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현실, 경계 "shakespear's R&J" [공연예술]

<shakespear's R&J>를 보고
글 입력 2019.08.19 11:1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41.jpg
 



0.



누군가 그랬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모르겠다. 정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연극은 맞기는 한 것일까. 인생이 연극인지, 연극이 인생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최근에 둘 사이에 뚜렷하고 엄중한 경계가 그어지지 않음을 보여준 연극을 보았다. 동국대학교 이해랑 극장에서 만난 <R&J>라는 연극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연극은 극중극의 형식을 띈 작품이다. 남자 기숙 학교에 다니는 학생 4명이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모두가 잠든 밤에 자기들끼리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연하는 이야기이다. 연극의 대부분은 모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4명의 남학생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성격인지, 무슨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R&J>는 전혀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연극이 제공해주는 정보는 그저, 그들이 굉장히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기숙학교의 환경 내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런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을 몰래 연극한다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R&J>는 극 중에서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극중극과 극의 현실을 뒤섞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이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님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만든다. 이 글의 목적은 <R&J>에서 어떤 요소들을 활용하여 극과 극중극의 경계를 흐리고, 둘을 뒤섞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뒤섞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간단히 살펴본 이후, <R&J>가 훌륭하게 이 작업을 해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1.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 연극의 무대였다. 기존의 일반적인 연극의 무대는 관객이 무대 앞쪽에만 위치한다. 하지만 <R&J>의 무대는 무대의 앞과 뒤쪽 모두 관객석이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까 무대가 있고, 무대 앞에 관객석이 있고, 무대 뒤에도 관객석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다음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무대에 마구잡이로 널려 있는 책상들과 의자였다. 정면을 기준으로 무대의 양쪽에는 커다란 책상들이 차곡차곡 탑을 이루고 있었고, 무대의 중앙에는 4개의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주의를 끌었던 것은 무대의 양쪽 끝을 장식하고 있던 커다란 높이의 창문 배경이었다. 일단 이 연극의 무대는 다른 극장들보다 굉장히 천장이 높았고, 그 천장을 십분 활용한 듯, 무대 양쪽의 커다란 창문 배경들은 5m에 가까운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서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 세 가지 요소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연극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와 환경, 상황을 끊임없이 인식하게 만들고, 4명의 남학생들이 상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만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관객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기존의 연극 무대들은 관객석과 무대를 엄격하게 분리시킨다. 극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은 오롯이 관객석 앞에 놓인 무대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R&J>에서는 관객석들에 의해서 둘러싸인 형태의 무대를 채택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 배우들이 무대에서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관객석 사이를 오가며, 언제는 관객들 옆에서, 언제는 관객들 뒤에서 연기를 펼친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극중극의 상황들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R&J>에서 활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극중극의 상황뿐만 아니라, 극의 상황(기숙학교 남자아이들의 현실)도 끊임없이 극중극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극의 무대는 관객석과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고, 혼재하고 있다. 극중극이 극으로 흘러들어오면서 동시에, 극이 우리의 현실로 까지 흘러나오고, 다시금 우리의 현실이 극으로, 극에서 다시 극중극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인식하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상기시키도록 하는 것이 바로 관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 연출이라는 시각적 요소의 기능이다.


그리고 무대에 놓인 책상들은 <R&J>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들을 지키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막이 바뀌고, 장면들이 전환하지만 이 책상들은 언제나 그 자리 그 곳에 가만히 있다. 이 책상들은, 무대에서 한참 <로미오와 줄리엣>의 온갖 장면들이 상연되고 있을 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시선 속에 들어온다. 관객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에 몰입해서, 온전히 감상하려고 시도 할 때마다, 보이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오히려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연하고 있는 4명의 남학생들이 처해 있는 억압적인 기숙학교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 있는 책상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가 <R&J>의 대부분의 서사를 이루지만, 그 <로미오와 줄리엣>은 극의 현실, 그러니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에 종속되어 있는 4명의 남학생들의 상황에 의해 침범당하고, 뒤섞여 버린 <로미오와 줄리엣>인 것이다.


좀 더 직접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는 위압적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창문 구조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창문들은 시작부터 그 크기로 권위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무대와 책상들이, ‘이 연극이 가톨릭 남자 기숙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정도만을 알려준다면, 이 창문들은 그 기숙학교가 정확히 어떤 환경인지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RJ1.jpg
<R&J>는 원래 1997년 미국에서
<Shakespear's R&J>라는 이름으로
상연되었던 적이 있는 작품이다.
사진은 연극에 등장하는 네명의 학생들.




2.



극중극이 극의 현실로 흘러나오고, 극의 현실이 극중극의 상황으로 흘러들어가는 장면들은 <R&J>의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연극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연극이 되며, 결과적으로 삶과 연극이 엄격한 이분법 아래에서 나뉘지 않음을 <R&J>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 장면을 뽑아보자면,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이고, 영주에게서 추방 명령을 받는 장면이 있다. 이야기는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영주가 선고를 내리는 장면을 굉장히 권위적이고 억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로미오는 그 명령에 너무나 분통해하고 억울해하지만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력함을 격렬하게 표현한다. 이 복종의 억울함과 비통함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극중극의 ‘로미오’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로미오’ 역할을 맡은 학생만이 그 대사를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4명의 학생들 모두 로미오의 감정과 함께 대사를 한 목소리로 읊는다.


이 장면뿐만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지금부터 말 할 장면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R&J>에서 굉장히 강조하고 싶었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로미오가 베로나에서 추방당한 이후, 줄리엣이 가문에서 맺어준 사람과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요구에 반항하며, 저항하는 장면이다. 줄리엣의 저항은 처음에는 꽤나 강력해 보이나, 얼마 안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에 무너지고 만다. 줄리엣이 계속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자 심지어 줄리엣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의 바지를 벗겨 엉덩이를 메우치기까지 한다. 줄리엣의 저항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문의 폭력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R&J>는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줄리엣이 결과적으로 복종까지 나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을, 학생 4명이서 공유하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이 4명의 학생들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극중극과 극의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장면들을 살펴보았다면, 지금 말할 장면은 극중극과 극, 그리고 관객이 살고 있는 현실까지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장면을 살펴 볼 것이다. 로미오가 줄리엣과 결혼을 하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 등장한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한다면, 그댄 그 어떤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그 어떤 날보다 온화합니다. 아무리 거친 비바람이 사랑스러운 꽃망울을 흔든다해도 이 여름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때론 태양의 눈이 뜨겁게 타오르고 또 때로는 황금빛 얼굴일 금세 어두워집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곧 시들기 마련이니까.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니까.


하지만 당신이란 여름은 결코 시들지 않고 그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입니다. 죽음도 그대를 가두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고 서로를 볼 수 있는 한 이 서약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소네트이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 원작에는 없는 이 소네트가 추가되었단 말이다. 원작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부분이 극에 등장한다는 것은, <R&J>에서 상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극에 등장하는 네 소년만의 관점과 시각으로 읽은 <로미오와 줄리엣>임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극중극의 상황에 극의 현실에 기반하는 시선들이 얽혀 들어온다. <R&J>에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런 의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세익스피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첫 구절만 들어도, ‘아! 이거 소네트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유명한 소네트를 원작의 맥락에 덧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관객이 ‘응? 이거 소네트 18번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원작 위에, 4명의 남학생들의 감상이 얹어지고, 세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었던 관객의 감상 경험이 한 겹 더 얹어 지게 된다. 그러니까 극중극이, 극을 거쳐서, 현실의 관객의 경험을 향해 흘러 나오고, 다시 관객의 경험이 극을 거쳐서, 극중극 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R&J>에서 또 간편하게 극과 극중극의 상황을 뒤섞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대본’이다. 처음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4명의 학생들은 다 같이 둘러 앉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을 읽는다. 이후로 대본은 극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장과 막이 바뀔 때마다 학생 중 한명이 대본을 펼쳐들고, ‘O장! O막!’이라고 외치고 대본을 읽으면서 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구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서로 대본을 던지면서 한 줄 씩 번갈아 읽어나가기도 한다. 이렇게나 대본이 극에서 강조되는 이유는 아마 이들이 공연하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들만의 고유한 독서 경험 아래에서 재조직되고 맥락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책장.jpg
우리 집엔 책이 많다.. 아주..



 

3.



그렇다. 연극 <R&J>는 극 중 현실의 경험이 극중극,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극을 어떻게 재조직하고 맥락화 하는지, 그리고 극중극이 다시금 4명의 학생들이 처해 있는 현실들을 어떻게 재조직하고 맥락화 하는지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장면들과 요소들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더 나아가 <R&J>라는 연극이, 관객의 삶으로 어떻게 흘러나오는지, 그리고 관객들의 시선과 관점, 생각이 <R&J>라는 연극 안으로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지도 조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렇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4명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는 삶의 환경이, 이 학교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권위적인지 스스로 되물어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극중극이 극의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네명의 학생들은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을 향해서 말을 걸고 있다. 그들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는, 그 개인의 감상 경험에 달려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뚜렷한 것처럼 보였던 현실과, 극, 그리고 극중극을 가르고 있는 경계가, 그리고 뚜렷하기에 그 사이의 어떠한 침범도 허용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경계가, 더 이상 그렇게 뚜렷해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연극을 보는 감상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하고, 그 교훈에 따라 우리가 삶의 방식을 조정하게 된다는 차원이 아니다. 분명히 그런 의미에서도, 연극과 우리의 삶은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류로는, 처음의 명제 ‘인생은 연극이다’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이 관계에서 현실은 고정되어 있고, 연극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를 통해서만 현실에 자그마한 변화를 이끌어 낼 뿐이다. 여전히 연극과 현실 사이에는 넘어 갈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어 보인다. 이 관계에서는 현실이 특권적 위치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연극에 의해 영향 받는 특권적 위치를.


결국 내 주장은 좀 더 급진적인 것이다. ‘인생이 연극’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연극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인생과 연극이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인 것과 현실인 것을 우리는 잘 구분할 수 있다.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이 연극이고, 극장 밖에서 살아지는 것이 내 삶 아닌가? 여기서 구분될 수 없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어디에서 인생이 시작하고 연극이 끝나며, 연극이 시작하고 인생이 끝나는지 그 경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R&J>의 예에서 본 것처럼 연극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연극으로 흘러들어간다.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렇게 뒤섞이는 세계 속에서 연극(삶)의 외연은 무한히 확장된다. 무엇하나 연극이 아닌 것이 없다. 그렇기에 무엇하나 삶이 아닌 것이 없다. 이 지점에서야 비로소 연극이 삶이 되고, 삶이 연극이 되며, 정당하게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KakaoTalk_20190728_055331251.jpg
 

  



[김영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