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마주할 때마다 꼭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1998년에 개봉한 영화 <트루먼쇼> 이다. 정확하게 세 본 적은 없지만 대략 스무 번 정도는 보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한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태어난 순간부터 220개국 17억 인구가 지켜본 지상 최대 버라이어티 쇼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트루먼은 자신을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트루먼은 이상한 일을 겪는다. 길에서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와의 짧은 만남 이후,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에서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는 일련의 사건 이후, 모든 것이 ‘쇼’라는 말만 남기고 갑자기 자신을 떠난 첫사랑 실비아를 떠올린다.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자신의 인생에 의구심을 느낀 트루먼은 사라진 실비아와 그녀가 남긴 말의 진실을 찾기 위해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관찰당하는 트루먼의 인생에 대해서 논하곤 한다. 그의 인권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그 삶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트루먼이 사는 섬 곳곳에 있는 많은 카메라가, 나에게는 전지적 참견 시점과 같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속의 관찰 카메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본 직후에는 누가 실제로 나의 일상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보고 있을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콘셉트'라는 명목 하에 본래의 나라면 하지 않을, 그런 인위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 왜 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나름 시끌벅적한 집에서 20년을 살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함께 사는 룸메이트가 있었다. 가족도 룸메이트도 없는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과제를 했다. 반복되는 매일은 금새 너무 따분했다.

내가 콘셉트 놀이를 하는 이유는 지루하고 심심한 기분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돈 들여 새로운 카페를 전전하는 귀찮은 일도 필요도 없다. 그냥 조금 새로운 각오로 일상에 임하면 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평론가 마냥 미장셴이 어쩌고, 메타포가 어쩌고 하며 아까 본 영화를 진지하게 곱씹는다. 내가 이 헬스장의 최고 몸짱이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것도 내가 운동을 지속하는 색다른 방법이다.
반복되는 매일에 싫증 나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면 트루먼처럼 나의 하루도 누군가에게 방영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커리어 우먼’, ‘조금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신입’과 같은 콘셉트로 하루를 보낸다면, 힘들기만 했던 매일이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