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3. 세상에 같은 공연은 없다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상실과 재회의 순환
글 입력 2019.08.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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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찬바람이 부는 걸 보니 이제 슬슬 여름이 물러가려나 보다. 낮에는 여전히 매미소리도 쩌렁하게 울리고, 햇빛도 칼날처럼 내리꽂혀 여름인 걸 실감하지만 바람의 온도는 확연히 낮아진 듯해 가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 내내 푹푹 찌는 더위와 습기에 불평하면서 제발 가을 좀 와라, 염불을 외듯 빌었지만 막상 여름이 한 걸음 물러나니 한 번이라도 휴가를 더 갈 걸, 하고 후회도 남는다. 아마 겨울이 지날 때도 비슷한 후회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미련의 동물이니 말이다.


한 공연을 여러 번 본다는 말에 일반적으로 “봤던 걸 왜 또 봐?”라며 묻는다. 순수한 궁금증이라면 신나서 대답을 해주지만 물음 뒤에 숨겨둔 한심함을 읽을 때면 대화를 중단하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럴 적에는 “그럼 넌 먹은 밥 왜 또 먹어?”라고 유치하게 되묻기도 했다.


사실 ‘봤던 공연을 또 본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일단 첫째, 세상에 ‘같은’ 공연은 하나도 없으며, 둘째, 그렇기에 그 어떤 공연도 내가 ‘봤던’ 공연이 될 수 없으며, 셋째, 그러므로 ‘또’라는 부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 그러니 나의 취미는 ‘같은 이름의 공연을 여러 번 본다’ 정도로 정의하는 게 맞을 듯하다.


이 글은 어째서 세상에 같은 공연이 존재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인간과 괴물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바야흐로 2014년 겨울. 사실 2013년 겨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찬바람이 굉장히 강하게 불던 5년 전 겨울에 신당동 충무아트홀(현재 충무아트센터)에서 느꼈던 충격을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을 다시 한 번만 느끼고 싶어 2016년에도, 그리고 2018년에도 그 공연을 찾으러 다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쯤은 실패했고 반쯤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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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연의 이름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다. 이름에서부터 라이센스의 향기가 짙게 풍기지만 사실 순수 창작 뮤지컬이고, 일본으로 수출까지 할 정도로 성공한 대형 뮤지컬이다. ‘프랑켄슈타인’ 전에도 대극장 창작 뮤지컬은 존재했지만 이만큼 큰 매출을 거두는 데 성공한 뮤지컬은 흔하지 않았다. 2016년 재연에 이미 100억 매출, 10만 관객 달성에 성공할 만큼 ‘프랑켄슈타인’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신이 되고 싶어 했던 인간, 그리고 인간을 꿈꿨던 괴물의 이야기로 동명의 소설(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한다. 사실 소설에서는 정말 모티브만 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에서 독특한 점은 모든 배우들이 1인 2역을 소화한다는 점인데,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창조하는 스토리와 그 피조물이 처절한 복수를 꿈꾸게 된 피조물의 스토리를 주축으로 한다.


1막에서 멋들어진 코트를 입고 생명을 창조하던 배우가 2막에서는 쨍한 분홍색 또는 보라색 가발을 쓰고 반짝이가 잔뜩 달린 옷을 입은 채 격투장에서 격투를 지휘하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구조 속에서 신과 인간, 인간과 괴물 사이의 비틀린 욕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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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내가 이 공연을 사랑하게 되었던 이유는 ‘애증’ 때문이었다. 빅터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앙리, 이들 사이의 ‘애(愛)’가 2막에서 괴물과의 ‘증(憎)’으로 변하는 순간, 그럼에도 과거의 ‘애’를 잊지 못해 갈등하는 비극을 사랑했다. 빅터가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깨닫지만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괴물과 갈등하는 넘버 ‘절망’, 괴물의 포효가 지난 후 그제야 지난날을 그리워하던 넘버 ‘후회’, 그리고 이어지는 괴물의 하소연 ‘상처’까지. 이 시너지를 사랑했다.


피조물을 만들어 신의 경지에 오르고자 했던 빅터는 그 욕망 앞에 친구를 잃었다.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친구의 시체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냈지만 결과물은 뜻밖이었고, 갓 탄생한 피조물은 앙리와 사뭇 다른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탄생했을 그 때부터 총소리와 피 냄새에 둘러싸여야 했던 피조물은 빅터로부터 도망쳐 3년 동안 격투장에서 폭력과 함께 살아가야 했다. 이들 사이의 욕망과 애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후반부 전개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같은 이름, 다른 시즌, 다른 공연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프랑켄슈타인’은 돌아왔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중 재연에 참여한 배우는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새로운 배우의 새로운 해석도 궁금했기 때문에.


그리고 2015년 겨울, 신당동 충무아트홀을 나서던 나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우선 내가 가장 사랑했던 후반부 전개와 결말 연출이 바뀌었다. 초연 결말에서는 북극 언덕을 힘겹게 오르던 빅터가 미끄러져 정신을 잃자 그를 지켜보던 괴물이 빅터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나 일말의 화해 여지를 빅터 자신의 손으로 박살내고 괴물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애증을 느낄 수 있어 상당히 아꼈던 결말이었다. 그랬기에 재연에서 가방을 메고 공연장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오던 빅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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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사진은
2016년 공연 사진이 아니라
2018년 공연 사진이다.
북극의 전경은 2016년에도 이와 흡사했다.


상실. 맞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상실이었다. 분명 내가 사랑한 그 극, 그 넘버, 그 배우와 그 캐릭터였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 장면과 그 분위기는 상실했다. 이제 다시는 빅터가 제 손으로 미련의 끈을 놓쳐버리던 순간을 볼 수 없겠지, 그 애절함을 느낄 수 없겠지. 그래서 조금 슬펐고 조금 그리웠다.


하지만 난 재연 ‘프랑켄슈타인’도 정말 많이 사랑했는데, 그 이유는 ‘안녕, 안녕’ 이 네 글자 때문이었다. 초연과 달리 재연에서는 괴물이 인사를 배우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격투장 안에서 괴물과 같이 고통을 받던 까뜨린느는 괴물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에게 친절히 다가간다. 잔뜩 상처 입은 괴물을 정성껏 돌보다가 ‘안녕, 안녕’하는 손짓을 알려주는데, 격투장에서 벗어나 사람 한 명 없는 극지방에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과 어우러져 눈물 나도록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


그 손짓을 북극에서 빅터의 총에 맞아 죽어가기 직전, 제 친구이자 창조주인 빅터에게 건네던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아, 다시 봐야겠구나.




달라진 계절, 달라진 공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재연까지는 겨울에 충무아트홀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만날 수 있었지만 2018년 삼연 공연은 여름에 블루스퀘어에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삼연 소식을 접한 후, 어떻게 여름에 ‘프랑켄슈타인’을 할 수 있느냐며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프랑켄슈타인’은 한겨울에 생각나는 극이다. 아마 2020년, 2022년이 지나면 여름에도 빅터와 앙리가 생각나겠지, 싶다.


그리고 놀라웠던 점은 초연에만 참여했던 류정한 배우가 삼연에 다시 참여했다는 점인데,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체념했던 터였기에 캐스팅이 공개되던 날 난 너무 놀라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첫 공연이 올라갔던 2018년 6월은 내게 그렇게 기억되었다.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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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삼연 역시 2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연출이 눈에 띄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가사가 대폭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다는 점이었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던 ‘절망’, ‘도망자’, ‘후회’ 등의 가사가 바뀌어서 또 한 번의 상실을 느껴야했다. 하지만 재연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수정되기도 했고, 낡은 여성 캐릭터 소비 방식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준 듯하여 만족스러웠던 공연이었다.


‘프랑켄슈타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연은 끝없는 수정과 변화를 거친다. 사랑의 감정은 그리움과 미련을 먹고 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초연을 그리워하고 재연에 미련을 두다가 삼연마저도 사랑하게 되는, 티켓북에 쌓인 표를 보며 언제쯤 그만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다시 표를 결제하는 삶이 연뮤덕의 삶이다. 표값은 오르고 할인은 줄어들지만 애석하게도 내 애정은 소멸할 생각을 안 해서 오늘도 눈물을 머금고 카드를 긁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질문해주세요. ‘봤던 거 왜 또 봐?’ 세상에 봤던 공연은 없으니까요.


오늘의 인터미션 넘버는 ‘너의 꿈속에서’입니다. 참, ‘프랑켄슈타인’ OST가 발매된다고 하네요. 역시, 뭐든지 버티면 성공하나봅니다.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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