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해석과 개성 찾기 [음악]

Susanna, 《Garden of Earthly Delights》
글 입력 2019.09.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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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힘들지만, 만들기도 힘듭니다. 만드는 사람은 이미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인정하고 작품을 만듭니다. 어떠한 영향을 살짝만 취득해 개성을 찾거나, 영향을 그냥 그 상태로 수용하기도 합니다. 이마저도 재미없다고 느낀 사람들은 전대의 작품을 비틀기도 합니다. 큰 틀은 이미 발표된 작품이지만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재해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재해석은 원작이라는 디딤돌이 있는 만큼 부담도 큰 방식입니다. 자신의 해석만 앞세워 원작을 알아볼 수 없다면 나쁜 재해석이 됩니다. 반대로 자신의 이야기가 없고 원작만 따라가면 표절과 별반 다름없는 재해석이 됩니다. 좋은 재해석은 원곡의 미학과 해석하는 사람의 개성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재해석을 개성과 동시에 해내는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노르웨이 출신 가수 수산나(Susanna Wallumrod)입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 겸 가수로 활동하면서 올해(2019년)로 데뷔한 지 15년을 맞이합니다. 수산나는 2011년까지 독립 레이블에서 앨범을 내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1년 이후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제약 없이 뽐내기 위해 Susanna Sonata라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합니다. 그녀의 작업 중 인정을 받았던 것은 과거 인기 그룹의 곡을 재해석한 작품이었습니다. 레너드 코첸, 아바, AC/DC, 씬 리지 등의 곡들을 독특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 독창성은 개별적인 앨범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녀의 성과는 국내(노르웨이)와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2013년 발매한 앨범 《Forester》는 노르웨이 그레미 Spellemannprisen 상 오픈 클레스 부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규정할 수 있는 음악 스타일은 두 갈래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인디 팝과 실험주의입니다. 재즈, 일렉트로니카가 적절하게 섞인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재즈 스타일을 앞에 두었다면 피아노가 들릴 것이고, 일렉트로니카를 앞에 두었다면 실험적인 스타일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둘은 비율에 따라 달라지지만 떨어지거나 단독으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이는 장르를 특정 지어 그녀가 무슨 음악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험(Experimental)'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왠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수산나가 하는 실험은 고요한 실험에 가깝습니다. 부드럽고 청자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부드러운 실험을 제시합니다. 크게 뒤틀리고 망가지는 음이 아닙니다. 흐름에 맡긴 독창성에 가깝습니다. 이런 부드러운 실험은 앨범 《Garden of Earthly Delights》에서 완벽히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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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제목은 15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 보시(Bosch)의 작품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바로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uin der lusten: 하단)" 줄여서 "쾌락의 동산"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병풍과 같은 모습으로 3부작으로 이어진 그림입니다. 1부는 천국(에덴), 2부는 현세. 3부는 지옥으로 이러집니다. 이곳에 그려진 인간 군상과 동물들은 하나같이 기이하며 신비롭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난해하기도 한데 이런 그림 하나하나가 수산나와 이 앨범에 영향을 끼칩니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녀의 음악은 초현실적이고 복잡한 그림과 연결됩니다. 특히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복잡함'은 음악으로 그림을 재해석하는데 꼭 필요한 공통분모로 작용합니다. 이로써 쾌락의 동산에서 울려 퍼질 수 있을 자연스럽고 불확실한 음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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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여는 곡은 앨범의 타이틀과 이름이 같습니다. 처음은 차분합니다. 감미로운 보컬을 바탕으로 피아노가 주축이 된 곡으로 기본에 충실한 느낌입니다. 특별히 반전되는 효과도 없으며 디스토션도 없이 깔끔하게 전개됩니다. 인트로는 차분하게, 여느 인디 팝과 비슷한 형식으로 변장을 하며 시작됩니다. <Wayfarer>의 초반부도 처음 곡과 비슷합니다. 약간의 전자음이 들어갔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전자음과 디스토션이 늘어납니다. 이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앨범은 이 곡의 후반부를 통해 1부에서 2부로 장소를 이동시킵니다.

연결되는 <Ecstasy X>는 수산나를 잘 설명하는 곡입니다. 불안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위의 두 곡에서 반복되었던 감미로운 보컬과 대비를 이룹니다. 또한 효과로 등장하는 호흡소리는 알 수 없는,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감상을 구체화시킵니다. 영화를 보는 듯한 입체효과는 앨범의 재미를 한층 높여줍니다. 이런 효과들은 지루할 수 있는 반복을 극복하며, 음악을 이미지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이 입체화 과정은 <Death and the Miser>에서도 유효합니다. '돈'을 찾는 쾌락은 이제 인간 세상으로 들어왔다는 환영의식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지만 노래는 무섭고, 섬뜩하며, 소름이 돋습니다. 계속해서 '돈돈돈'하는 것은 물질의 쾌락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짧지만 매력적인 곡 <Ship of Fool>에서 피아노가 다시 등장합니다. 비정상적인 보컬은 사라지고 감미로운 보컬도 등장합니다. 중간중간 짧지만 분위기를 환기하는 곡들은 앨범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곡을 하나의 곡으로 연결합니다. 즉 싱글, 싱글이 아닌 한 작품으로 앨범을 보게 됩니다. 수산사가 앨범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노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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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하나하나가 같은 힘이 강력한 곡도 있습니다. <Ecstasy>, <Wilderness>, <Beautiful Life>에서는 다른 스타일, 형식, 악기들이 등장함으로 싱글로서의 매력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앨범 전체로 봤을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따로 뜯어놓아도 문제가 없을 곡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 앨범의 매력이자 장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앨범 말미로 가면 곡들은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해집니다. 쾌락을 얻었던 초중반의 모습과는 반대로 흘러갑니다. 노래도 쓸쓸해지고 피아노가 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앨범은 많은 걸 잡았습니다. 우선 자신의 방식으로 보쉬의 작품을 해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쾌락의 정원이라는 스토리를 얻어냈고 이 앨범의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앨범이 단독으로 갖는 구성이나 형식은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마지막으로 개별적인 곡이 지닌 경쟁력이 좋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실험적인 타이틀이 붙었지만 인디 팝적인 요소가 짙은 곡들은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갖추는데 성공했습니다. 귀를 사로잡는 코러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 구성, 스토리텔링을 모두 얻었기에 이 앨범은 수산나를 대표할 디스코그래피가 될 것입니다.



지루하지 않은 과정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앨범



[노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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