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의 당신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사람]

과거와 현재의 내가 마주하는 시간
글 입력 2019.08.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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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했던 30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닮아있는 듯하여 만족스럽습니다. 십 년 뒤의 내 모습도 지금 내가 상상하는 모습과 닮아있기를.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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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플루언서의 메모다.


많은 사람이 SNS 속 화려한 일상의 인플루언서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얘기는 요즘 세상에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얘기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익숙하게 SNS를 서치하다 인플루언서의 메모를 보는 순간 무언가에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스무 살 때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를 마주했을 때, 나 역시 자신 있게 내 삶에 만족한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궁극적인 질문을 너무 오랜만에 마주해서 진지하게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확실히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땐 무엇이든 나와 관련된 것에 열정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텍스타일을 전공했고, 무던한 성격에 친구들과 대학생 때만 누릴 수 있는 젊음을 열심히 즐겼다. 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나 역시 대학교에 다니며 당장 취업을 걱정했고, 다행히 졸업 전 텍스타일 회사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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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배들이 많은 회사였다. 20대의 직원이 나와 동기뿐이라, 우리를 유독 많이 챙기고 아껴주셨다. 학생의 티를 벗고 조금씩 사회인이 되어갈 즈음, 우연히 속옷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내가 디자인한 원단으로 속옷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던 일 이외에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다시 생기고 나니 빨리 그 일이 하고 싶었다.

 

첫 사회인으로서 나를 받아주었던 회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속옷디자이너가 되고자 무던히 노력하게 된다. 그 당시 속옷디자이너 분야는 신입을 거의 뽑지 않았고,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2~3년 차의 경력자를 더 많이 채용하는 분위기였다.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 후배를 가르칠 만큼의 커리어를 쌓았던지라, 연봉을 깎고서라도 다시 신입으로 속옷회사에 들어가려는 내게 그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더 좋은 텍스타일 회사를 소개해주거나 거의 말리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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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나는 더욱더 속옷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속옷회사의 인사과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혹시 신입을 채용하지 않느냐는 전화를 수도 없이 했다. 신입 채용계획이 없다는 다수의 답변을 들으며 좌절할 법도 한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되뇌었다.

 

난 꼭 속옷디자이너가 될 거야.

원하고 바라면 반드시 길은 열려.

이 세상 온 우주가 내 얘기를 들어줄 거야.

아무 걱정 마.

 

그 당시 내 일기장을 들춰보면 대부분 내 하루의 마무리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하고 싶던 마음이 너무 커서 무모하리만치 잘될 거라는 자기최면이 강했던 열정 가득한 시절이었다.

 

그러다 국내 최대의 패션인들이 모여 있는 패션인 커뮤니티 카페에 속옷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장문의 글을 올리게 되었고, 한여름의 짙은 녹음이 가득했던 서울숲에서 돗자리 펴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카페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보았다며 면접을 보고 싶다는 어느 중견 속옷회사 디자인실 실장님의 전화였다. 너무 좋고, 행복해서 서울숲이 떠나가라 친구들과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속옷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정말 온몸과 마음으로 경험했다.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해서 그것에 마음을 쏟고 관심을 기울여 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열린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걸 많은 사람은 간과한다. 그래서 꼭 얘기하고 싶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끊임없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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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디자이너가 되고 난 뒤엔, 그저 너무 일이 즐겁고 재밌었다. 텍스타일보다 낮은 연봉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본 적 없던 재단 가위질과 원단 염색, 아우터와 다르게 직접 다 떠야 하는 패턴 작업이 흥미롭고 멋졌다. 3년 정도는 그저 신나서 밤을 새우는 밤샘 작업도 거뜬했던 것 같다. 트렌드 설명회에 갈 땐 한껏 멋을 내고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졸지도 않고 설명회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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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멋져 보였던 속옷디자인에 대한 나의 콩깍지도 4년여가 지나자 벗겨지는 순간이 왔다. (선배들은 콩깍지가 너무 늦게 벗겨졌다고 했다.) 경력이 쌓여가며 결국은 이곳도 돈을 버는 회사라는 현실에 맞닥뜨리며 여느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이상과 현실에서 고민한다.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회사가 싫은 거지 속옷을 만드는 일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 후, 스트레스를 해소 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캔들을 만들며 조향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고, 가죽을 만지며 내게 필요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업할 때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슬럼프는 극복되었다. 주변선배와 동료에게도 이 방법을 많이 추천하고 함께하고자 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취미생활을 늘려라] 라는 이 말은 어느 책의 한 구절이었고, 내게 정확히 적중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 일을 즐기며 진작에 텍스타일의 경력을 훌쩍 넘기며 오래도록 속옷을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속옷에서 자연스레 뿌리를 뻗어 수영복과 요가복, 텍스타일 프리랜서 일을 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앞으로도 쭉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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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플루언서의 메모로 돌아가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면, 다행히도 나 역시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의 방향에 관해 따져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는 늘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것이 우선이다.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해 꾸준하고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는 좀 더 좋은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던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잃으려 할 때마다 곁에서 무한한 사랑과 응원으로 날 지탱해준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누구보다도 내가 자존감 강한 사람으로 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사실 요즘, 내가 하는 일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였는데, 여전히 나는 속옷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디자이너이다. 신입이었을 때의 열정 가득했던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었는데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고마운 추억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적절하게 수용한다. 나는 수영과 캔들, 가죽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언제나 늘 소소하게 즐거운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십 년 뒤, 나 자신에게 고한다. 지금의 이 즐거움이 더 진해진 삶과 더불어 그때는 넉넉한 자산까지 더 많이 보태어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라고.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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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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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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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의세상
    • 멋있어요 !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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