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액자 뒤에 감춰진 것은 - 다락방 미술관 [도서]

다락방에서 발견한 그림의 숨겨진 이야기
글 입력 2019.09.03 06: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e6a68cd9b35104f31d3e053366cc56a6_ywer5OksZSiI2Ra3fpHCuzuLlszBhI.jpg
 

저자 문하연은 미술 애호가로 오랜 공부 끝에 미술 관련 에세이를 연재해왔다. <다락방 미술관>은 그간 연재한 에세이를 한 권으로 집약한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의 현대 미술까지를 한 권에 담아냈다. 저자는 사조마다 주요한 작가를 소개하며 작품 설명과 그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첨가했다. 한 작가가 끝나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그밖에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특징을 설명해두었다. 그 범위는 유럽을 비롯해 남미, 북미까지 다양하다.

화가의 삶, 그들이 일군 미술사조를 설명하는 책은 널리고 널려서 내심 뻔한 내용의 반복은 아닐까 생각했다. 고흐가 고갱에 집착한 것과 귀를 자른 일화처럼 미술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또 만나게 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물론 고흐의 고달픈 인생 얘기를 빼면 섭섭한 탓에 책 후반에 고흐 이야기가 등장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죽을 때까지 의지해 산 것과 70도에 육박하는 압생트를 마셔 정신이 착란된 것, 고갱에 집착한 것 등.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아는 얘기임에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전달방식 덕분이다.

저자는 ‘감성’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그는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선생님 같았다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니 같았다. 때로는 역사를 되짚어주며 지식을 뽐내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인 감정이 녹아있다. 화가의 삶을 그의 시각에 비추어 공감하기도 하고 대신 슬퍼하기도 한다.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감사한 것이 많다. 먼저, 책을 구성한 화가의 절반이 여성인 것에 감사하다. 마네, 모네, 드가 등등 작품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다는 유명한 남성 화가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예상한 것을 뒤엎었다. 오히려 마네의 뮤즈이자 제자이며 연인이던 베르트 모리조가 등장하고, 그의 그림에 집중하다 마네가 언급된다. 드가 또한 수잔 발라동의 후원자로 등장하고, 카미유 클로델의 조각을 설명하며 로댕을 곁들인다. 세계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남성 화가들이 순식간에 난잡한 여성 편력을 가진 일개 남성으로 취급된다. 그들의 초라한 등장이 은근히 짜릿하다.

 
변환_702956469.jpg
 

여자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없던 것은 서구도 마찬가지라 남성 화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우던 누드모델도 여자 화가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서 이미 1971년에 미술학자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책으로 의문을 던졌다.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을 붙들고 위대한 여성 미술가를 다섯 명만 말해보라고 하면 거침없이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분명 미술계를 지배해온 남성 미술가들의 능력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기발한 기술과 생각을 한 여성 화가가 있었을 텐데. 그들의 붓은 그 당시에 꺾였다. 그들의 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 못함이 무척 안타깝다.

두터운 미술사책을 이루는 수많은 남성 미술가 사이로 간간히 등장한 여성 화가를 바라보는 일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간신히 이름을 남긴 여성화가보다 '위대한 예술가' 남성화가에게 재능을 착취당하거나 아예 빛을 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 대부분의 미술사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이가 그것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여성 화가 5명을 대기보다 남성 화가를 10명 대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그래서 <다락방 미술관>을 이루는 화가 중 여성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책은 쓸데없이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지도 않고 과하게 있어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미술 작품을 바라본다. 거기다 화가의 인생과 사랑까지 섞어 더욱 흥미롭다.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사랑은 왜인지 모조리 비극을 맞는다. 누군가는 연인에게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누군가는 제 마음이 연인을 떠난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화가 나혜석이 그러하다.

제20장 ‘나혜석’ 파트는 내게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작년 학교 수업에서 화가 ‘나혜석’의 발표를 맡은 뒤 그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한국의 신여성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시대를 한참 앞선 인물이었고 조선의 정조관에 반기를 들며 눈엣가시를 자처했다. 자신을 여성 이전에 사람으로 취급해주길 바랐고 모성애라는 여성의 가두는 틀을 거부했다. 그는 얼마나 깨어있던 사람이었고 가시밭길을 홀로 걸어간 여성 인권의 선구자였는가. 나는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가 낸 목소리에 감탄하며 그가 쓴 글에 공감하고 죽음을 애도했다.


446821_133285_5659.jpg
 

나혜석의 팬 중 한명으로서 저자에게 감사했다. 나혜석에게 붙는 가장 흔한 수식어인 ‘여류화가’를 쓰지 않았음에.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외쳤던 신념으로 죽음까지 홀로 치렀던 나혜석을 단지 '여류화가'로 지칭하기엔 너무 억울하잖나. 대신 책에는 이런 부제목이 달렸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재능에 발목 잡힌 불운의 천재’.


나는 모든 것에 면승부를 거는 그녀의 용기와 솔직함에 탄복한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닌가를 논하기 이전에 그녀의 굴하지 않는 그 정신세계 말이다.

- p.260


그의 삶은 너무도 고독하다. 무척 쓸쓸하다. 하지만 나혜석은 꺾일지언정 구부리지 않았다. 자신을 사람으로 대우해주길 바랐다. 그러니 그를 칭하는 건 '여류화가'가 아닌 '화가'가 옳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감사한 점은, 처음으로 유럽에 가고 싶어졌다. 단순히 명화를 보고 싶은 까닭으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유럽여행을 가고 SNS에 사진을 올려대도 유럽이란 나라에 흥미가 없었는데 <다락방 미술관>을 보면서는 꼭 다녀와야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다. 하도 작품을 봐서 눈이 뻑뻑해졌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한 그림 앞에 서 있고 싶어졌다. 반들반들한 종이가 아니라 작품의 질감부터 붓터치 하나까지 눈에 담고 오리라. 다리가 퉁퉁 부을 때까지 미술관 이곳저곳을 다닐 것이다.


[장재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