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상에 누운 그가 하는 생각들에 대하여 [사람]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현실과 상상력 조금을 버무린.
글 입력 2019.09.0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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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상에 누워 있다. 하루 종일 인기척이라고는 개수대에서 설거지하는 소리와 요양보호사들의 다급한 외침, 몇 시간마다 방문하여 상태를 체크하는 상주 간호사뿐이다.


창 밖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일어나면 더워서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미 생식기를 요양보호사들에게 주기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수치감에는 무뎌진지 오래다. 옆에는 그의 집사람이 누워있다. 2인 병실에 거동 못하는 노부부가 서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요양 보호사의 손길만을 기다리면서 누워있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는 살아 생전에 집사람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여섯 명이라는 많은 자식들을 낳아 기르는 동안, 쓰러져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부부는 참으로 충돌이 많았다. 불 같은 그의 성격 덕에 집안에는 고함소리가 잦을 날이 없었고, 그가 불 같이 화를 낼 때면 집사람은 잘못했다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매번 남편의 화를 받아내던 아내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단단히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부당한 화에 찍소리도 못하던 자식들이 장성하니 무슨 말만 하면 아내의 편을 든다.


아내도 더 이상 참지 않고 맞받아치고, 심지어 자식들을 모아놓고 신세를 한탄하며 그의 욕을 하곤 한다. 노년의 그는 점점 집안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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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육신이 점점 나이들어감을 느낀다. 지하철 몇 정거장은 거뜬히 걸어다니는 체력이었지만 이제는 동네 슈퍼를 가는 것도 쉬었다, 걸었다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점점 삶의 일상적인 부분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익숙해진다.


미우나 고우나 해도 매일 같이 그의 옆에서 밥상을 차려내던 아내가 어느 날 덜컥 넘어졌다. 지병이 당뇨였기에 원래 다리가 안좋았다고 해도, 이번엔 상태가 심상치 않다. 단순한 접질림이었는데, 아내가 집안일을 놓으니 집안이 엉망이 된다. 자식들은 가끔 장이나 봐올 뿐,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그는 집안일과 아내 병수발을 시작한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그것도 인생에서 처음, 하는 것도 힘든데 아내 병수발까지 하려니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자식들은 그동안 그가 해온 것에 대한 업보 쯤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렇게 3년, 모든 집안 일을 맡고 있던 그가 파킨슨 병으로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가 쓰러진 건 지극히 일상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밥상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눈 앞이 깜깜하여 잠깐씩 텔레비를 붙잡고 서있곤 했다. 냉장고를 열다가도 어지러워 냉장고 문을 붙들고 서있곤 했다. 인간의 몸이 늙으면 으레 그렇겠거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거동을 못하는 아내의 소변을 받으러 가는 길, 그는 눈앞이 하얘지더니 그대로 몸이 쓰러지는 것을 느낀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토끼 같은 손녀딸들이 손을 잡으며 울고 있다.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내미려는 순간, 그는 입과 손이 떼어지지 않는다. 말을 하려는데 입에서 맴돌며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손을 뻗으려고 온 팔에 힘을 주는데 손가락 끝만 간신히 까딱거릴 뿐이다.


그는 눈물을 흘린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죽음이라는게 이런건가 싶으니 겁부터 덜컥 난다. 집에 놓고 온 아내가 생각난다. ‘아내는 어딨니?’ 묻지만 입안에서 맴돌 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의사에게 진찰을 본 그의 결과는 ‘파킨슨 초기’였다.


자식들은 그동안 그에게 너무 무심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아흔의 노인이 아내의 병수발을 몇 년간이나 집안일과 함께 다 하게 두었다니 너무 후회가 된단다. 때는 늦었다. 위기는 함께 온다.


그가 병원 신세를 지자 거동을 못하던 그의 아내 또한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거동을 못하는 노인을 모시는 요양 병원이나 요양원은 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이다. 노인 두 사람이 사지를 못 쓰게 되니 자식들은 누가 잘했네 누가 못했네 싸우기 시작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병실 너머로 들리는 자식들 싸우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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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워 있기를 몇 개월, 자식들은 그와 아내를 한 군데 요양원에 모시기로 한다. 2인 병실에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있는 처지가 되었다. 아내는 이제 치매 증상까지 보이며 이따금씩 소리를 지르곤 한다. 그는 혹여나 지인들이 연락이 올까봐 하루 종일 핸드폰을 쥐고 있는다.


가끔이지만, 아주 가끔이지만, 누군가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이기 전에, 그가 그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맺은 인연들이 연락이 온다. 그 연락을 볼 때마다 그는 다시 눈물을 흘린다. 입 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는 병을 앓고 있지만 전화를 득달같이 받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는 요양원의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생각한다. 삶은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일까. 아내는 하루종일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허망하다.


그의 침대 옆 창 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얄궂다.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병원 밖은 커녕 병실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는 그의 처지에, 가을 바람이 곁들어진 아침 햇빛은 애처로울 뿐이다. 오늘도 그는 뜨고 싶지 않은 눈을 뜨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다 잠을 청한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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