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하는 여성을 말하다 "모던걸타임즈"

글 입력 2019.09.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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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타임즈_Review



<모던걸타임즈>를 보고 왔다. 명동역에서 내려 옆의 커다란 교회를 지나치며 걸어가다 보면, 목판체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극장의 간판이 보인다. 어딘가 모르게 세월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벽돌 건물, 삼일로창고극장에 발을 디뎠다. 들어서는 입구 왼쪽에 매표소가, 오른쪽에 대기할 수 있는 갤러리가 있다.


표를 받고, 지갑에 있던 현금 조금을 상자에 털어 넣어 프로그램북을 하나 가져왔다. <모던걸타임즈>의 프로그램북은 자율기부다. 계좌이체도 가능하단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프로그램북이 재밌었다. 만나볼 인물들을 미리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로그램북을 미리 읽고 들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공연장에서는 굿모닝- 굿모닝- 요란한 옛 가요가 하우스 뮤직으로 반복되었다. 무대 위 소품들을 미리 눈여겨두며 즐겁게 공연을 기다렸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무대 위 비춰진 화면에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2019,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 1940년대, 듣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가 존재하던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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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일하는 여성을 통해 본 모던타임즈
역사를 통과하는 여성의 몸과 말


경성 제일의 미용사, 임형선
부산 패션계의 큰손 양재사, 이종수
카네보 상사의 유일한 조선인 타이피스트, 양충자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를 살아간
보통 여성들의
일상적인 노동이야기



<모던걸타임즈>는 흔히 봐온 드라마를 가진 극이 아니라, 버바텀 극이었다. 버바텀(verbatim) 연극은 버바텀이 가지는 ‘말 그대로’라는 의미처럼, 실존하는 기록과 인터뷰를 편집, 배열해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극을 이야기한다. <모던걸타임즈> 속 임형선, 이종수, 양충자는 모두 실제 인물들이다. 실제 인물들의 목소리, 기록은 배우들에게 실려 현시대의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극은 새롭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극 형식 자체는 제법 특이하고 새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결코 낯설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


하지만 낯설지 않다고 해서 익숙한 그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처음이었다. 70년 전 여성의 노동 이야기.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닌다던 신여성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경성 제일 가는 미용사, 부산 패션계의 큰손 양재사, 카네보의 유일한 조선인 타이피스트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듣고 싶었던 이야기, 보고 싶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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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롱으로 머리를 말고, 타자기로 타자를 치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던 세 전문직 여성의 모습이 길게 기억에 남는다. 그 빠른 손놀림들을 긴 텀을 두고 보여주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참 좋았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드물게 다루어졌던, 그러나 분명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노동의 재현이었다.


이종수가 의자에 앉아 직접 구상하고 계획하고 만들던 그 모든 것이 참으로 좋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말 못할 기분이 들었다. 퇴근하지 못하고 일을 마저한다는 양충자의 목소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는 임형선의 목소리도 잊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전쟁 속에서 가사 노동까지 부담하면서도 제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잃지 않은 목소리였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본인의 맡은 바를 책임감 있게 해나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할 나위 없이 재밌었다.


새로운 거를 발견해서 하니까

나를 많이 응원을 해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해냈지 싶은 생각이 드네.


- 이종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었다. 모윤숙, 김수임, 아이버 젠킨스, 카네보 상사의 골드미스들. 이종수, 임형선, 양충자에게 도움을 주고 받던 동시대 여성들이다. 양재사 이종수는 인터뷰에서 스타일북, 옷감을 지원해주던 사람들을 언급하며 행복한 생활을 했다고 반복해 말한다. 일에 대한 주체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 뒤에는 그들의 본보기가 되던, 그리고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던 또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연대를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연대 뒤에, 마찬가지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혐오 역시 마주 할 수 있었다. 미용사가 부잣집 아들과 몇 번 데이트했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경찰서로 잡혀가고,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결혼이 당연시되어 선으로 결혼을 하고, 전쟁통이니 집에 들어가 자숙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혐오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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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시대 속 혐오와 모순에도 굴하지 않고 저마다의 직업을 사랑했던 세 여성. 남성중심 서사 속에서 외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졌던 신여성이 아닌, 살아있는 목소리의 모던걸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이 극은 현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 동시에, 이미 있었던 이야기의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구술이다. <모던걸타임즈>가 전 회차 매진되었다고 들었다. 그들의 매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발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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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타임즈
- Modern GIRL Times -


일자 : 2019.08.30 ~ 2019.09.08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 삼일로 창고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후원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공연시간
75분


*
2019.09.07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 예정
(연극비평집단 시선에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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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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