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도서 "다락방 미술관"

글 입력 2019.09.0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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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알기 참 어렵다고 느껴지는 예술 분야가 있다. 바로 미술이다. 미술은 음악만큼 관객이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물론 음악도 표제로 어느 정도 한계가 지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무형의 음악은 미술보다 훨씬 관객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미술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건, 재창조된 형태건 간에 유형의 무언가로 우리 앞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뭔가의 정답이 있을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정답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는 없다. 유형의 무언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감상을 다양하게 해보면 되기 때문이다. 사전 배경지식 없이 내 경험과 지식으로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개인적인 감상에 더해 작가의 삶, 사상 그리고 작품 창작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안다면 감상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도서 <다락방 미술관>은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라는 부제답게, 27명의 미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조명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거장들의 이름도 보였고, 이름만 봐서는 무슨 작품을 그린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다 싶은 작가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글을 읽으면서도, 이름은 몰랐는데 작품을 보니 알아차릴 수 있는 작가가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작품도 모두 초면인 작가도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작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살펴보는 <다락방 미술관> 속에서, 나는 특히 여성 화가들의 삶에 시선이 갔다. 내가 잘 몰랐던, 그러나 너무나 힘 있는 그들의 삶과 작품에.




목   차

제1부 15~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

1장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
2장 |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예술인에게 행복은 독? 스타 화가의 몰락
3장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마성의 여인들’을 그리고 히틀러 사랑까지 받았지만
4장 | 조반니 벨리니: 귓속에 에프킬라 뿌린 사람, 그림 속 무관심


제2부 19세기 근대미술: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5장 | 베르트 모리조: 막장드라마로 소비된 여성 화가, 당신이 놓친 것
6장 폴 세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뒤집어 놓겠다던 남자
7장 메리 카사트: 달라도 너무 다른 두 그림, 그 남자의 잔인한 ‘밀당’
8장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 귀족 말고 뱃사람 그린 화가, 그건 혁명이었다
9장 빈센트 반 고흐: 너무 적나라한 그림, 이걸 반 고흐가 그렸다니
10장 수잔 발라동: 남성을 누드 모델로 세운 최초의 여성 화가
11장 에드워드 호퍼: 아침, 햇살, 햇볕 속의 여자, 고독한 현대인


제3부 20세기 현대미술: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12장 앙리 루소: “시장님, 제 그림 사세요” 이런 발칙한 화가를 봤나!
13장 케테 슈미트 콜비츠: 퀭한 눈동자, 거친 손, 무거운 공기 
14장 파울라 모더존-베커: 서양미술사 통틀어 최초… 누드 자화상 그린 여자
15장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저런 건 나도 그려” 피카소 무시하는 당신이 모르는 것
16장 에곤 실레: 임신한 아내의 죽음… 그는 그림으로 가족을 남겼다
17장 르네 마그리트: 얼굴 가리고 키스하는 남녀, 그는 무엇을 노렸나?
18장 마르크 샤갈: ‘사랑꾼’ 샤갈이 연인을 추모하는 방식 
19장 마리 로랑생: 파국 맞은 사랑 범인은 ‘모나리자’
20장 나혜석: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재능에 발목 잡힌 불운의 천재
21장 프리다 칼로 드 리베라: 그 지독한 사랑… 나도 비로소 가면을 벗는다


제4부 그 밖의 현대미술: 독창적인 기법 창조

22장 존 싱어 사전트: “산 사람의 피부색 아냐” 비평가들이 작정하고 헐뜯은 ‘명작’
23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치마 걷어 올리는 그녀들을 예술로 남기다
24장 카미유 클로델: 나이 들며 사랑과 열정이 사라지는 건 운명일까?
25장 오스카 코코슈카: 떠나버린 그녀를 인형으로, 이 남자의 광기와 지독한 부대낌
26장 타마라 드 렘피카: 긴 머리 잘랐을 뿐인데… “반항적이다”
27장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잔 에뷔테른: 죽고 나서야 1900억 원에 팔린 그림, 인생이란 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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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은 시작부터 과감했다.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놀라운 미술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원근법 스승이기도 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하고 만 젠틸레스키는 삶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여성을, 연약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존재로 그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로 녹여내며 자신을 투영했다. 젠틸레스키의 아버지가 타시를 고소하여 유죄 확정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세 풀려난다. 지은이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표현하자면, "그림 좀 그리는 남자 화가들에게 세상은 한없이 너그러웠다.(본문 21쪽)"

그렇게 세상은 젠틸레스키에게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야엘과 시스라", "루크레티아" 등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자신을 억누르던 과거의 악몽을 승화시켰다. 그 끝에 그는 28세에 여성 최초로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른다.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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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메리 카사트는 대상화된 존재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화폭에 담아냈다. "오페라 극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작품에 담겨 있는 주인공은 오페라 글래스를 쓰고 화폭 너머에 존재하는 오페라 무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이 그림은 처음 보는 작품이었는데 보자마자 굉장히 신선하게 와 닿았다. 물론 다른 작품들 중에, 일하느라 시선이 정면으로 향하지 않은 여성이 그려진 작품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메리 카사트의 작품은 그런 차원의 느낌이 아니었다. 해설 없이 보아도, 이 작품에서는 대상화되기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고 마는 여성의 기개가 느껴졌다. 아주 놀라웠다.

*

이런 주체성은 수잔 발라동의 작품에서도 느껴졌다. <다락방 미술관>의 지은이 문하연은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을 보며 "네 맘대로 살아도 아무일 없다"라는 말을 툭 하니 작가가 건네는 듯하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작품 속의 여인이 아주 자유로워 보였다. 작위적인 느낌 없이.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일까, 수잔 발라동은 여성 중에서는 최초로 남성 누드 모델을 화폭에 담은 화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가 느껴지는 작품과 달리, 수잔 발라동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에릭 사티가 그 아름다운 <Je te veux>를 작곡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6개월만에 불타는 사랑을 끝맺는다. 수잔은 그 후에 은행가와 결혼하여 안정적인 삶을 사는 듯했지만 그와 이혼하고 아들의 친구였던 21세 연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를 사랑해 그의 누드를 작품으로 남기기까지 했지만 끝내 그와도 평생 행복하지 못하고 이혼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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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문제일까. 사랑이 순탄하더라도 삶은 늘 고달프다. 예술가의 삶은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케테 슈미트 콜비츠의 삶과 작품은 읽어내리는 동안 가슴이 아팠다. 빈곤과 봉기를 판화로 담아내며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혁명적인 예술가로 입지를 굳힌 케테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들들은 전쟁에 지원했다. 반대하는 남편과 달리, 케테는 아들들의 뜻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 존중의 결과는 둘째 아들의 전사였다. 이는 케테에게 반전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 슬픔을 달랠 길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케테의 손자가 참전했다. 그리고 그 역시 둘째 아들처럼, 전사하고 말았다. 케테는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작품을 남기며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심경을 세상에 마지막으로 외쳤다.

*

그리고 서양 미술사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인 파울라 모더존-베커도 마찬가지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파울라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를 집중해 그림을 그렸다. 보수적인 독일에선 파울라의 그림이 인정받지 못했고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던 파울라는 파리로 옮겨 고대 이집트 미술에 크게 감화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동백나무 가지를 든 자화상"은 정말 강렬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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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가들 그것도 여성인 작가들에게는 남자 문제가 정말로 인생에 큰 이슈였던 것 같다. 프리다 칼로와 카미유 클로델의 삶과 작품을 본다면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실제로 보면 더욱 그가 느꼈을 감정에 공명하게 된다. 그만큼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넘실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전반에 걸쳐 몸도 마음도, 온전히 평안을 누린 시기가 극히 짧은 칼로의 삶을 보면, 도대체 왜 삶은 이다지도 그에게 박했나 하는 원망이 든다.

평생에 걸쳐 몸이 불편했던 데다, 일생을 바쳐 사랑한 남자는 칼로를 농락하기만 했다.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심지어 칼로 자신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하는 그에게 칼로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그럼에도 그를 자신의 이마에 새긴 자화상을 그려내며 그를 기다렸던 칼로의 삶에, 그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마음을 어찌 헤아려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가혹했던 삶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은, 관객들을 더욱 더 숙연하게 만든다. 바로 너무도 유명한 작품, <Viva la Vida>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정을 마무리짓는 단게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길래 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 라는 말을 남겼을까. 헤아릴 수가 없다.

*

카미유 클로델은 오죽할까. 카미유는 로댕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로댕은 그를 버리고 조강지처에게로 돌아가면서 카미유를 냉정하게 내친다. 단순히 카미유를 떠나기만 한 게 아니라, 이후의 작품이 로댕 자신과의 관계를 담아냈다는 걸 알자마자 작품이 전시되지 못하도록 권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카미유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신을 철저히 짓밟으려하는 로댕의 시도를 깨달았을 때 느꼈을 카미유의 심경은 처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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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혜석만큼, 내 가슴을 뒤흔든 미술가는 없었다. 이 수많은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흥미롭기도 하고, 가슴 아프게 와닿기도 했지만 나혜석의 삶은 다른 그 누구의 삶보다 가장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지 않은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말이다.

봉건적 관념이 얼마나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는지 고발하는 글을 써 사회적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나혜석은 여성인권 증진을 위한 글을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 해외에서 최린을 만난다. 그리고 그것은 나혜석의 인생에 비극의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조약돌이 되었다. 그는 최린과 서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흔들렸다. 이 감정에 대해 나혜석은 도덕과 법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이기도 하고 여자도 실수할 수 있으며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당시 일제 치하에 있던 조선의 현실에, 그의 말은 도리어 족쇄가 되고 말았다. 도덕의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들에게는 그 무슨 말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혜석을 비난하고 외면했다. 나혜석을 둘러싼 남편 김우영과 외도 대상이었던 최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이혼 이후 나혜석은 작품활동으로 반등하고자 했지만, 여러 전람회와 제전에서는 입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서는 외면받았다. 그녀에게 찍힌 낙인이 너무 뜨거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기고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 남성이라는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불꽃같이 타오르는 재능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뜬 나혜석의 통렬한 울부짖음이 가슴에 깊이 박히는 것 같았다.

*

이렇게 다락방 미술관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담겨 있었다. 유명한 작가나 작품도, 처음 보는 작가나 작품도 너무 생소하거나 익숙해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은이가 전해준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은, 3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인데도 순식간에 끝까지 독파하게 만드는 묘미가 있었다.

27명의 미술가 중, 이 다음에 전시회에서 직접 보게 될 작가가 누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굴 만나든, 이제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보고 그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락방 먼지를 털 듯, 그림 너머에 숨겨져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다시 보는 예술은 분명 새로운 대상일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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