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폭력적인 미디어를 보는 세 가지 시선 "킬롤로지"

우리는 폭력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나.
글 입력 2019.09.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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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있다. 자극적이고 현실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다. 개발자가 항상 자신에게 실망하는 아버지를 게임 속에서 두드려 패 스트레스 해소하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다.


사람이 죽었다. 게임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킬롤로지 공연사진4.jpg

2018년 공연 사진



연극 <킬롤로지>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뒷맛이 씁쓸하면서 며칠 동안 생각나는 공연이다. 공연에서 던지는 화두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게 한다.


<킬롤로지>는 2018년 한국 초연 당시 “진짜 연극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봐야 한다.” “부모라면, 아니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봐야 할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그 어떤 극찬도 아깝지 않다.” 등의 평을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연극은 사회에 만연한 잔혹한 범죄와 미디어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그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표현한다.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파헤치고 가정, 교육 그리고 사회시스템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공연은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도우면서 세 명 모두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게 유도한다. 세 인물의 1인칭 시점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자칫 지루할 수 있으나 오히려 속도감 있고 에너지 넘치게 관객을 압도한다.



이건 게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게임을 한다는 걸 알아요. 게임에서 마법을 쓰면 돼지가 날아다니죠.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바보천치도 아니고.



킬롤로지 공연사진1.jpg

2018 공연 사진



게임과 현실은 분명 차이가 있다. 사람 대부분은 게임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 정말 그 두 가지가 구분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문제는 게임 속에서 돼지를 날아다니게 하는 마법이 아니다. 폭력성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아무리 자극적인 장면을 보더라도 곧 익숙해지고 만다. 한 번 자극적인 장면으로 쾌락을 얻는다면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상황을 찾아다닌다. 많은 사람이 살해로 경험치를 얻는 게임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이든, 실제로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든,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계속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를 가진 살인마 중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는 일은 드물다. 처음에는 개미 같은 곤충, 그러다가 개구리, 비둘기, 고양이를 죽이는 식으로 점점 수위를 높이다 어느 날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폭력적인 미디어는 개미나 곤충을 죽이는 것과 비슷하게, 생명 경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비유적이고 과장되던 게임 속 살해 방식이 점점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실제 사람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와, 게임과 같네, 하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공연에 나오는 폴은 게임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일반인들에게 모집한다. 한 가난한 아이가 구상한 방식이 채택되는데, 그 아이는 게임 속에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을 모색한 대가로 가족 전체를 먹여 살릴 돈을 얻는다. 폴은 게임 속에서는 사람이 죽지만 현실에선 사람이 산다고 말한다. 단순히 이 주장만이 아니더라도, 오직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미디어 때문에 사회 범죄가 늘어난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00명이 폭력적이고 현실적인 게임을 한다고 100명 모두 범죄를 저지르진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연 <킬롤로지>는 어느 한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두 주장을 모두 진솔하게 보여준다. 게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엔 게임과 똑같은 상황으로 죽은 사람이 있고, 모두 게임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게임이 삭제된다고 해서 잔혹 범죄가 멈추는 게 아니니까.



평범한 우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날 지탱하는 건, 기억들이야. 내 아들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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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알란은 법정에서 아들을 죽인 놈들을 만난다. 그들은 어떤 죄책감도 없이 히죽 웃고 있다. 알란은 이에 복수를 시작한다. 단순히 아들을 죽인 놈들에게 하는 복수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다가간다. 왜 그놈들은 아들을 게임의 방식과 똑같이 죽인 걸까. 현실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 살인을 유도하거나 적어도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살인을 한 사람들이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잔인하게 살해한 건 아니다. 게임 속에서 반복해 살인을 접하면서 살해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임과 현실을 분명히 구분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살해 자체를 하나의 게임으로 즐기는 것이다. 알란은 다신 아이들이 죽지 않도록, 죽이지 않도록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게임이 사라진다고 해서 잔혹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강력 범죄는 게임이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먼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범죄율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 모두 알고 있다. 알란은 여기에 희망을 품는다. 폭력적인 게임을 함부로 욕할 수 없다면, 알란의 복수 또한 함부로 욕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사람이 죽었고, 게임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거리는 사이코들로 가득하고 매일 밤 살아서 집에 돌아오는 게 순전히 기적이라고 엄마한테 말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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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데이비의 말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된다. 더는 나가서 친구들과 좀 놀다 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사회이다. 자녀가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전화하고, 친구들끼리 헤어질 때는 조심히 들어가, 내지는 도착하면 연락하라는 말을 인사 대신 건네는 게 자연스럽다.


언제 나갔다가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뉴스에는 연신 폭행, 살인, 강간 등의 강력 범죄가 일상 이야기처럼 쉽게 나온다. 카카오톡에선 어디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반년에 한 번씩 한다. 어느 누가 사회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어떤 어른이 폭력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회의 범죄가 폭력적인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 공연을 보고 나오면 폭력과 범죄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연극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킬롤로지는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연극열전] 킬롤로지 티저 포스터.jpg
 


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8/31(토), 9/1(일) 6시 30분 공연만 있음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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