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체 무대에선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요? [음악]

무대공포증과 음대생, 그 이야기
글 입력 2019.09.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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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음악을 전공하며 수도 없이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습관처럼 무대에 오르다 보면 정이 들만하기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 난 무대공포증을 앓고 있으니.


무대공포증이란? 관객 앞에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의해 개인에게서 우러나올 수 있는 불안, 공포 또는 지속적인 공포 장애이며 급성일 수도 잠재성(예: 사진기 앞에서 공연할 때)일 수도 있다.라고 정의 된다. 굉장히 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흔한 증상은, 전공으로 이어졌을 때 꽤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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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무대에 대한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전 파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대만 올라가면 본래보다 표현력이 좋아지는 아이였다.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때는 8살 초 여름, 푸르른 날씨에 새로 산 구두를 신고 피아노 대회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드레스를 빠르게 갈아입혀 주던 기억이 난다. 어렸던 나에게 무대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예선과 본선이 따로 진행되는 나름의 큰 대회였고 수많은 아이들이 출전했다. 전혀 떨지 않은 덕에 본선에 진출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고, 무대에 대한 욕심은 그때부터 불이 붙었다.


처음 올라본 무대는 컸고, 눈부셨다. 너무도 눈이 부셔서 엄마 아빠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그 즈음 들려왔던 우렁찬 박수소리가 귀에 오래 울렸다. 그 박수소리의 잔향이 사라지면 피아노 위에 손을 올린다. 그렇게 하얀 적막함 속에 연주를 시작한다. 기억에 남는 건 딱 여기 까지다. 무채색의 시공간을 내 연주로 채우는 느낌. 그 느낌이 좋았던 걸까. 그때의 나는 적어도 지금의 나보다 참 용감했나 보다. 그렇게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무대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전공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예술 중학교에 진학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늘어났다. 전공자로서 실력을 급속히 늘릴 수 있는 감사한 기회였지만 그만큼의 부담감을 감당해야 했다. 더 이상 엄마 아빠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은 전공생들 그리고 냉정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했고, 솔직한 피드백을 무대가 끝난 후 바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춘기라서 그랬던 건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모두의 앞에서 피드백을 받는다는 건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점점 무대를 피하고 싶어졌다. 무대에 올라 시공간을 연주로 채우며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모든 것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머리가 하얘졌다. 이때부터였다. 그 빌어먹을 증상이 시작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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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떨어지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악보를 까먹는 건 당연했다. 무대를 망치는 데서 오는 생각은 ‘아, 망했다. 선생님한테 또 혼나겠다.’였다.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다짐도, 나에 대한 실망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다가왔던 두려움은 선생님의 꾸중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두운 감정의 주체가 ‘나’였다면 지금쯤 그 증상을 극복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그때의 나는 겁먹고 움츠러들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증상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입시를 위해 더 많은 무대에 올랐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진 이유는 아마 그 생각의 주체를 ‘나’로 바꾸려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완벽히 나아질 수가 없었다. 무대공포증은 나를 끈질기게도 물고 늘어졌다. 고등학생 때 무대를 망친 후 드는 생각은 ‘아 망했다. 난 진짜 왜 이럴까?’였다. 속상해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불안함에 손톱을 뜯기도 했다. 그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리고 입시를 준비하는 고3부터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거지?’ 그저 겁먹고 있기에는 입시가 코앞이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무대공포증을 잠재워야 했다.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여느 음악 전공생들처럼 한 주에 한 번씩은 무대에 섰다. 하도 무대에 서니 ‘또 무대에 서는구나.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자.’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음악에만 집중하고 마음속으로 노래하며 눈 딱 감고 연주를 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머릿속으로 내놓은 답은 ‘음악에만 집중하기’였으니. 하지만 역시, 머릿속과 현실은 확연히 달랐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다른 음을 누르는 순간, 내 마음속의 음악은 우르르 무너져버리고 ‘어떡하지?’라는 단어만 이백 번을 소리친다. 그때부터 무대 공포증은 나를 장악한다.


나는 그래서 무대공포증과 나름의 협상을 시도했다. 무대공포증으로 머리가 하얘져도, 악보가 떠오르지 않아도 손이 알아서 연주할 수 있도록 죽어라 연습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그 협상 아닌 협상이 통해 원하던 음악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결국 난 아직까지도 무대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히, 현재의 전공이 타 음대생들보다는 무대에 서는 일이 훨씬 적어 그 무거움을 감당할 일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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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대체 무대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연주했던 거야?” 훌쩍 커버린 나는 야속하게도 그 해답을 기억하지 못하니 스스로 찾아가는 수밖에. 또한 소위 ‘무대 체질’인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대체 무대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연주하세요?” 본인이 무대에서 떨지 않는다면, 부디 나에게 답을 전해 달라 청하는 바이다.


본인이 음악을 혹은 공연을 전공하고 있다면, 무대에 서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 장담컨대, 그중에는 나만큼 혹은 나보다 심하게 무대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약을 먹기도, 누군가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대를 포기할 수 없는 건, 그만큼 익숙한 공간이기도, 그에 대한 열정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같이 본인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을 사람들을 언제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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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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