일련의 사건들이 얽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본래 추구했던 '명성'과는 다른 가치를 깨닫는 것으로 비로소 완성 되는 것이다.

 

결국 추구의 플롯은 주인공이 추구하는 목표를 찾는 것이 중점적인 것이 아니라, 찾는 ‘과정’속에서 변화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플롯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 <이누야샤>에서도 주인공들은 흩어진 ‘사혼의 구슬 조각’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고, 주인공들은 성숙을 거치며 추구하는 것이 바뀌게 된다. 그러한 서사를 지켜보는 우리는 그것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가치나 교훈 등을 얻게 된다.


*

  

영화 전우치가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도사’라는 흔치 않은 소재가 영화의 흥미를 크게 돋우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으며, 무엇보다도 전우치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이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미남 배우인데다가 인기가 대단했으니 말이다. 이 밖에도 배경음악이나 연출력도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의 흥행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이야기’이다. 추구의 플롯은 그런 점에서 흥행공식과도 같다. 대부분 주인공이 ‘추구하는 것’은 관객들이 기대를 걸만한 대상이기에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좋고 주인공이 마주하는 ‘난관’들은 서사를 긴장·이완시키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주인공의 모험기는 새로운 매력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쉬운 형태이며 결말에 치달을수록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감동과 교훈까지 얻을 수 있으니,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구들을 고루 충족시킬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전우치는 이러한 추구의 플롯의 효과를 적절히 이용한 작품이다. 영화 자체도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채로운 매력이 있지만, 구조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있고 의도되어 있는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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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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