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무 한낮의 연애 - 너무 한낮인 시간들에 대하여 [도서]

김금희의 신간을 맞이하기 앞서서
글 입력 2019.08.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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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가 이번달 30일 신간 단편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로 돌아온다. 작가 특유의 분위기와 감각으로 한국소설 독자들을 매료시킨 『너무 한낮의 연애』 이후 3년만의 단편소설집으로 돌아온다. 전작 『너무 한낮의 연애』는 9편의 단편소설에서 개인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상처,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의 단면을 예리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 의해 이번에 새로 출간되는 단편소설집 역시 독자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 글에서는 김금희의 신작을 맞이하기 전에 『너무 한낮의 연애』를 다시 읽어보며 김금희의 작품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크기변환]너무 한낮의연애.jpg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은 현실의 무게에 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규직으로 뽑히기 위해 애쓰는 출판사 인턴(「조중균의 세계」), 영업팀에서 시설관리팀으로 쫓겨난 한 가장(「너무 한낮의 연애」), 빚쟁이에게서 도망쳐 외딴 섬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반월」)의 모습,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로부터 맞으며 자란 유년시절(「고기」), 방화범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보통의 시절」), 옥수수밭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고아원 아이들(「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의 사회 역시 나타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작품이 전개된다. 그러나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세상은 각박하고, 인물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어두운 면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반에 등장하는 세 편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은 세계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자신만의 순수하고 고고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양희’,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씨’, 그리고 「세실리아」의 ‘세실리아’는 작중 서술자가 주목하는 대상으로서, 다른 이물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세상에 지쳐있는 서술자로 하여금 현재의 생활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주인공은 영업팀에서 잘나가던 시절을 뒤로하고 시설관리팀으로 발령나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대 때, 자신이 사랑했던 ‘양희’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다. 평소에 꾸미지도 않고 다니며, 실험극의 대본을 준비하던 ‘양희’는 시간이 지나 결국 자신이 준비하던 실험극을 무대에 올린다. 「조중균의 세계」의 주인공은 출판사 인턴이고, 나이먹고 고지식하여 다른 직원들에게 무시받는 ‘조중균씨’와 함께 일하게 된다. 기한 내에 검토를 마감하지 못한 ‘조중균씨’는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고 나는 결국 회사에 남아 정규직으로 발탁되지만, 조중균씨의 모습을 계속 기억한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주인공은 대학 때 남자들로부터 희롱을 받으며 지내던 ‘세실리아’의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고, 예술가가 된 ‘세실리아’를 다시 만나 위로를 받게 된다.

이 세 편의 소설들 모두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타락한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부재의 대상인 이들은 단순하게는 세계와 대립하는 대상이지만, 더 나아가선 서술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현실을 깨닫고 자신을 성찰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이들에 대한 미스테리와 궁금증울 해결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되지만, 소설이 모두 전개되고 난 끝에는 오히려 서술자가 자기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결국 이들 인물은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으로 독자들의 눈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고기」와 「개를 기다리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기」에서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서술자가 썩은 고기를 판매하는 마트에 대한 고소를 준비하고 며칠 째 보이지 않는 남편의 행방을 탐색하는 동안에 어느새부턴가 집 앞에 미지의 자루가 하나 놓여있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들 속에서 서술자가 자루에 대해 인식을 했을 때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서술자는 피가 흐르는 자루를 처리하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데, 자루의 정체가 고깃덩어리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소설이 끝난다. 「개를 기다리는 일」은 개를 잃어버린 모녀의 이야기다. 유학 중이던 딸은 자신이 사랑하던 강아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귀국하여 엄마와 함께 개를 찾기 위해 인근 공원에 차를 세우고 잠복해있는다. 그러나 잠복해있는 동안 자꾸 의미심장한 일들이 일어나고 개의 항방은 점점 미스테리 속으로 빠진다. 목격자가 나타나지만 개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암시를 하고, 엄마도 개가 집을 나간 과정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다. 결국 개는 찾지 못하고 딸은 유학 중이던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이 도시 어디인가에서는 개들이 수시로 짖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표정에는 서서히 균열이 갔지만 그녀는 곧 그것을 수습한 채 전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균열과 전망은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라는 것이다.

- p.178 「개를 기다리는 일」 中


「고기」와 「개를 기다리는 일」 모두에서 속시원하고 유의미한 결말은 나타나지 못한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끝내 해소되지 못하고 인물들은 다시 각기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고깃덩어리 자루가 등장하는 일, 그리고 개가 실종되는 일은 그 동안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자신이 사는 방식에 의문을 품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소설 속 주인공들만은 아니다. 작가는 소설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배경에 놓은 세상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독자는 소설의 미스테리가 풀리는 순간 독자가 은연중에 제시하던 이 세계의 모습을 순간 떠올리게 된다. 김금희는 소설 속에 독자들이 빠져들게 하고 독자 역시 이 세상의 잔혹성을 종내 느낄 수 있게 된다.

두 소설에서 작가가 결말을 보여주는 방식은 함축적이며 추상적이라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끝까지 해소시키지 못한다. 두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서사를 이어나가거나 매듭지을 단초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아주 명확한 이미지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하나의 ‘장면’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마무리 방식은 이전에 박민규의 『카스테라』에서 흔하게 나타났었다. 냉장고에 책과 사람과 지구를 집어넣고 며칠이 지나자 카스테라 하나만이 달랑 남겨져 있었다거나, 집나간 아버지를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지하철 플랫폼 벤치에 기린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거나 하는 식의 마무리로 박민규는 당대 한국소설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무관심한, 그러나 잿빛의 눈동자가 이윽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기린은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박민규, 『카스테라』, p.93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中


서사의 마무리가 아니라 상징적인 이미지로 결말을 맺는 소설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충실하게 작가의 서술을 쫓아가던 독자들은 작가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떠한 결말에 도달하게 될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작가가 갑자기 독자들을 끌고 다니던 서사의 밧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 순간 독자들은 단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앞에 두고 혼란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갈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간에도 배경이나 분위기를 묘사하며 소설에 의미를 부여한다. 중심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묘사들은 독자들이 작가의 서술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면서 크게 눈여겨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설가가 서사의 끊을 놓아버렸을 때, 그제서야 독자들은 본인들이 지나쳐왔던 이러한 세부적인 묘사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제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던 세계와 분위기를 독자들이 크게 느끼는 것이다. 김금희는 이러한 서술 방식을 통해 작가의 눈에 비친, 그리고 작가가 그려내고자 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필용은 가로수 밑에 서서 코를 팽 하고 풀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가 바뀌었을까. 바뀌면 얼마나 바뀔 수 있었을까. 가로수는 잎을 다 떨구고 서서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필용은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아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오가 넘은 지금은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이었다.

- p.42 「너무 한낮의 연애」 中

 
김금희는 본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너무 한낮의 연애」을 통해 본인의 작품세계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현실을 ‘한낮’이라는 배경으로 함축시키고 있다. 한낮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를 말한다. 해가 머리의 바로 위에 떠있을 때는 가장 강한 햇살로 만물을 비추게 되고, 그림자가 생길 수가 없어 사물은 본인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한낮에는 모든 것이 가장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눈앞의 현상이 왜곡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미화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결국 한낮이라는 시간에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감성으로써 가려줄 수가 없게 된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주인공인 ‘필용’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이고 정오 즈음이다. 이 시간에 필용은 10여년 전에 먹었던 맥도날드를 먹을 수도 있고 자신의 옛사랑인 ‘양희’의 연극을 보러갈 수도 있지만, 정오의 밝은 햇살 아래서는 나이를 먹어 주름살이 생기고 배가 튀어나온, 화이트카라의 직장인 아저씨인 자신의 모습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한낮’은 현실로 낭만이 침투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각 단편소설 속의 배경은 모두 하나같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 각박한 회사생활이거나(「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가정폭력이 존재하거나(「반월」, 「고기」, 「보통의 시절」), 혹은 심지어 고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우리는 어느 별에서」). 이 모든 이야기에서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소설 속으로 독자들이 몰입하게 한다. 과거 혹은 현재의 경험은 작중 인물들을 옥죄어 현실의 무거움 속으로 인물들을 더욱 침잠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매정한 현실을 타개하는 가장 문학적인 감정인 사랑은 ‘한낮’에 불가능해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지 못한다. 어둠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간은 ‘낮’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해서 더욱 슬프고, 그래서 『너무 한낮의 연애』가 독자들에게 아픈 현실인 동시에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단편소설로서 『너무 한낮의 연애』가 드러낼 수 있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시와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를 비교해보자면, 시는 짧아서 서사를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표현 혹은 이미지로 승부를 보는 장르이고,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형식이 다양한 편이다. 반면 소설은 길어서 서사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고, 서사에는 감정을 담을 수 있어서 감정과 서사로 승부를 봐야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가는 대중의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소설가로서의 태도를 밝힌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단순한 문장의 멋을 넘어 독자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야한다.

여기서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단편소설들은 입장이 자칫 애매해지기 쉽다. 서사로 가치가 있기에는 너무 짧아서 이야기와 감동을 느끼고 싶어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기보다는 다른 장편소설을 찾아 떠날 것이고, 문장의 멋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는 사람은 시를 읽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 한낮의 연애』의 가치는 삶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각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장면들은 완전히 서사적이지 않고 하나의 상징으로서 빛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잘 대변해 주는 동시에 하나의 예술적인 이미지를 보이기도 한다. 김금희는 우리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는 동시에 아픈 우리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잘 풀어내었고, 이러한 측면들이 『너무 한낮의 연애』가 이토록 인기를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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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의 저자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에 수록되었지만 언급하지 못한 「반월」, 「우리가 어느 별에서」,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오피니언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따뜻한 내용으로 김금희 문학의 매력을 보여준다. 2010년대 한국 단편소설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 최근 젊은 작가의 유머와 통찰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어보길 추천하며, 곧 출간될 김금희의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도 관심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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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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