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언젠가 - 사랑한 기억 [도서]

사랑한 기억과 사랑받은 기억
글 입력 2019.09.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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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로망 중에 하나는 서재 한 켠에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가지는 것이었다. 아직 엄청나게 좋은 서재는 아니지만, 벽 한 켠에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은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엔 사실 책을 다 읽었다기보다는 제목이 끌려서 구매한 책도 있었고, 책 겉표지가 너무 매력적이라 구매한 책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 현재의 정치 시국과는 별개로 안녕, 언젠가 라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좋다. 안녕, 언젠가 라는 문구 역시 사랑의 연장 선상의 어느 즈음일 것 같아 어떠한 연애 낭독기일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차분하게 디자인 된 겉표지와는 다르게 몇 장을 넘기지 않았을 때,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는 흘러갔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격정적인 육체적 관계를 시작으로 약혼녀가 있는 남자주인공 유타카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남자주인공을 유혹하고 사랑하는 여자주인공 토우코의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만남의 시작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우연히 들르게 된 방콕 여행지에서 유타카와 토우코는 운명처럼 만난다. 토우코는 애초에 그저 유타카를 질투에 이용할 목적으로 그에게 접근했고, 유타카는 결혼 전까지만 즐길 생각으로 매혹적인 토우코를 받아들였다. 서로를 잠시 탐닉하고자 했던 그 둘은 결국, 정말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이미 약혼녀가 있었던 유타카는 토우코에게 기약 없는 약속만을 남긴 채 자신의 창창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가벼울 줄 알았던 그 둘의 만남은 이별의 순간에 가슴 아파하고, 그 후에도 자신의 삶에 집중하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다. 25년 만에 다시 방콕에서 그들은 재회를 하게 되지만, 유타카는 여전히 자신의 진심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픈 토우코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다가와서야 그녀를 만날 용기를 내게 된다.


유타카라는 남자의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인 모습에 읽는 동안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절대 이상형을 함부로 정의 내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 결국은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 온 아내 미츠코와 방콕에서의 단 몇 달간의 기억 하나만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토우코라는 여자에게 그들의 겉과 안으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버린 너무나 이기적인 남자주인공 유타카의 삶의 태도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타카의 아내, 미츠코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다. 평생 가슴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해온 남편을 아무런 의심 없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내 가족을 너무나 잘 보듬어주는 훌륭한 남편으로 알고 살아간다.

 

방콕에서의 넉 달간의 지독한 사랑의 기억으로 평생을 혼자서 살아온 또 다른 그녀, 토우코 역시 줄곧 남자주인공 유타카만을 사랑한다. 죽기 직전까지 그녀는 평생 한 남자의 그림자 안에서 행복해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고작 단 네 달간의 사랑이었을 뿐인데. 이토록 애달프게 그녀를 홀로 지낼 수 있게 할 만큼 깊고 큰 사랑이 정말 가능한 걸까.

 


"죽기 전 당신은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구절이 있다. 처음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의 그녀,토우코는 사랑 받은 기억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너무나 깊게 온몸과 마음으로 유타카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결국은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역시 늘 사랑한 기억을 떠올린다고 했고, 줄곧 저울질만 해왔던 유타카 역시 결국엔  진심으로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아내가 아닌 그녀, 토우코라는 것을 마지막에 괴롭게 토해내며 그녀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라고 속삭인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차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사랑한 기억을 떠올린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내가 했던 것이 사랑이었는지, 서투른 연애였는지는 몰라도 아직 난 사랑 받은 기억이 더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기간과는 상관없이 이 물음에 답을 한 사람들은 모두 사랑한 기억을 떠올린단다.

 

평생을 걸 만큼 짙은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토우코, 그녀는 너무 쓸쓸하고 슬픈 인생이었다. 한 남자의 우유부단함과 이기적인 저울질이 그녀를 너무 외롭고 아프게 만들어 버렸다. 이 책에 그려진 남자라는 존재는 확실히 여자보다 자기중심적이고 사랑하는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추억만을 가지고 평생 홀로였던 그녀 때문에 책을 읽은 후에도 조금 많이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그녀가 너무 외로웠을 거란 생각에 울화통이 터진다. 남자가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만 덜 저울질 했다면 과연 또 다른 결말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사랑한 기억과 사랑받은 기억에 관한 차이를 계속 생각하게끔 하는 책이었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나 역시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 간절함. 다시 만나게 됐을 때의 미안함. 후회. 연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조용히 읊었을 때의 느낌처럼 차분하지만 참 아프고 서글프게 다가오는 제목.


안녕, 언젠가.



인간은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해

아무리 뜨거운 사랑 앞이라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돼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 버리는 얼음 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안녕, 언젠가] P.48~49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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