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랍 속에서 Yepp을 발견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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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Yepp을 발견했다. 건전지를 바꿔 끼고 전원을 누르니 켜진다. 심지어 음질도 빵빵해! Yepp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소개하겠다. 내 Yepp(YP-55)은 2003년에 나온 MP3로 한 손으로 이전 곡 또는 다음 곡 재생이 가능하다. 메뉴에서 곡을 바로 삭제할 수 있고, EQ도 조정할 수 있다. 용량은 무려 256mb! 320kb 기준으로 딱 7곡이 들어간다.
USB를 연결해 폴더에 들어가 봤다. 새로운 MP3를 구매하며 엄마에게 기기를 줬기 때문에 내 취향의 곡이 1도 없었다. 나의 흔적이 남은 거라곤 '乃 폴더'라는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법한 폴더명뿐…
만약 7곡밖에 들을 수 없다면, 어떤 곡이 좋을까? 고르고 골라 선정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시라.
1. 인생 첫 팝송, BSB - As long as you love me
우리집엔 MTV가 나왔는데, 그때 처음 봤던 팝송 뮤직비디오가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As long as you love me)'이다. 마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멈출 수 없다.
이 뮤직비디오를 처음부터 못 봐서 제목을 몰랐었다. 노래가 정말 좋아서 계속 듣고 싶은데, 제목을 모르니 몇 년 동안 음만 기억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우연한 계기로 노래 제목을 알게 되고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2. 여름 밤, 트렉을 돌던 때가 생각나, SE7EN - 열정2003년 힐리스를 신고 나왔던 세븐. 무대에서 넘어졌지만 바로 일어나 노래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 노래는 2004년 여름에 나온 거로 기억한다. 좋아했던 남자애의 반응 하나에 울고 웃었던 여름밤, 친구와 운동장 트랙을 돌며 세븐의 열정을 반복해서 들었다.‘왜 너는 내 맘 모르니 / 몰라도 너무 모르지’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 그 애가 내 맘을 알아주기라고 할거라는 듯. 표현하는 대신 노래 듣기에 열을 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찰스 스완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고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던 것처럼,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여름날의 눅눅한 공기와 남색의 하늘, 그리고 웃음소리가 기억난다.3. 비 오거나 추운 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Harry Styles - Two ghosts
2017년 가을 런던 여행을 갔다. 여행을 갈 땐 그 지역의 행사나 콘서트가 있는지 찾아보는 편인데, 마침 해리 스타일스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국 이틀 전에 취소표가 나와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원 디렉션의 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을 알고 있고 마침 영화 <덩케르크>도 봤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입장 줄을 기다리다 대화를 나눴던 스타일스의 골수팬 릴리. 런던에서 보냈던 코끝 시린 가을과 맑은 하늘, 바닥을 뒹구는 낙엽이 떠오른다. 음원도 좋지만, 콘서트에 다녀온 탓인지 라이브 버전이 더 좋다.4. 비행기 탈 때마다 듣는 노래,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 날짜변경선먼 도시로 여행 갈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시간이다. 오늘 저녁에 14시간을 날아 도착했는데도 오늘이다.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날짜변경선을 들으면 여행의 설렘이 느껴진다.‘the star will shine on days of our time 그 하루 세상이 우릴 위해 멈춰 있듯 Date line has smiled at us now’ 라는 가사 때문에 비행기를 타면 항상 듣는 노래다.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시간이 앞당겨지듯, 비행기를 타면 늘 설레는 일이 생기니까. 일상에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거나 타지에 갈 때 듣곤 한다.5. 내 맘을 아는 건 자우림뿐이야!, 자우림 - 오렌지 마말레이드진로에 고민이 많았던 중고등학생 때 많이 들었던 노래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커서 뭐 할 거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때마다 ‘포토그래퍼요’, ‘작가요’라는 대답을 하면 그런 걸 하면 밥 굶는다고 혼이 났다. 이 직업 외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하면 다들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모두들 뭔가 말해보라 해’ ‘이대로이면 안 되는 걸까 나 이상한 걸까 어딘가 조금 삐뚤어져 버린 머리에는 매일 매일 다른 생각만 가득히’ 지금 생각하면 자우림이 시대를 앞선 가사를 썼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내 마음을 아는 건 자우림 밖에 없어! 라는 마음으로 자우림의 노래만 듣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중학생 때 희망했던 길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 다행히 밥도 안 굶고 있다.6. 감정이 차올라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Aaron Tveit - Goodbye한참 뮤지컬에 빠져있을 때 유튜브에서 아론 트베잇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영상을 봤다. 그의 목소리와 무대 매너에 반해 영상을 찾아보다 입덕했다. ‘Goodbye’는 그를 브로드웨이의 아이돌로 만든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피날레 곡이다.뉴욕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슬프게도 그는 이미 뉴욕 뮤덕들의 아이돌이었기에 표를 구할 수는 없었다. 공연장 대신 그가 자주 산책을 나온다는 센트럴 파크 곳곳을 돌아다니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넘버와 그가 커버한 ‘Autumn in Newyork’을 들었다.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는데, 외양이 비슷한 남성을 봐서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그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나는 그 사람이 아론이었다고 믿는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유튜브에 마지막 공연날 녹음본이 있는데, 그걸 들으면 감동이 배가된다.7. 패기 넘치는 가사가 좋아, 몬스타엑스 - 무단침입어쩌다 듣게 된 곡인데 가사가 재미있어서 요새 자주 듣는다.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 / Knock Knock 자 들어갑니다 / 넌 깜짝 놀랄 게 분명합니다’ , ‘네가 너무 헤매서 내가 왔어’ 패기 넘치는 가사다. 발상이 재미있어서 자꾸만 듣게 되는 노래. 비트가 빠른 노래라 기분이 처질 때 들으면 내적 댄스 바이브가 충만해진다.이 노래 때문에 몬스타엑스에 관심이 생겼다. 가사가 재미있어서라는 핑계로 1집부터 전곡 스트리밍을 했고, 무대 영상도 찾아봤다. 그동안의 덕질이 덤프트럭에 치이듯 강렬했다면, 이번 덕질은 차에 치였음에도 아니야! 나 괜찮아! 하며 입덕부정기를 거친 후에야 인정했다. 이 리스트엔 못 들어갔지만, 중독성 강한 ‘Jeaslousy’, 퇴근길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듣는 ‘Myself’ 도 추천한다.*음악을 무한정으로 들을 수 있는 요새, 평생 들어도 좋을 7곡만 정하는 게 새삼 어렵게 느껴졌다. 옛날 같으면 자우림 3집 5번 트랙,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집 2번 트랙하고 바로 골랐을 텐데.
7곡을 정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게다가 여러 번 바뀌었다. MP3를 소유한 이래로 꾸준히 만들어왔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3천 곡 넘게 들었는데, 많이 들은 노래는 두 가지 유형으로 갈렸다. 추억이 얽혀 있거나 가사 또는 비트가 좋아서 많이 들었던 경우로 후자의 수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기사를 준비하며 친구에게 네가 만약 7곡밖에 들을 수 없다면 어떤 노래를 들을래? 하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의 인생 굴곡을 담은 노래를 추천했다. 지인은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듯 자신을 버티게 한 노래들, 몇십 년째 듣는데 아직도 소름이 돋는 노래를 망설임 없이 추천했다. 노래는 인생의 모토가 되기도, 힘든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내가 듣는 음악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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