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락방 미술관

글 입력 2019.09.0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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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했다. 그리는 것 말고 보는 것을. 어쩌면 처음엔 그냥 미술관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 두 시간 수업을 위해 세 시간을 길 위에 뿌려야 했지만 오가는 길이 행복했다.


- 프롤로그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나의 일기를 읽는 줄 알았다. 실제 나의 이야기처럼 꼭 맞아 떨어지는 글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미술관을 다녔고, 전시를 보러 다녔다. 대학에 와서도 미술과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고 싶어 디자인을 배웠지만, 시간이 갈 수록 실기보다는 이론이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각자의 전공이 있는 캠퍼스를 오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글쓴이처럼 하루 세 시간 이상을 길 위에 뿌렸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수업을 통해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부터 글쓴이에게 공감을 하게 되었고, 이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다락방 미술관의 보도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다.

   


-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에 버금가는 ‘세잔의 사과’란?


-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린 피카소는 왜 세잔을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했나?


- 고갱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를 보고 고흐가 귀를 자른 사연은?


- 에릭 사티가 같은 소절을 840번이나 반복하는 ‘짜증’이라는 곡을 쓴 이유는?


- 사랑꾼 샤갈은 <그녀 주위에>에서 왜 자신의 고개를 거꾸로 그렸을까?


- 사교계를 휩쓴 코코 샤넬이 거부한 자신의 초상화가 그녀의 대표 초상화가 된 사연은?


- “나는 인형이 아니요, 살아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외다” 나혜석이 자화상에서 외친 것은?


- “내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면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로트레크가 절규한 사연은?


- 모딜리아니는 왜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 마리 로랑생과 아폴리네르의 파국 맞은 사랑, 그 범인이 <모나리자>인 까닭은?



미술이론을 공부하다보면 교수님들께서 종종 피곤해하는 학생들을 위해 화가들 또는 작품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전공자가 꼭 알아야 할 필수지식이 아닌 당시 미술계를 휩쓸었던 소문들이나, 화가들의 사생활,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이에 속했다. 위의 질문들을 읽으며 질문을 보며 과거 공부했던 내용들을 복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진진해 하던 이 때가 떠올랐다. 연달아 이어지는 수업에 지치면서도 과거 미술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진진해 했던 순간들을 말이다.


책은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바로크미술과 페미니즘미술에서 항상 화두되는 중요한 화가다. 그녀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실력을 마음껏 펼쳐내지 못했던 인물임과 동시에 불우한 일들을 연달아 겪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그림은 남성 화가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은 수동적이지 않았고, 그림 속에는 그녀의 분신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고달픈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는 그림으로 악몽을 떨쳐버리고 여성 최초로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함과 동시에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녀의 인생을 모른다면 그녀의 그림 속에 숨겨진 메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젠틸레스키 뿐만 아니라 많은 화가들과 작품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누구나 읽기 쉽게, 그리고 재미를 느끼게 풀어냈다. 미술은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한 미술책이 아닌, 책의 제목과 같이 다락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듯 편하게 풀어냈다. 책의 중간중간 그림에 대한 글쓴이의 감상에 공감을 하기도 하며, 또는 글쓴이와 조금은 다른 의견들을 비교해가며 읽어내려가는 재미도 함께했다.


책은 총 27명의 화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서양의 화가들이지만 이례적으로 우리나라의 화가 나혜석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다. 한국의 미술에 대해 배우던 수업에서 처음 만났던 나혜석 작가를 책에서 다시 만나 또 한 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책은 세잔, 고흐, 피카소, 나혜석 등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알 법한 유명한 화가들을 다룰뿐만 아니라  메리 카사트, 베르트 모리조,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 등과 같이 한 번쯤은 들어본 것같이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낯선 이름의 화가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평소 알고 있던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화가들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의 명성만큼 인생의 모든 순간이 화려하고 행복하지는 않았을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곁에 남아 함께한다. 그들의 행복했던, 슬펐던, 서글펐던, 힘들었던 순간순간을 담은 그 작품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것으로 그들과 함께한다는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미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기에 더욱 신중했다. 뭣도 모르면서 멋대로 썼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 반복해서 확인하고 고민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히고 독자들이 그림에 호기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는 게 많으면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아지는 법이니까. 즐기는 시간이 길어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니까. 그 풍요에 한순간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 p. 7



프롤로그의 글처럼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묻어있는 게 보였다. 너무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끝까지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속의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 30대 청년들은 과거와 달리 문화예술을 향유하는데 있어 어려움이나 높은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미술관 또는 박물관을 방문하면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수 맣은 20, 30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문화예술과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 깊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지식과 재미를 주고, 아직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작가의 말처럼 아는 게 많으면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즐기는 시간이 길어야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이 책은 작가의 바람처럼 우리의 인생이 풍요로워 지는 것에 한순간이나마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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