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동화 –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공연]

글 입력 2019.09.1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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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O 내가 A. R,B,O 내가 B”


공연이 시작되는 첫 대사부터 주인공은 과학 공식이나 수학 공식을 외우며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다. 평화로운 그의 고향 마나롤라를 사랑하며 평생을 이 마나롤라에서 살았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니 왜 주인공이 이 마을을 사랑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환상의 동네 같아 기분 좋게 공연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연 내내 웃음을 지었고 행복한 마음으로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꿈 같은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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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



투리는 괴짜 발명가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으며 집에 틀어박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발명을 하며 살아온 아이다. 이 이야기는 투리 옆집에 살다가 로마로 이사를 하였던 성격과 외모가 아름다운 캐롤리나가 다시 마나롤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투리는 발명에만 집중하는데 옆집에 이사 온 캐롤리나가 내는 작은 소음에도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투리는 자신의 삶이 연속확률변수로 흔들리고 있다며 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삶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면서 타인이 자신의 삶을 방해하거나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것을 완벽히 막는 투리지만 발명품이 캐롤리나 소리에 반응하며 작동되자 기분 좋아하며 균열 속에 균형이 생기는 행복을 느낀다. 날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캐롤리나에게 신경이 쓰이며 점점 투리도 타인에게 관심을 둔다. 관계의 시작이었다.


 


캐롤리나와 도미니코



캐롤리나와 도미니코가 ‘작가’라는 같은 꿈을 가진 친구로서 어릴 때 같이 글도 쓰면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캐롤리나가 이사를 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굉장히 오랜만에 둘은 만나게 되어 다시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같이 글을 쓰고자 한다.


도미니코의 첫사랑은 캐롤리나였고 지금도 좋아해서 캐롤리나와 만나는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 지금의 도미니코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될 만큼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아직 캐롤리나는 작가 지망생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뻔한 이야기, 이 뮤지컬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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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리나와 도미니코는 목요일마다 글쓰기 모임을 한다. 산책도 하고 캐롤리나는 자신을 향한 비난에 힘들어하는 도미니코에게 좋은 작가님이라며 응원해준다. 투리는 캐롤리나에게 점점 솔직해지며 그녀를 걱정해주고 그녀에게 발명품도 선물해준다.


그러다가 캐롤리나는 눈이 살짝 불편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역시나 그녀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점점 시력을 잃게 되는 캐롤리나는 작가가 꿈인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두렵게 다가왔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당시에 글을 제대로 쓸 수도 없기에 절망만 느끼며, 한순간에 암흑이 된 것이 아니라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순간을 보내고 있어 더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런 캐롤리나 옆에는 항상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투리가 있다. 투리는 곁에서 빛나는 원을 발명해 너한테 버리는 거라면서 챙겨준다. 그리고 그녀가 시력을 잃는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발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끝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정말 동화에나 나올 법한 착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조금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평이 있었다. 그런 평을 읽어서 보기 전에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런 착한 동화 이야기는 너무나 오랜만이라 마음 따뜻하게 재밌게 보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악인도 없고 서로 협동하면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이 뮤지컬만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MSG 쳐지지 않은 정말 순수한 맛. 세상을 더 복잡하게 살려고 하는 우리에게 그렇게 살 필요 없다며 착한 이야기 하나 전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


글을 쓰는 작가가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고난인 것을 누구나 알듯이, 도미니코도 이 사실을 멀리서 알게 되고 투리와 도미니코는 서로 부탁하며 투닥거리면서 그녀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발명품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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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아름다운 마나롤라 마을 전경.
보기만 해도 힐링된다.



투리의 변화



마지막, 도미니코는 로마로 떠나고 투리도 발명협회에 초대받아 떠나게 된다. 결국 마나롤라에는캐롤리나 혼자 남게 되는데 투리는 마지막 작별 선물을 한다. ‘너를 위한 글자’ 이제 눈이 보이지 않는 캐롤리나에게 타자기를 발명해 보이지 않아도 글자를 쓰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 기회를 선물한다. 이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릴지 몰랐는데 그들의 동화가 완벽해지며 그 둘의 진심이 통한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자신의 삶에 누군가가 한 발짝이라도 들어오면 쳐내기 바빴던 투리가 자신의 감성에 솔직해져 사랑을 느끼고 이제는 엄마가 아닌 캐롤리나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발명품을 만든 그 성장이 아름다웠다.


투리가 캐롤리나에게 진심을 전하며 그녀와 공감한다. 누군가와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투리에게도 가능함을, 누구나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값지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소통을 철저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투리를 응원하게 되고 현실에서 자신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도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는 캐롤리나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느꼈다. 이 아름다운 가슴 따뜻한 변화를 무대에서 볼 수 있어 공연을 보고 난 후에도 기분 좋음이 오래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아름답다고 하늘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이 극은 19세기 초 이탈리아 발명가 펠리그리노 투리의 실제 이야기를 본 따와 만들었다고 해서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이 극에는 절정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크게 없다. 그만큼 정적이고 평화롭고 착하다. 이런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관객들이 집중을 잃지 않도록 만들기까지 노력했을 제작자들과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한 템포 쉬는 힐링이 필요했던 나에게 너무나 좋은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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