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울에 비친 마음은 어딘가 서글프고, 즐거우면서도 찬란하다 : 지금, 여기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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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쉴 새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은 마임이스트들의 조금은 과장된 표정과 행동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삶, 아니 우리 모두의 삶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 한마디 없는 표현이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마임 공연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흰 장갑을 낀 손. 갖가지 색을 칠한 얼굴. ‘마임’을 떠올렸을 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이미지들이 그러한 것들이었다면, <지금, 여기 마임>에서는 맨 얼굴 그대로 마임이스트들의 표정과 주름, 근육 하나하나가 언어가 되어 말을 건넸다.
표정이라는 음표
뭔가 책을 넘기는 동작 같은데, 무언가 추억에 사로잡힌 듯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가 읽는 사진첩은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이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던 일,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던 일.
그가 표정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캐릭터같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얼굴에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움직이는 사진으로 보고 난 뒤에는 잔잔한 저릿함이 밀려온다. 정말로 사진첩 하나를 보고 난 것처럼 마음이 울렁거린다.
마임의 표현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극처럼 이야기가 있지만 대사가 없고, 무용처럼 몸짓으로 이야기하지만 무용과는 다르다. 게다가 마임이스트마다 표현이 정말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한 명 한 명 본인의 움직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류성국 마임이스트님의 표현이 좋았다. 잔잔하게 깔리는 노래에 표정도 하나의 음표가 되어 화음을 맞춰갔다.
세상은 빙빙 돌며 우리를 약 올린다
‘웽-‘ 택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버린다. 택시 앞을 가로막은 뒤에야 겨우 택시 문을 열고, 누군가를 태운다. 차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다.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을 보낸 후 결국 혼자 남은 거리. 비틀거리는 모습에서 술 냄새와 함께 서글픈 노래가 폴폴 풍겨온다.
분명히 내 입은 웃고 있는데, 마음 한편이 왜 이렇게 울컥거리는지 모르겠다. 지친 마음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겉옷을 옷걸이에 걸려고 하지만 옷은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세상은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비틀거리고 빙빙 돌기만 하는 세상은 옷 하나도 제대로 걸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음 날에도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반복된다.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고 당당하게 어깨도 펴고,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쳐본다. 그럼에도 세상은 빙빙 돌며 우리를 약 올린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술을 마시고 나 또한 빙빙 돌면서 세상의 움직임을 이해해보려 시도해보는 거다.
유홍영 마임이스트님의 표현은 나를 가장 울렸다. 아무런 배경음이 없었는데, 그 정적 위의 무대는 더 적막하고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어두운 조명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고 몸짓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표현에서의 웃음은 잃지 않았다. 적막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 과장되게 행동하는 몸짓들이 웃음을 준다. 나는 웃음으로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에 응원을 보냈다.
마임은 마음이다마임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마임의 언어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이게 대체 어떤 언어인지, 도대체 무슨 표현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줄지 기다리는 내내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처음으로 언어를 배우는 아이처럼 그들의 공연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눈에 담는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거울인 것을 깨닫는다. 마임이라는 거울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비추고 비로소 그 깊숙한 곳을 따뜻한 표정으로 쓰다듬는다. 거울에 비친 마음은 어딘가 서글프고, 즐거우면서도 찬란하다.마음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들여다볼 때, 마임 또한 우리 마음을 비춰보고 들여다본다. <지금, 여기 마임>의 마임이스트들은 우리 삶 곳곳에 숨어 있는 웃음들을 찾아내고 그 속의 눈물들을 찾아낸다. 그들이 거울로 빛을 쬐어주었을 때 우리는 삶 속의 웃음과 눈물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들은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마임은 마음으로 볼 때 들을 수 있다.
가끔 글을 쓰며 분명 글이 아닌 언어로 이야기 한 것들을, 내가 글로 쓸 수 있을까, 글로 써도 되는 걸까, 글로 씀으로써 그 언어의 감동을 내가 덜어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의 언어는 배우들과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공감할 때만 소통할 수 있는 것인데, 내가 글로 씀으로써 글을 읽는 분들이 이 언어의 느낌을 하나로 규정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특히 ‘마임’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더욱 그랬다. 그만큼 마임 공연을 보는 동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마임이스트들의 동작과 표정, 행동, 소리를 숨죽여 지켜봤다. 집중하는 동안 내 마음은 갖가지 감정들과 마주쳤다. 긴 글로 풀어 써냈지만, 결국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마임은 마음이다.’
[장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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