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맨 오브 스틸" - 블록버스터형 영웅에 작별을 고하며 [영화]

글 입력 2019.09.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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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2013)》은 외계 행성 크립톤에서 슈퍼맨이 지구로 오게 된 계기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슈퍼맨의 개인적인 고뇌와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기존의 슈퍼맨 시리즈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1930년대에 슈퍼맨이 창작된 이래로 슈퍼맨과 관련한 모든 작품들은 줄곧 위기에 빠진 지구인을 구하는 슈퍼맨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였고 슈퍼맨의 트라우마를 비롯한 개인사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1930년대 당시 문화적 오락거리를 잃은 미국인들은 슈퍼맨의 어두운 면들을 굳이 알고 싶은 이유도 없었으며, 한편 슈퍼맨은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므로 슈퍼맨의 출생비화와 성장기는 하나의 서사적 배경으로만 존재하도록 하고 그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 면들에서 비추어 보면 2010년대에 처음으로 슈퍼맨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영웅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인식해본다는 긍정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화 특성상 컴퓨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의 장면들과 전투 씬들이 난립하여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단 영화에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존재하냐는 의문 역시 발생한다.


대기업형 상업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맨 오브 스틸》 역시 전투 씬, 애정 씬, 코믹 씬 등이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있어 볼거리를 풍부하게 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영화는 일관된 분위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받지 못하게 되는데, 본 글에서는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석해보고, 궁극적으로는 오늘날 대중의 요구와 슈퍼맨의 상징성이 충돌하게 되는 지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슈퍼맨의 성장기



크립톤 행성이 무차별적인 자원 개발에 의해 생명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마지막 생명체로서 그는 지구로 보내지게 된다. 클라크(슈퍼맨)는 지구인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처음에는 지구의 대기와 중력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소리가 웅웅 울리는 식으로 들리고 사물들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탓에 클라크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조금씩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지구인들 사이에서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초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온 자신이 결코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그를 바르게 이끌기 위해 부모님은 정성을 다하여 그를 이끌어준다. 엄마는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그를 달래주고 그가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며, 아버지는 그가 넓은 마음을 가지도록,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조언한다. 무거운 운명을 타고난 슈퍼맨은 부모님의 지도하에 초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정신까지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 평화



크립톤 행성의 장군이었던 조엘은 지구의 모든 방송을 장악하여 슈퍼맨을 자신들에게로 송환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슈퍼맨이 자진해서 지구를 떠나야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클라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영웅물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진해서 조엘의 앞에 등장하지만, 끝내는 용감하게 맞서 싸워 승리하게 된다.


사실 영화가 이러한 장면을 연출한 것은 대중의 이기적인 모습과 영웅 개인의 고뇌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지구의 운명과 크립톤 행성의 존망에 대한 갈등, 슈퍼맨 개인의 자유와 여론 사이의 갈등)은 영웅의 초능력으로서 극복되고 다양한 전투 장면들을 통해 영웅적인 면모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꾸며진다. 한 영웅의 능력 덕에 지구는 지켜지고 슈퍼맨은 명예와 사랑과 가족을 모두 지킬 수 있게 된다.

 


클라크(슈퍼맨) : 세상이 너무 커요


엄마 : 그럼 세상이 작은 섬이라고 생각하렴, 그리로 헤엄쳐가렴



슈퍼맨의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클라크의 성장기는, 남들과 다른 자신을 인식하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부과되는 세상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클라크의 경우는 스스로의 물리적 조건이 지구의 환경과 잘 맞지 않았고, 이러한 제한이 사회부적응으로까지 이어진 케이스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말이 웅웅 울려서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벽 너머의 물체의 형상까지도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다.)


클라크의 엄마는 거대한 세상을 작은 섬으로 치환해버림으로써 그가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왔다. 클라크의 물리적인 한계가 사회적 부적응으로 이어진 것은, 세계와 타협할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하자 세상이 본인에게 부과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작은 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버리면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돼버린다. 세상을 작은 섬으로 치환하는 것,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개인은 너무 무능력하다고 생각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야하는 슈퍼맨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러한 사고는 작품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클라크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는 ‘너의 힘을 의미있는 데 쓸 수 있게 될 거야’라는 말을 해주고는 하는데, 이 “의미있는 데”는 결국 세계의 평화를 일컫는 것이다.


결국 슈퍼맨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것은 세계라는 거대한 무언가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인데, 클라크의 엄마가 한 조언과 슈퍼맨의 숙명은 둘 모두 의미있는 것이지만 전혀 상반된 방향을 갖는 것이라서 (엄마의 조언은 상대해야하는 세계는 작은 것이라는 뜻이고, 아버지의 조언은 너는 더욱 단단해져서 큰 세계를 책임 질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니까) 결국 영화가 하나의 완성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를 감상하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세계와 평화는 영화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규모가 다르다. 개인에게 있어서 세계는 자신의 영향이 미치는 (혹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영역을 말할 것이고, 평화 역시 자신의 영역 이내의 평화만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인한 국가간 대립이 사실상 마감되고 저성장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자란 세대에게 ‘세계’와 ‘평화’라는 키워드는 크게 와닿질 못한다.


대학생에게 있어서 세상은 학점과 스펙으로서 자신을 평가하는 불분명한 대상에 불과하고, 사회인에게는 감봉과 실직의 불안을 조성하는 환경이다. 전 지구를 관망하기에는 물리적인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에게 영웅물이라는 장르가 단순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

 

막대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영웅 이야기가 현대의 관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일차원적인 시각적 화려함과 오락거리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모두가 의지를 모아 하나의 목표를 완수해내던 시대에 경제와 기술을 성장시키느라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과를 가시화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형 영화가 충분한 인기를 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와 같은 방식의 영화를 고수하는 것은 관객에게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즐거움을 줄지언정 현실로 돌아가야하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차라리 영화 속에서 클라크와 여기자 사이의 애정씬을 더욱 극대화하거나, 클라크의 가족들 사이에 벌어졌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더욱 많이 추가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년 동안 《맨 오브 스틸》의 후속작이 나오지 못한 것은 더 이상 세계의 영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대중들의 생활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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