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로 승화된 삶,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시각예술]

퍼포먼스의 대모를 말하다
글 입력 2019.09.1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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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매끄럽게 늘어진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한쪽으로 땋은 채 미술관의 조각상처럼 가만히 멈춰 있었다. 날렵한 콧대에 단호한 표정은 누구든 되돌아볼 만큼이나 강렬한 아우라를 풍겨왔다. 텅 빈 전시장의 아트리움을 존재만으로 가득 채우는 단 한 사람,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회고전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2010)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 영상을 계기로 아브라모비치를 알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관객과 마주 앉아 눈빛으로만 소통하는 퍼포먼스는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소통의 방식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아브라모비치 앞에 앉은 관람객들은 난생처음 보는 한 예술가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눈물을 조용히 훔치기도 한다. 작가는 그저 묵묵하게 이를 경청하고 눈빛으로 답할 뿐이었다.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심연에 자리한 개개인의 내면까지 파고드는 그녀의 눈빛과 에너지 앞에서 마음의 빗장이 금세 풀리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이처럼 아브라모비치의 첫인상은 따뜻한 손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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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과 문화적 뿌리가 자리하다


퍼포먼스 아트, 즉 행위예술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정립된 건 1970년대의 일이었다. 퍼포머가 신체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행위는 회화와 조각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매체와 구분되는 20세기의 산물이었다. 이 시기는 퍼포먼스라는 매체를 바탕으로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던 때였다.

한편 유고슬라비아의 동시대 미술을 상징하던 공간인 베오그라드의 학생문화회관(SKC)에서는 변화를 감지하는 예술가들의 매체적 실험이 한창이었다. 그 예민한 학생 중 하나였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훗날 ‘퍼포먼스의 대모’로 불리게 된다. 그런 그녀의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문화적 뿌리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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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Belgrade) 태생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Partisan)으로 구 유고슬라비아 건국에 앞장섰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유고연방의 티토(Josip Broz Tito) 대통령 정부에서 요직에 오른 부모님 덕에 유복했지만, 한 인터뷰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공산주의와 동방정교회 전통의 엄격한 생활방식과 군대식 훈육 등 엄격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일상의 도피처로 예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년기를 지나 유고연방의 붕괴를 거쳐 아브라모비치는 조국의 내란, 학살과 전쟁이라는 혼돈의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이에 폭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신체로 표현하는 제의적이고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점차 신체적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는 극단적인 퍼포먼스의 세계로 이르게 된다.
 
가령 <토마스의 입술(Lips of Thomas)>(1975)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상징인 붉은 별 모양의 상처를 깨진 유리잔으로 자신의 배 위에 그린다. 상처의 피로 얼룩진 몸을 이끌고 얼음 위에 누워 고통을 견뎌낸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자신의 등에 채찍을 사정없이 내려친다. 이는 자신의 조국과 민족이 자행한 일에 대한 처절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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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1997)에서는 소뼈 더미 위에 앉아 유고슬라비아 민요를 부르며 4일 6시간 동안 피를 닦아냈다. 아브라모비치는 이 퍼포먼스로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가 퍼포먼스에서 보여주는 신체적 고통이나 극한의 인내는 유년 시절 자신의 경험을 관람객 앞에서 재상연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변형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각성한 개인이 내는 목소리가 어떻게 현실을 마주하는지, 또 어떻게 타인의 의식에 자극과 충격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술로 승화된 그녀의 삶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2010) 퍼포먼스 도중 과거 연인이자 영혼의 파트너였던 울라이(Ulay)를 마주한 사건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두 사람은 30년 만에 재회한 것으로, 퍼포먼스 내내 담담했던 그녀는 고개를 들자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테이블 위에서 울라이와 손을 맞잡았던 1분 남짓한 장면은 많은 관람객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처럼 아브라모비치가 극단적인 행위예술만을 선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파트너와 함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울라이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서독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우베 라이지펜(Frank Uwe Laysiepen)과 아브라모비치는 1976년에서 1988년까지 ‘다른 사람들(The Others)’이라는 그룹명으로 활동하면서 공동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서로의 예술세계와 자아를 존중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퍼포먼스의 행보를 걸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12년간의 공동 행보를 뒤로하고, 90일 동안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출발해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퍼포먼스 <연인들(The Lovers)>(1988)을 마지막으로 이별했다. 이별까지도 예술로 승화시킨 퍼포먼스는 두 작가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지만, 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관계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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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걸쳐 말하고자 했던 것


그녀의 작업이 인생의 후반기로 가면서 자극보다는 내면의 성찰과 자기 수행을 지향하고 있다. 1988년 2,500km를 각자 이동한 뒤에 만나서 헤어지는 <연인들(The Lovers)>이후 2010년 <예술가는 여기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까지 점차 작가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가장 최근 작품인 <쌀알 세기(Counting the Rice)>(2015)는 검은 쌀과 흰 쌀을 섞어서 잔뜩 쌓아놓고 지원한 관객이 이를 하나씩 분류한다. 반복적으로 쌀알을 나누고 세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응시조차 예술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하고, 걷고, 앉고, 생각하는 평범한 행위가 퍼포먼스의 세계에서는 중차대한 임무가 된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각에 집중하면서 ‘살아있다’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관객에게 “연결한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통해 타자의 신체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넘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타자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같을 수 없는 것, 이 영원한 간극을 뛰어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감행한다. 평생을 행위자와 관객 사이, 자신과 타자의 관계 사이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한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금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예술가는 여기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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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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