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립예술담론 : 도대체 어디로부터 독립했다는 거야? [문화 전반]

독립음악, 독립영화, 독립예술...까지
글 입력 2019.09.1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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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음악, 독립영화, 독립예술...까지



예술 관련 글을 읽을 때, 수많은 영화를 찾아볼 때, 종종 ‘독립’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의문이 생긴다. 저 수많은 단어들 앞에 붙어있는 ‘독립’이 의미하는 건 도대체 뭘까? 도대체 어디로부터 독립했다는 거야?


‘독립’은 영어로 ‘인디 Indie’라고도 한다. 인디는 인디펜던트 Independent의 약자로, 말 그대로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상업적인 거대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독립출판’, ‘인디게임’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디음악’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독립음악은 대형 기획사에 종속되지 않고 소자본으로 설립한 레이블에서 제작한 음악을 말한다.



인디 뮤지션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우선 아예 소속된 레이블(음반사, 기획사, 제작자)이 따로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형태가 있고, 소속된 레이블이 있더라도 음반 제작은 음악가 스스로 해결하며 단지 유통, 스케쥴 관리, 공연 기획 등만을 기획사가 도와주는 형태가 있다.




 

독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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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디음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매직스트로 베리 사운드>다. 십센치, 새소년, 옥상달빛, 치즈, 선우정아 등 많은 뮤지션들이 <매직스트로 베리 사운드>와 함께 한다. 그들만의 스타일이 확고하게 있으며, 새로운 음원이 발매될 때마다 특히 마니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꼭 마니아층에게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십센치의 경우 이제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뮤지션이다. <매직스트로 베리 사운드> 레이블 김형수 대표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의 방향성이나 신념이 잘 묻어있다.



주변 분들은 저희에게 공장을 예로 들며 ‘공장에서 다양한 걸 만드는데 그중에 수익이 나쁜 라인이 있다면 그걸 없애야지 왜 끌고 가느냐?’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아티스트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라는 레이블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그런 고민은 회사 차원이 아니라 아티스트 자체적으로도 항상 하고 있어요.



그들만의 색으로 사랑받는 밴드 ‘잔나비’는 보컬 최정훈의 친형이 밴드의 매니저와 실장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공식 블로그에 들어가면 밴드의 활동들에 대한 내용이 많은 콘텐츠로 작성되어 있는다. 다양한 홍보 콘텐츠 또한 개인이 작성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모든 일을 소수 인력이 해내기에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만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힙합 또한 비슷하다. 힙합 소속사라는 말보다는 힙합 레이블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이들은 회사와 같은 경영구조를 가지며, 소속 멤버들이 작사와 작곡은 물론 발매까지 한다.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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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야말로 정말 많은 인력과 자본이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영화의 모든 권한과 최고 권력을 가진 자는 감독 한 명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영화는 돈, 자본, 예술 등 많은 것들이 얽혀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영화에서는 제작사가 힘을 가지고 있다. 제작사와 감독이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며, 이 둘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감독이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제작사나 투자자들의 자본과 지원을 받지 않고 만드는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한다. 다만, 독립자본이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중소규모 미만의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흔히 독립영화로 분류되곤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감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해 만드는 경우만이 독립자본영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자주제작'이라고 따로 이르며, 독립영화 중에도 자주제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문 축에 속한다. 유명한 독립 영화 똥파리의 경우 양익준 감독이 자기 방 보증금까지 빼서 영화 제작비에 보탰다.



일단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후에는, 배급이 문제다. 제작과 배급을 함께하는 영화사도 있지만, 보통 제작사와 배급사는 따로 있다. 배급사는 만들어진 영화를 영화관에 풀어주고, 광고 등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내의 배급, 상영관들은 거의 상업영화 위주로 진행된다. ‘돈이 벌리냐, 아니냐’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는 거다. 그래서 메이저급 영화관에서는 독립영화를 거의 만나볼 수 없다. 이 영화들은, 몇 곳 없는 독립영화관에 찾아가야지만 만날 수 있다.



 

독립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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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독립 애니메이션도 있다. 보통 ‘독립’ 영화나 ‘독립’ 애니메이션의 경우, 감독의 미학적 성향이 짙게 들어가므로,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말 순수하게 미적 성취를 위한 작업이 많으므로, 관습적이지 않은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기에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같은 분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예술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둘을 같다고 보기엔 애매한 지점이 있다. 자본과 지원을 받지 않고 장르 영화, 그러니까 새로운 형식이 아닌 기존의 장르를 답습하는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질문들을 차치할 만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대사와 내용들로, 너무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통통 튀고, 가벼우며, 아이들이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내 편협함을 깨주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후에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 <서울역> 두 개의 애니메이션의 감독을 맡았고, 후에 감독의 첫 번째 실사 영화, <부산행>이 개봉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접했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의 수는 많지 않다. 독립 애니메이션 분야가 워낙 척박하기도 하고, 정보를 찾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은 한 해에 하나씩 나와도 많이 나온 편에 속할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했다.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 또한 인디로 독립해서 성공하긴 힘들다고 한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또한 실사영화 부산행 이후 더 알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그들을 재조명하는 <인디애니페스티벌>같은 독립 예술 페스티벌이 더욱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예술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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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렇다 보니, 독립예술을 위한 페스티벌도 생겨났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매체의 구분 없이, 극, 음악, 전시, 퍼포먼스, 무용 등 다양한 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인다. ‘프린지 Fringe’의 사전적 의미는 ‘가장자리’다. 1947년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여기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자리에 모여 자발적인 공연을 펼쳤다. 그때부터 프린지는 ‘비주류’라는 뜻도 가지게 됐다.


이들은 1998년, ‘독립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최되었다. 이들이 매력적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자유참가라는 점이다. 심사가 없으며, 본인의 예술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팀은 참여가 가능하다. 자신의 언어를 비로소 온전하게 말할 수 있는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포근한 집이 된다. 1999년, 프린지는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었다. 비주류 예술이 주류의 공간에서 열린다는 것은 말만 들어도 즐거운 일이다. 2002년부터 홍대에서 개최되었던 페스티벌은, 홍대 앞에 거대 자본이 들어서면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독립예술은 접하기가 힘들다. 영화 같은 경우, 앞에 말한 것처럼 배급의 문제가 있다. 또한 많지 않은 자본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홍보가 부실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 보니 대중들이 접하기가 힘들다. 그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페스티벌과 평론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제나 독립예술 페스티벌의 경우, 빠짐없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평소 극장이나 공연장, 전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예술을 축제의 장에서 마음껏 느껴볼 수 있다.


<인디애니페스티벌>, <서울독립영화제>, <프린지페스티벌> 등 다양한 곳에서 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더운 여름에 시작해서 여름에 끝났다. 1년 동안 이들은 또 멋진 페스티벌을 준비해 갈 것이다. <인디애니페스티벌>과 <서울독립영화제>는 곧 다가올 가을에 만날 수 있다.



 

독립예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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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독립예술의 향기를 페스티벌이나 영화제에서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면, 그들에 대한 글에서도 간접적으로 그들을 만져볼 수 있다. 하지만 독립예술 평론 또한 별다를 게 없다. 독립예술에 대한 평론을 볼 수 있고, 독립예술에 대한 글만 올라오는 웹진으로는 <인디언 밥Indie-n-bob>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 ‘독립예술’만을 다루는 웹진이나 평론 사이트는 거의 없다.


<아트인사이트>에도 다양한 문화 예술 평론이 올라오는데, 에디터에게 독립예술 문화 초대를 진행하고 있고, 그에 대한 글도 다양한 시각으로 많이 올라오고 있다. 주류 예술, 비주류 예술 구분할 것 없이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고,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독립예술을 사랑하는 글쟁이들에게 또 다른 보금자리가 되어주리라.

 


예술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다원화되고 있다. 창작, 향유, 매개의 영역이 구분되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그 경계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다원화된 예술의 상황과 흐름을 공유하고 담론을 만들기 위한 소통이 활성화되기에는 여전히 주류 미디어들의 시선은 제도권 중심에서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도의 이름으로 분류되지 않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현상과 실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독립예술/다원예술/비주류예술/비상업적대중예술/공공예술 등의 개념들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2007년 당시 인디언밥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다양한 독립예술의 현장과 네트워킹 그리고 그것을 통한 소통과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출처: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평론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나는 평론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창작을 하다 보면 내 작업에 익숙해져서 이것이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너무 자의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간이 어렵다. 그에 대한 장을 열어주는 것이 글이 아닐까. 또한 글은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온라인의 글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글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어오기에 좋은 매체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독립예술 평론은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한 글이 많아질수록, 독립예술에 대한 담론과 지원도 늘어날 것이다.


 

 

미술에서의 독립



그런데 생각해보면 독립음악, 독립영화라는 말은 많이 써도, 독립미술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방식이 ‘독립’적이긴 하다. 물론 후원을 받거나,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후원은 공모나 지원 사업을 통해, 심사를 거쳐 당선된 예술가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지원 사업의 경우 수익 창출 목적이 아닌, 정말로 지원이나 후원의 개념이기 때문에, 음악이나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투자 개념과는 다르다.


미술 분야에서는 소속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협회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수익 창출 목적이 아니다.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미술가의 권익을 옹호한다. 이 또한 변질되어 협회가 하나의 헤게모니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단체라는 취지와 본질은 매우 긍정적이다.


영화나 음악에서 홍보를 창작자 본인들이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소속사나 제작사에서 담당한다. 미술 또한 비슷하다. 작가들이 홍보와 장소 섭외 등 대외 업무를 함께 겸하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술에서 창작과 기획이 분리된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미술 분야에는 큐레이터가 있다. 그리고 이 큐레이터에서도 ‘독립’이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어느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와 달리, ‘독립 큐레이터’는 소속된 곳이 없는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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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업에서도 순수성을 지향하는 작가가 있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또한 작가들 사이에서 자기 PR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인맥관리를 잘해서 큐레이터나 미술계 인사와 연이 닿았다면, 작품의 깊이가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홍보와 지지를 받으며 스타 작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작업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PR이 부족해 매일 밥을 굶는 작가도 있다.


과거에는 자신을 홍보하고, 브랜딩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꽤 있었다. 예술가라면 정말 순수하게 작업에만 몰두해야 하는데, 작업의 깊이를 뻥튀기하고, 자신을 브랜드처럼 만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기 홍보 또한 매우 중요하게 바라본다. 자신의 작품이 별로임에도 가짜 홍보를 해서 이익을 내는 것은 사기일 수 있지만, 일단 홍보를 해야 사람들이 자신의 표현을 보러 올 것이 아닌가. 이 접점을 찾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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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예술의 관계



작업에서 돈은 필요하다. 오죽하면 ‘예술은 돈이다.’라는 말도 나왔을까. 박이소 작가가 자본=창의력이라고 쓴 작품에서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돈에 따라 표현 방식에도 많은 차이가 생긴다. 세계적인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최근작인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비밀’만 봐도 그렇다. 전시장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려 2000년 동안 바닷속에 묻혀있었던 보물이라는 그 작품들은 사실은, 작가의 유머로 만들어진 가짜다. 이 작업을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크릴 물감 하나에도 벌벌 떠는 내 작업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자본과 창작, 그 둘의 관계를 조정하는 일은 언제까지나 예술가의 몫이다.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투잡 뛰는 사람들이 많다. 창작을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돈이 필요한데, 그를 위해서는 다른 일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상업적으로, 그러니까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작업을 해도 좋다. 일단 의식주가 해결이 된 뒤에 자신을 위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독립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표현 방식이 기존의 것과 다르게 실험적이고, 새롭다는것이다. 언제나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정체되어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해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일이 아니다.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고 수단이고 해답 그 자체다. 지금의 비주류 예술은 언젠가 주류 예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또 그 주류를 깨려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다양한 독립예술을 지원하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새로워서 낯설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서 재미있고 흥분되는 것임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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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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