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말 드라마를 봤다. [TV/드라마]

글 입력 2019.08.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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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매스 컬처(mass culture)나 파퓰러 컬처(popular culture)라 호명된다. 매스 컬처는 대중문화의 생산방식에 기원한 단어다. 거대 자본의 미디어가 대량 생산하는 문화를 매스 컬처라 지칭한다. 파퓰러 컬처는 수용과정에서 기원한 단어다. 다수가 향유하는 문화를 지칭한다. (김창남, <대중문화의 이해>, 한울 아카데미, p34) 두 단어를 하나로 뭉뚱그리면 ‘매스미디어가 대량 복제하고, 다수가 소비하는 문화’ 정도의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어쨌거나 미디어가 대중문화 양산에 거대한 비중을 차지함이 전제돼 있다.


대중문화는 다수가 향유할 수 있을 만큼 접근이 용이하다. 모퉁이를 돌아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혹은 버튼을 누르면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이용 가능하다. 사회는 대중문화의 수위를 통제한다. 통제를 받아야 할 만큼 대중문화는 대중의 행동양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중문화는 당대의 분위기나 현상을 반영하며 생산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식과 담론을 자아낸다. 대중으로 하여금 이렇게 행동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의식을 함양케 한다. 그것은 대중의 입고 먹는 패턴에 제동을 걸거나 변화를 주도한다. 당신의 기호가 대중문화에 노출됐는가를 기준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대중은 대중문화의 자장 아래 있다.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고 대중의 의식이 성장하며 기성 미디어의 영향력이 이전 같지 않다고 언급된다. 이전과 비교해 축소됐다는 언급이지 영향력은 아직 건재하다. 여전히 몇 백만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거나 어떤 담론이 필요한지 판별해 대중에게 환기시키는 방식 또한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거기 내포된 담론 중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30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을 보이는 KBS 주말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중 몇 화를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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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전형적이다. 대기업 총수의 가정이 악의 축 비슷한 역할을 전담한다. 거기서 자란 남성 주인공이 자기 가문의 재력과 위세를 물리치고 여자 주인공과 ‘진짜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의 서사가 드라마의 주요 갈래다. 여자 주인공의 엄마, 언니, 동생의 가정이 비중 있게 등장하며 주요 갈래를 보조하는 형식이다.


남성 주인공의 엄마와 유사한 인물이 알고 보니 여성 주인공의 친모였다는 설정, 당사자와 논의 없이 가족 투표로 사윗감을 고르는 등을 비롯한 여타 문제는 그러려니 하자. 어차피 그럴듯한 개연성이 성립됐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진짜 부모 찾기 설정은 유치한 비유 같다. 구태의연하다.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건 통속적이어서다. 통속적 이야기는 ‘통속적’이라 호명되기에 앞서 절대다수의 대중에게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사람에겐 결말까지 아는 그 익숙한 전개를 기어이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가장 문제 많은 가정은 미선네 가정이다. 맞벌이 부부임에도 육아, 가사는 모두 미선이 일임한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차리고 딸을 깨워 학교 보낼 채비를 하는 등의 가사 업무를 매일 수행한다. 남편인 원재는 조력자 정도의 위치에 서 있고 스스로는 거기 만족한다. 가정 내 영역은 씀씀이 크고 꼼꼼하지 못한 나보다 아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감이 온당하다고 믿는다. 원재는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도움을 준다는 원재의 생각은 불편하다. 씀씀이 크고 꼼꼼하지 못한 성향과 관계없이 이 가정은 미선의 가정임과 동시에 원재의 가정이기도 하다. 필요를 요청할 때마다 도움을 줘서 가정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원재 역시 주체적으로 가정 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원재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일에도, 가사도우미의 게으름이 발각돼 딸의 신상에 변화가 생긴 일에도 그것들 모두 미선의 선택이었다며 책임 주체에서 회피하려 든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는 원재 자신이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해고한 일의 배경엔 피곤함을 토로하며 가정 내 안건과 무관한 듯 굴었던 원재의 무신경함이 있다. 그는 토론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주변 인물들 중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는 없다. 도리어 미선을 추궁한다. 미선의 시어머니는 미선의 부주의가 이 사달을 배태한 원인이라며 미선이 직장을 그만두기를 종용한다. 이후엔 손녀의 유학을 도모하거나 미선에겐 남편 내조에 치중할 것을 강요한다. 미선이 반발하는 맥락도 이상하다. 시어머니에 불과한 인물이 자기 가정의 미래와 처사에 참견하면 내 가정은 당사자인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일갈하면 그만이다. 미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란 지위에 어떤 권위가 있다고 여기는 미선은 당신 아들의 무신경함이 이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미선은 정말로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한다. 미선은 딸의 유학에 동행 말고 남편 내조에 신경 쓰라는 맥락에만 반발한다. 미선의 엄마인 선자는 해당 상황에 별도의 주석을 첨언하지 않는다. 사내구실 운운하며 원재 용돈을 챙겨준다.


드라마는 성별 분담 의식을 기반으로 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설파한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 진출해 가정의 경제생활을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 내 사적 영역을 맡는다는 의식, 성별에 따라 분담하는 업무가 다르고 그 구별이 분명한 가족이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드라마에 내포돼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여성의 활발한 공적 영역 진출을 반영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균형이 붕괴된다고 주장한다.


드라마가 모성을 다루는 방식에도 위화감이 든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했던 인숙은 자신이 주인공의 친모임을 인지하자 반성과 성찰의 순간을 통과하며 회개하는 듯 보인다. 또, 딸 회사에 불쑥 찾아가 사윗감을 고르는 등의 기행을 벌이는 선자를 엄마로서 딸을 걱정하는 마음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변호한다. 딸의 안온한 일상을 위해 자기 경력을 포기하는데 아무 망설임 없는 미선은 드라마 내에서 진정한 모성의 전형처럼 묘사된다.


결국 모든 여성에게 모성이 있고 그건 숭고하다는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의 전파다. 이 이데올로기가 불편한 건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고정된 관념에서 태동했기 때문이다. 모성을 지닌 여성은 섬세하고 가정에 헌신하고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 그리고 그게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를 가진 본작은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비정상이라 배격하는 셈이다.


미디어는 정상성을 남용하지 않는지 스스로 검열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정상이다’란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을 양산하고 비정상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대중은 알게 모르게 이 드라마의 이데올로기에 영향받는다. 미디어는 스스로의 영향력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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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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