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거기에 우리가 있다 "지금 여기, 마임"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상상
글 입력 2019.08.30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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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부분이 한 번쯤 만화를 봤을 것이다. 만화는 현실이 아니기에 가능한 행동이 많은데, 특히 미국 애니메이션은 눈이 튀어나오거나 작은 주머니에서 커다란 망치가 나오거나, 동물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둥 과한 행동이 자주 들어간다. <지금 여기, 마임>은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만화적 상상을 잔뜩 표현한다. 애초에 만화적 상상이라는 게 마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여기, 마임>은 (24, 25일 특별 출연자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네 명의 마임이스트가 준비한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마임 공연이다. 그 중 <지구별 여행>에서 우주인이 뱀의 몸에 손을 뻗어 심장을 가져갈 때는 그저 허공에 팔을 뻗고 움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징그럽다고 느꼈고, <사진>에서 사진을 크게 늘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시늉을 할 땐 정말 커지는 종이와 그 안에 발을 디디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착시 현상처럼 마임이스트가 하는 행동으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을 모조리 봤다. 얼마나 신기한 경험인지. 심장을 빼앗긴 뱀은 꿈틀거리다가 곧 살아나서 우주인을 욕하고 사라졌고, 크게 늘려진 사진은 주인공이 현실로 돌아오자 다시 조용히 앨범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에 앉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마법에 걸렸다. 마임이다.




삶으로의 여정



첫 공연은 <여정>이었다. 관객석 쪽으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온다. 우산을 쓰고 있다. 남자는 문득 꽃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웃는다. 남자는 계속해서 꽃에 닿기 위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헤쳐나간다. 바람이 불고, 미로를 뚫고, 거대한 산을 오르내리고…. 그러다 지쳐 바닥에 쓰러졌을 때야 세상이 보인다. 아름다운 하늘, 풀, 바람. 남자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몸을 씻고, 재정비한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꽃이 신경 쓰인다. 결국 남자는 다시 꽃을 향해 달려든다. 누군가 자꾸만 팔을 잡아 뒤로 당기고, 다리를 붙잡고, 허리를 끌어당긴다. 달리고 달리다가, 문득 꽃을 본다. 처음처럼 크게 웃는다.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이야기였다. 중간중간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온 정신을 기울여서,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친 기분이었다. 그러나 역경을 뚫고 꽃에게 가려는 순간만큼은 절박함이 와닿아 코가 찡했다. 갑자기 자리에 앉았을 땐 대체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주변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블랙박스 공연장이 저녁노을이 지는 가을밤으로 변해있었다. 주인공이랑 내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을 바라보는 착각이 들었다.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관객석으로 등장할 때만해도 배우와 배우가 연기할 이름 모를 캐릭터가 보였지만 저녁노을을 같이 보고, 몸 씻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주인공은 나이며 내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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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고재경


<여정>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던 건 공연에서 보이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견한 예쁜 꽃, 멋진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길을 잃고 불안해지기도 하고, 잠시 멈춰 아름다운 세상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 자꾸 끌어당겨 뒤처지기도 한다. 불안하고 겁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지나간 시련과 다가올 역경까지 나의 일부가 되어있다. 이 모든 것에 맞선 나는 꽃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자신에게 뿌듯하고 당당하다.


공연 속의 마임 중 재미있던 부분은 바람에 날리는 걸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걸어가지만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밀리는 것도, 머리를 숙이고 바람을 피하고자 필사적인 것도 폭풍우가 거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줬지만, 마임이스트가 재킷을 잡고 열심히 펄럭거리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더욱 와 닿았다. 바람이 세게 부는 게 옷이 휘날리지 않는 것 이상하니까. 산을 오르는 모습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유쾌하게 표현하기 위해겠지만, 경사가 진 팔에 두 손가락이 다리처럼 움직였다. 바람을 이기고 나아가는 모습과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모두 나온 뒤 이젠 산을 오르지 않을까, 어떻게 오를까 기대하는 순간 팔을 이용하는 모습이 관객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아 감탄했다.




마당을 쓸다가 생긴 어쩔 수 없는 욕심



두 번째 공연 <마당을 쓸다가>와 네 번째 공연 <지구별 여행>은 같은 마임이스트인 최정산 분이 진행하셨다.


<여정>이 끝나는 순간 관객석에서 한 사람이 빗자루를 쓸며 걸어 나왔다. 우산을 쓰고 마치 줄 위를 걷듯 움직이던 <여정>의 주인공은 빗자루를 쓸던 사람이 우산을 쓴 사람을 부른다. 꽃을 가지고 가라고 말하자 어색하게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이 장면도 꼭 하나의 에피소드 같으면서 다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점이 재미있다.


<마당을 쓸다가>는 말 그대로 마당을 쓰는 이야기다. 쓸다 보니 동전이 나온다. 이거 괜찮은데. 마당을 더 열심히 쓴다. 이상한 것도 나오고 동전도 나오고 지폐도 나온다. 생각한다. 마당을 쓸어서 돈이 나오면 마당을 파면 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게 나오는 거 아니야? 삽을 가져와서 열심히 판다. 어느새 가슴 부근까지 파고, 위가 안 보일 정도로 판다. 그러다 드디어! 보석을 발견한다. 반지, 목걸이, 금. 이 돈만 있으면 이제 나가서 부자처럼 살 수 있다. 비싼 차를 하나 사서 돈을 흩뿌리고 다녀야지! 과한 상상을 하며 물건을 모두 커다란 주머니에 담는다. 이제 나가려고 하는데… 주머니가 너무 무겁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나갈 순 없고, 두 손을 다 쓰자니 문제가 있다. 물건을 모두 구멍 밖으로 던져버리고, 마음 편하게 올라간다. 이제 난 부자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던져둔 보물이 없다. 대단히 큰 욕심을 부린 걸까. 어쩔 수 없이 다시 빗자루를 잡고 쓸지만…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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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최정산



<마당을 쓸다가>는 종종 단어를 효과음처럼 뱉기도 했는데 그래서 내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금을 깨물면서 금! 하거나 동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의태어를 스윽, 같이 일반적인 단어 대신 동전! 하고 내는 식이다. 웃음이 사라지는 장면이 없었다. 중간중간 이해가 쉽도록 동작을 추가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땅이 얼마나 파였는지 깊이를 몸으로 표현하기도 했고, 굴을 나와서 물건이 없자 분명 여기 던졌는데, 하는 생각을 몸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장면이 없어도 이해는 충분히 됐을 테지만, 추가되었기 때문에 상황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차를 사고 운전을 하며 돈을 흩뿌리는 장면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상상이다. 돈을 마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부자면 좋겠다.


가장 가볍고 유쾌한 공연이었다. 동시에 가장 슬프기도 했다. 헛된 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실물까지 다 본 욕심을 잃어버린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욕심내면 안 된다는 간단한 말을 실행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두가 알고 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었는데 종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보자. 눈물이 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요행을 바라는 게 사람이다. 허탈하게 빗자루를 쓸다가 오열하는 모습에 한참 웃다가도 가슴이 아팠다.




지구별 여행! 사랑을 만나다



<지구별 여행>은 한 사람이 천체망원경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무음으로 외친다. UFO다!


우주에서는 외계인과 외계인이 싸운다. 어떤 외계인이 한 외계인을 격추해 지구로 내려보낸다. 외계인은 인간과 달라서 장기가 없거나 빠져나왔다고 죽지 않는 모양이다. 몸의 서랍을 열어 떨어진 장기를 모두 줍고 다른 신체는 건강한지 살핀다. 그런데 아뿔싸. 심장이 없다. 아무리 외계인이라도 심장이 없으면 곧 죽는지 급하게 심장을 찾아다닌다. 뱀을 발견한다. 뱀의 입을 벌려 심장을 꺼내 몸에 심자 뱀처럼 기어 다닌다. 이건 아닌 거 같아! 외계인은 심장을 빼 다시 뱀에게 넣어둔다. 나무를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누군가 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외계인은 그 사람을 살려주고, 그 사람은 너무 고마워 외계인을 끌어안는다. 그 순간 느껴지는 심장 박동. 외계인은 같이 우주로 나가자며 사람을 데리고 유에프오에 탑승한다.


<지구별 여행>도 재미있는 장면이 무척 많았는데 하이라이트를 뽑으라 하면 누구나 마지막 장면을 선택할 것이다. 암전 속에서 잠시만 빛이 번쩍 터지는 동안 외계인은 공연장 곳곳을 누비며 펄쩍 뛰어다닌다. 그 순간만큼은 공연장이 무중력 우주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서 둥둥 떠다니는 외계인을 본 사람들은 모두 포복절도했다. 기발하다. 어둠 속에서 일순간만 보여줌으로써 무중력을 표현한다는 게 굉장히 신선하고 재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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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최정산



또 다른 장면은 유에프오에 시동을 거는 장면이었다. 지금 세대는 모르겠지만 옛날 트럭에 시동을 걸기 위해 거대한 손잡이를 마구 돌리는 발전기 같은 게 있었다. 나도 어릴 때라 자세히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모르지만, 유에프오의 시동이 걸리지 않자 외계인은 차에 있는 것과 같이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 부릉부릉 소리가 나게끔 맞춘 뒤에 시동을 다시 건다. 나는 어설프게 이해해서 어설프게 웃었으나 그 당시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좋아할 만한 장치였다.


외계인이 인간을 구한 뒤에 심장을 꺼낼지 말지 고민하다가 사람과 끌어안자마자 온몸으로 심장을 느끼는 장면이 인상 깊다. 외계인의 표정이 당혹스럽지만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좋아 보였다. 심장이 몸 안에 있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습이었다. 심장이 없어도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외계인의 심장은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심장이 움직여야 온기가 돌고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을 끌어안으면 심장을 빼앗지 않아도 온기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 하고 싶은 말은 사랑처럼 느껴졌다. 따뜻하고 행복해지는 사랑.




사진 속에 어떤 추억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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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류성국


앨범을 펼친다. 아내와 데이트했을 때 찍은 사진, 결혼했을 때 찍은 사진, 애를 낳을 때 찍은 사진,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탄 날 찍은 사진, 아이의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을 모두 하나씩 꺼내 그때로 돌아가 본다. 데이트할 때 먹었던 스테이크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결혼할 때는 또 얼마나 좋았나. 반지를 주고 선서를 할 때 그 기쁨을 잊지 못한다. 애를 낳을 때 아내가 머리를 그렇게 뜯었었고, 아이가 처음 네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바꿔 탈 땐 자꾸만 쓰러지려고 해 안절부절 못했었지. 아이의 결혼식에선 다양한 감정이 오갔다. 얼마나 좋은 시절인지. 어릴 때의 사진도 발견했다. 아마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날이 아닐까. 브이를 하려고 하자 부모님이 다른 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앨범 속에는 그의 일생이 들어있다. 그는 일생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그때의 감정에 빠져든다.


<사진>은 비교적 보편적인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도 이미 많은 곳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들어가는 순간, 현실과 추억이 한순간 바뀌는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변하는 마임이스트의 표정이나, 공연장의 조명이 상황을 마법처럼 바뀌게 해주었다. 영화나 만화 속에서만 사진이나 액자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한 줄 알았는데 눈앞에서 보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사진을 늘려 그 안으로 발을 담그기도 하고, 손을 뻗자마자 TV 채널을 누른 듯 추억 속 상황으로 바뀌기도 하는 둥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는 게 공연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내가 사진을 편다면 어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까. 그 안에는 분명 주인공이 도와준 자식이 되어 자전거를 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사담을 조금 하자면 나는 부모님이 자전거를 붙잡아주던 손을 놓자마자 바로 자연스럽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자식도 그렇게 착각해서 기억할지 모른다.


기억에 빠져드는 순간은 항상 행복하지만 거기서 빠져나오면 아련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고 그때의 주변과 지금의 주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앨범을 끌어안고 한참 눈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슬퍼졌다. 추억을 떠올릴 사진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추억에 잠긴 주인공은 항상 굉장히 행복해 보여서 나까지 푸근해지고, 쓸쓸해지는 공연이었다.




2019 꿈에, 아니 지극히 현실에



위잉. 바람 소리, 아니면 벌의 소리. 휘잉. 아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다. 업체의 사장님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길거리에 오줌을 갈긴다. 집에 간다. 가족과 화상 전화를 한다. 다음 날이 되자 씻고, 거울을 보고 내려간 입꼬리를 억지로 올린다. 긍정의 말을 열심히 불어넣는다. 회사에 가서 업무를 보고, 과장에게 깨지고, 거울을 보고 또 긍정의 말을 열심히 되뇌고, 업무를 보고, 업체의 사장님을 대접하기 위해 나가고, 술을 말고, 마시고, 택시를 모셔 보내고, 다시 또 집으로 들어간다. 속은 쓰리고 머리는 자꾸만 빠진다. 그래도 힘내자며 다시 거울을 보고 내려간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고, 긍정의 말을 불어넣고, 회사에 가서 업무를 보고…. 잔뜩 쌓인 짐덩이를 끌어안고 봉화를 하러 가듯 달리는 데 방해하는 사람이 많다. 괜찮다, 괜찮다, 할 수 있어, 멋진 자식,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말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결국 쓰러지고 만다.


<2019 꿈에~>는 가족을 위해 애쓰는 가장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국의 모든 직장인에 관한 이야기다.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이놈의 마라톤은 끝나질 않는다. 긍정적인 말은 자신의 피로를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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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유홍영



이 공연은 <사진>과 같이 매우 보편적이며 어디선가 자주 보아온 상황을 그대로 그리는 편이라 이해하기 쉽다. 몇 가지 장면에서 관습적인 묘사 대신 비유를 넣은 게 인상 깊다. 주인공이 거리에 오줌을 누는 것은 불쾌했지만, 휴지로 만든 오줌의 모양이 사람의 죽었을 때 그어두는 흰색 선과 똑같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다. 휴지의 모양이 바뀌면 사람의 자세도 달라지며 휴지와 사람이 연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항상 죽고 싶었던 걸까, 죽을 것 같은 걸까. 그 장면 하나만으로 씁쓸해진다.


휴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는데, 중반에는 살풀이의 의미로, 후반에는 짐과 인생의 무게처럼 쓰인다. 중반에 주인공은 휴지를 조금 뜯어 팔을 휘젓는다. 춤을 추는 것 같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뒤에선 일하는 행동과 동시에 조명에서 떨어지는 휴지를 돌돌 말아 안기에 바빴다. 거대한 휴지 더미를 들고 뛰어다닌다. 뿌리치려 하는 동작과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에서 주변에서 자꾸만 휴지를 낚아채기 위해, 혹은 앞서기 위해 밀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휴지는 모두 원하는 목표나 인생의 무게가 아닐까. 휴지를 잔뜩 안고 힘겨워하는 사람의 모습은 <지금 여기, 마임> 공연에서 계속 그랬듯이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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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상상을 보는 것일 테다. 공연장에는 약간의 소품과 마임이스트밖에 없지만 조명과 마임이스트의 동작으로 많은 장소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무래도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수록 관객 모두가 이해하고 상상하기 좋으므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틀이나 표현 방식이 익숙하다고 해서 공연 자체가 익숙한 건 아니었다. 마임이스트의 표현력과 감정, 비유적인 동작들이 마임 공연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간 마임이라고 하면 익숙하지만 낯설고, 허공에 몸을 움직이는 단편적인 동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 마임은 전혀 달랐다. 무용처럼 동작이 섬세하고 연극처럼 다양한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으며 소설이나 만화처럼 상상을 현실에서 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공연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면서 친구와 내내 보러 오길 잘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프고 행복하고 씁쓸하고 달다. 내가 아는 이야기라서 더욱 더 공감 간다.


모든 삶이 힘들다. 수많은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는 거 같고, 때로는 열심히 파서 얻은 보물을 몽땅 잃어버릴 때처럼 억울하고 허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앉아서 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다.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이 있고, 사랑하던 사람과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므로 같은 듯 다른 하루를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다. <지금 여기, 마임>은 우리 모두를 위해 살풀이를 해준다. 지금 여기에 마임이 있고, 지금 거기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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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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