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랍 속에서 Yepp을 발견했다. [음악]

글 입력 2019.09.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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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Yepp을 발견했다. 건전지를 바꿔 끼고 전원을 누르니 켜진다. 심지어 음질도 빵빵해! Yepp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소개하겠다. 내 Yepp(YP-55)은 2003년에 나온 MP3로 한 손으로 이전 곡 또는 다음 곡 재생이 가능하다. 메뉴에서 곡을 바로 삭제할 수 있고, EQ도 조정할 수 있다. 용량은 무려 256mb! 320kb 기준으로 딱 7곡이 들어간다.


USB를 연결해 폴더에 들어가 봤다. 새로운 MP3를 구매하며 엄마에게 기기를 줬기 때문에 내 취향의 곡이 1도 없었다. 나의 흔적이 남은 거라곤 '乃 폴더'라는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법한 폴더명뿐…


만약 7곡밖에 들을 수 없다면, 어떤 곡이 좋을까? 고르고 골라 선정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시라.




1. 인생 첫 팝송, BSB - As long as you love me





우리집엔 MTV가 나왔는데, 그때 처음 봤던 팝송 뮤직비디오가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As long as you love me)'이다. 마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멈출 수 없다.


이 뮤직비디오를 처음부터 못 봐서 제목을 몰랐었다. 노래가 정말 좋아서 계속 듣고 싶은데, 제목을 모르니 몇 년 동안 음만 기억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우연한 계기로 노래 제목을 알게 되고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2. 여름 밤, 트렉을 돌던 때가 생각나, SE7EN - 열정




2003년 힐리스를 신고 나왔던 세븐. 무대에서 넘어졌지만 바로 일어나 노래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 노래는 2004년 여름에 나온 거로 기억한다. 좋아했던 남자애의 반응 하나에 울고 웃었던 여름밤, 친구와 운동장 트랙을 돌며 세븐의 열정을 반복해서 들었다.

‘왜 너는 내 맘 모르니 / 몰라도 너무 모르지’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 그 애가 내 맘을 알아주기라고 할거라는 듯. 표현하는 대신 노래 듣기에 열을 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찰스 스완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고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던 것처럼,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여름날의 눅눅한 공기와 남색의 하늘, 그리고 웃음소리가 기억난다.



3. 비 오거나 추운 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Harry Styles - Two ghosts




2017년 가을 런던 여행을 갔다. 여행을 갈 땐 그 지역의 행사나 콘서트가 있는지 찾아보는 편인데, 마침 해리 스타일스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국 이틀 전에 취소표가 나와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원 디렉션의 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을 알고 있고 마침 영화 <덩케르크>도 봤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입장 줄을 기다리다 대화를 나눴던 스타일스의 골수팬 릴리. 런던에서 보냈던 코끝 시린 가을과 맑은 하늘, 바닥을 뒹구는 낙엽이 떠오른다. 음원도 좋지만, 콘서트에 다녀온 탓인지 라이브 버전이 더 좋다.



4. 비행기 탈 때마다 듣는 노래,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 날짜변경선




먼 도시로 여행 갈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시간이다. 오늘 저녁에 14시간을 날아 도착했는데도 오늘이다.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날짜변경선을 들으면 여행의 설렘이 느껴진다.

‘the star will shine on days of our time 그 하루 세상이 우릴 위해 멈춰 있듯 Date line has smiled at us now’ 라는 가사 때문에 비행기를 타면 항상 듣는 노래다.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시간이 앞당겨지듯, 비행기를 타면 늘 설레는 일이 생기니까. 일상에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거나 타지에 갈 때 듣곤 한다.



5. 내 맘을 아는 건 자우림뿐이야!, 자우림 - 오렌지 마말레이드




진로에 고민이 많았던 중고등학생 때 많이 들었던 노래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커서 뭐 할 거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때마다 ‘포토그래퍼요’, ‘작가요’라는 대답을 하면 그런 걸 하면 밥 굶는다고 혼이 났다. 이 직업 외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하면 다들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모두들 뭔가 말해보라 해’ ‘이대로이면 안 되는 걸까 나 이상한 걸까 어딘가 조금 삐뚤어져 버린 머리에는 매일 매일 다른 생각만 가득히’ 지금 생각하면 자우림이 시대를 앞선 가사를 썼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내 마음을 아는 건 자우림 밖에 없어! 라는 마음으로 자우림의 노래만 듣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중학생 때 희망했던 길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 다행히 밥도 안 굶고 있다.



6. 감정이 차올라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Aaron Tveit - Goodbye




한참 뮤지컬에 빠져있을 때 유튜브에서 아론 트베잇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영상을 봤다. 그의 목소리와 무대 매너에 반해 영상을 찾아보다 입덕했다. ‘Goodbye’는 그를 브로드웨이의 아이돌로 만든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피날레 곡이다.

뉴욕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슬프게도 그는 이미 뉴욕 뮤덕들의 아이돌이었기에 표를 구할 수는 없었다. 공연장 대신 그가 자주 산책을 나온다는 센트럴 파크 곳곳을 돌아다니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넘버와 그가 커버한 ‘Autumn in Newyork’을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는데, 외양이 비슷한 남성을 봐서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그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나는 그 사람이 아론이었다고 믿는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유튜브에 마지막 공연날 녹음본이 있는데, 그걸 들으면 감동이 배가된다.



7. 패기 넘치는 가사가 좋아, 몬스타엑스 - 무단침입





어쩌다 듣게 된 곡인데 가사가 재미있어서 요새 자주 듣는다.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 / Knock Knock 자 들어갑니다 / 넌 깜짝 놀랄 게 분명합니다’ , ‘네가 너무 헤매서 내가 왔어’ 패기 넘치는 가사다. 발상이 재미있어서 자꾸만 듣게 되는 노래. 비트가 빠른 노래라 기분이 처질 때 들으면 내적 댄스 바이브가 충만해진다.

이 노래 때문에 몬스타엑스에 관심이 생겼다. 가사가 재미있어서라는 핑계로 1집부터 전곡 스트리밍을 했고, 무대 영상도 찾아봤다. 그동안의 덕질이 덤프트럭에 치이듯 강렬했다면, 이번 덕질은 차에 치였음에도 아니야! 나 괜찮아! 하며 입덕부정기를 거친 후에야 인정했다. 이 리스트엔 못 들어갔지만, 중독성 강한 ‘Jeaslousy’, 퇴근길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듣는 ‘Myself’ 도 추천한다.

*

음악을 무한정으로 들을 수 있는 요새, 평생 들어도 좋을 7곡만 정하는 게 새삼 어렵게 느껴졌다. 옛날 같으면 자우림 3집 5번 트랙,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집 2번 트랙하고 바로 골랐을 텐데.


7곡을 정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게다가 여러 번 바뀌었다. MP3를 소유한 이래로 꾸준히 만들어왔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3천 곡 넘게 들었는데, 많이 들은 노래는 두 가지 유형으로 갈렸다. 추억이 얽혀 있거나 가사 또는 비트가 좋아서 많이 들었던 경우로 후자의 수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기사를 준비하며 친구에게 네가 만약 7곡밖에 들을 수 없다면 어떤 노래를 들을래? 하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의 인생 굴곡을 담은 노래를 추천했다. 지인은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듯 자신을 버티게 한 노래들, 몇십 년째 듣는데 아직도 소름이 돋는 노래를 망설임 없이 추천했다. 노래는 인생의 모토가 되기도, 힘든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내가 듣는 음악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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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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