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군사정권의 잔재, 문화 공간이 되다 - SeMA 벙커 [문화 공간]

글 입력 2019.09.1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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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Bunker: 서울시립미술관 벙커/여의도 지하 벙커


어느 날 한 도시에서 공사 중 우연히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다. 어느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벙커를 시 관계자들은 고심하다 폐쇄한다.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시는 벙커 내의 오래된 구조적 문제를 보완한 후 시민들에게 벙커를 개방한다. 처음에는 선착순 예약제로 개방했던 벙커를 시는 장소의 역사적 의의를 간직하며 차후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지금은 SeMA 벙커, 서울시립미술관 벙커라는 이름을 얻은 여의도 지하 벙커 이야기이다. 벙커는 2005년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 공사 도중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1976년 11월 항공사진에서 벙커의 출입구를 확인한 점, 그리고 당시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하던 점을 토대로 벙커가 1970년대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지어졌을 것이라 추측했다.

     

최대한 발견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며 복원해 현재는 전시관 및 역사 갤러리로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SeMA 벙커, 올해 추석 당일 방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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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계단 길을 내려가면 지하의 어둡고 습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오른편에는 전시관 이용 주의 사항 및 현재 진행하는 전시 포스터를 부착해 놓았다. 사진에 찍히지 않았지만 계단에서 내려오면 바로 정면에는 진행 전시 팸플릿도 자유로이 가져갈 수 있게 책상에 쌓여 있었다.

현재 벙커에서는 "줌 백 카메라(Zoom Back Camera)"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신진 미술인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인 올해 총 9회의 신진 미술인들의 작품 전시 중 하나이다. 참여 작가들은 렌즈를 '줌 백'하는 것과 같은 반성적인 시선으로 무언가에 홀린 듯한 세계 속에 개인의 인지 구조를 동요시키는 감각적인 계기를 제공하려는 작품들로 전시를 채웠다고 한다.

어둡고 습한 지하의 분위기가 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묘하게 어울린다. 과거의 장소에서 미래의 꿈을 담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마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작품을 둘러보고 전시장의 오른편에 여의도와 벙커에 대한 역사의 기록 담긴 역사갤러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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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갤러리로 들어서면 여의도에 대한 설명 및 벙커의 발견과 오늘날 어떻게 문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과 다양한 사진, 영상 자료가 벽에 부착되어 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냉장고와 같은 물건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무릎까지 차는 물이 벙커에 차올라 안에 있던 물건들이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진의 소파는 실제 발견 당시 물에 잠겨 있어 천은 삭아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 뼈대는 그대로 유지해 전시한 것이다.

   

소파 뒤에는 VIP 전용 화장실, 열쇠보관함 및 발견 당시 벙커 콘크리트 두께를 확인할 수 있는 코어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대통령 대피용으로 많은 준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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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선착순 예약제로 시민들에게 벙커를 개방한 후, 벙커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 시민들과 시 의회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원형 보존 요구를 받아들여 현 상태 유지 후, 전시를 개최하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벙커가 지어진 그 첫 목적을 떠올려 보면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며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점은 시간의 흐름과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보여준다.

군사 정권의 잔재,  그리고 현대 미술 전시관. 묘한 공존이 이루어지는 이 문화 공간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과거 역사의 한 모습을 간직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SeMA 벙커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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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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