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여름날의 꿈결 같은 축제, 영화 "미드소마"

글 입력 2019.08.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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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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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축제는 처음이지(그럼그럼)
         

공포영화를 잘 못 본다. <장화 홍련>과 <곡성>을 무척 좋아하지만 볼 때마다 웅크리고 눈을 가리거나 바닥을 볼 때도 있다. 그럴 거면 왜 보냐고 한 소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서운 게 나올 시점이란 걸 알면서도 그 분위기에 몸이 굳기 시작한다. 가장 민감한 건 소리다. 기괴하고 몸을 조여 오는 듯한 그 소리. 물론 그게 없다면 공포영화의 무슨 공포와 재미가 있겠나.

<미드소마>는 플로렌스 퓨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큰마음을 먹고 봤다. 생각보다 그리 무섭지 않다고도 하고, 귀신보다는 잔인한 게 차라리 나은 편이었고,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은 조금 안전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서울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눈을 가렸기 때문에 공포 부분에 있어선 스포를 할 수 없는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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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여기 다 있다
                          

자, 이 영화는 엉뚱하고 끝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순진하다 싶을 만큼 확실하게 보여줄 건 보여준다. 비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읭?' 스러운 호르가 마을의 그림에 다 나와있다. 그곳의 아기들이 가까이 봐도 되는 관람가의 그림인지 의심스럽다.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 길을 가겠다는 확고함이 느껴진다. 당신이 고작 72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야 하고 으깨진 머리를 보고 싶지 않든, 당신이 사이렌처럼 노래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섹스를 하는 걸 엽기적이라고 생각하든, 9명을 태워 죽이면서 꺼이꺼이 울며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거 병 주고 약 주는 이상한 사람들 아닌가라고 생각하든. 영화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우리의 어린 시절에 많이 본 영화가 전형적인 기승전결, 대체로 권선징악 같은 교훈적이고 대중적인 영화가 많았다면 이 영화를 보고 의아할 수도 있겠다. 맥락이 있기를 하나, 보기 편하길 하나, 이해가 잘 가길 하나. 영화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여름 축제를 위한 손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드소마는 오로지 호르가 사람들, 그리고 대니를 위한 축제였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을 위한 9일간의 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축제는 4일이 지났다고 하니 남은 기간 동안 대니도 위험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글쎄,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녀가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부터 선택받았고 마지막엔 그녀가 선택했으니까. 제법 잘 어울릴 거란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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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겐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했던 고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징징거리는 민폐가 되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건 내가 늘상 하는 고민이다. 그녀처럼 일가족 집단 자살로 이어질 만큼 조울증이 심한 가족은 없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과 친척이라고 그 증상과 그리 먼 것만은 아니다. 다른 집들도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이 한 사람씩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있다. 조울증이 병인 건 알지만 그로 인해 상처 받는 가족을 지켜보아야 하는 건 괴로웠다. 어디까지가 병으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는 지점인지,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는 말도 반복되면 의미가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제일 비참한 건 내가 이 상황에 별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상처를 줘놓고 다시 참회하고 다시 상처를 주는 게 반복된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건 나에게도 그 우울함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비록 다른 형태지만. 닮을까 봐 두렵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프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대니도 그랬겠지. 나도 힘든데, 나 때문에 남자친구마저 힘들게 하는 건 별개로 괴로웠겠지. 게다가 그 남자친구의 눈은 어느새 대니를 보고 있지 않고 숨소리마저 언제든 이별을 고하고 싶은 듯 한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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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연애가 문제였는지, 애당초 맞지 않는 사람이었든지, 스며든 우울한 기운이 모든 걸 시들게 했는지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남자친구가 그리 멋진 사람은 아니다. 여자친구와 얼마를 만났는지도 몰라, 생일도 몰라, 게다가 일적으로도 뻔뻔하다. 연구주제를 홀라당 훔쳐가 놓고 공동연구를 시전하는 걸 보고 제일 절레절레했다. 물론 그의 미적지근해서 오히려 나쁜 태도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다.

적당한 소시민적인 인간상 아닌가. 처음엔 조울증이 있는 여자친구 동생 때문에, 나중엔 온 가족이 세상을 떠서 괴로워하는 마당에 그녀를 기다리고 들어줬는데 이건 끝도 없고. 그 와중에 헤어지자 곤 못하겠지만 남자친구라는 이름을 한 상담사로 전락한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구구절절 얘기하자니 복잡하고 그냥 내처 몰랐으면 싶기도 했겠지. 그래서 스웨덴 여행 얘기도 차일피일 미뤘고. 안 갈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같이 갈래?를 던져봤는데 눈을 빛내며 간다고 하니 말도 못 하고. 영화 전반적으로 그는 적당히 어수룩하다. 곰의 탈을 쓴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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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플 사이에 애매한 이유로 대니와 크리스티안, 원래 멤버 3명 펠레, 마크, 조쉬까지 5명이 다 같이 스웨덴으로 가는 판국이라니. 비행기에서 친구들은 알았을까. 듣도 보도 못한 여름 축제가 펼쳐지리라는 걸. 내 돈 주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사서 가고 있다는 걸. 아니지, 아니야. 모든 건 펠레가 짜 놓은 판으로 초대된 건데 말이다. 역시 사람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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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가 사람들을 사이비 집단으로 보든, 독특한 규칙을 가진 소규모 집단으로 보든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도 되는 것이다. 영국인 커플처럼 이 사람들은 미쳤어!라고 했다간 어차피 죽을 목숨을 빨리 재촉했을 것이고, 무지하게 노상 방뇨했다는 이유로 가죽을 벗겨지는 다소 고풍스러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지나치게 학구적인 마인드로 논문에 이들을 알리려 했다가도 경을 칠 일이었고. 호르가에 와서 호르가 법을 따르지 않은 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음을 당했다.

궁금하더라. 그들의 법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나? 하얀 옷을 입고 순박하게 생긴 얼굴을 해가지고는. 자신들의 노인을 죽일 땐 그렇게 얘기하더니 외부인을 죽일 땐 원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거짓말도 청산유수다. 무슨 기차를 타고 갔다는 둥, 도로교통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둥, 장로들이 논문을 써도 된다고 했다는 둥. 그들이 그 옷에 그 얼굴을 하고선 응, 그들은 죽었어.라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이것은 오래된 우리의 관습이고 그들은 자유로워진 거야.라고 말했다면.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을 보고 나서인지 위화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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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겁나게 예쁜데 시방 뭘 본 것이냐
    

집단이란 게 그렇다. 결국은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다. 그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외지인의 유전자는 필요하다 치고, 제한된 공간의 인원을 조절하기 위해 노인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겠다고 하자. 그런데 왜 굳이 사람들을 죽이고 알 수 없는 온갖 환각성분의 차와 약을 마시면서 사는 건가. 맨 정신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릴 사람들도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취해서 살아야 고분고분하게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인가.

나처럼 궁금한 게 많고 시대가 어느 땐데 옛날 것은 무조건 지켜야 해요! 이 마을 꼰대스럽네라고 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 일 수도 있겠다. 결국 그들의 평화라는 건 자유로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다. 근데 그들만 그런가? 우리도 그 점에선 같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도 다 못하고, 하라면 하고. 그래서 어디에서든 우리로 사는 게 쉽지 않다. 때로는 더럽게 치사한데 안 그럼 혼자가 되니까. 집단의 뿌리에는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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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자리싸움이 여기도 있군요
           

호르가 사람들을 일종의 사이비로 본다면? 한국인들에겐 유독 사이비 레이더 같은 게 있지 않나. 타고난 건 아니고 길가를 걷다가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 있냐 보다 그들에게 놀라는 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점. 언제든 절벽 앞에 서있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더 아프고 괴로울수록 한번 마음을 열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전략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니는 아주 시의적절한 구성원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하면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녀는 게다가 모든 면에서 약하다. 남자친구는 있으니 마니 한 상태에서 펠레가 짜잔 하고 그림까지 그려주고 손을 잡아오고, 공통점까지 있잖나.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혼자인 기분을 안다면서. 그가 그려준 그림을 보면 그녀가 화관을 쓰고 있는데 그녀가 5월의 여왕(메이퀸)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궁금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크리스티안이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걸 보고 상처 받은 대니의 울음소리를 따라 하는 장면. 이렇게 원초적인 공감이 있을까? 네가 울면 나도 운다는 간단한 공식. 처음엔 그녀를 달래려고 쉬쉬하는 줄 알았더니만 떼창을 하면서 울고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하더라. 누가 내가 그렇게 울고 있을 때같이 목청을 높이며 얼굴이 벌게져서 울어줄 수 있을까. 혼자 이불 속에서, 혹은 벽 뒤로 숨어서, 꺼이꺼이 울기도 어려워 끅끅대며 울었던 날들에 비해 얼마나 따뜻하고 희소한 날이었을까. 대니가 그곳에 가서 제일 위로 받은 순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때만큼은 흔들린 것 같다. 물론 그 모습만으로 모든 건 갈음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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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을 시전할 줄 아는 사람들
                  

뭐 어때.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그러진 표정이 마지막엔 환하게 웃게 된 것 아닌가. 한 때 내가 무척 사랑한 날도, 사랑했던 사람도 안녕.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잃을 사람들도 없다. '멀쩡한' 집단의 사람들도 상처를 주고 해괴망측한 범죄를 저지르며, 관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옥죄고 신경 쓰이게 하는데. 조금 이상한 호르가 사람들도 결국 본질은 똑같은데 딱 한 가지가 다르지 않나. 나와 눈을 맞추고, 나와 가족이 되겠다며 웃어주고, 나와 함께 울어주는데.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그만한 곳이 어디 있겠나. 이런 꿈결 같은 한여름날의 축제가 어딨겠나.



                        

* 펠레와 대니는 오, 이건 새로운 사랑인가 싶게 은근 달달하다. 아니면 친근한 영업일뿐인가? 근데 왜 이렇게 미드소마에 최적화된 대니에게는 먼저 같이 가자고 물어보지 않은 거지? 네가 와주길 기다렸다면서 말도 안 꺼낸 게 신기. 어수룩한 크리스티안에게 물밑작업이라도 한 건가.

* 펠레가 '난 네 마음을 다 알아. 나도 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거든. 가족을 잃었어'라고 하는 접근법과 위로는 와 닿지 않았다. 펠레의 부모님은 적어도 자살을 하진 않았잖나. 과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을 하셨을까?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있는 입장에선 속이 상한다. 남아있는 내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같은 죽음이란 건 없는데 관심법처럼 다 안다는 식의 태도가 별로였다. 게다가 대니가 떠나려고 짐을 쌀 때 하는 말이니 결국은 떠나지 말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 한국 사람들이 호르가에 갔다면? 일단 호르가의 사람들 제거법을 보자니 백인이 아니면 우리도 다 죽은 목숨일 것 같은데 한국인의 전투력으론 어땠을지 궁금하다. 조선 왕조 대대로 은수저로 독이 들었나 확인하던 의심주의자들이라 고기 파이, 차 등의 음식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을 것 같고. 클레임을 걸었으려나. 음식에 머리카락도 아니고 체모가 들어가 있다니 안되겠네. 누가 만든 거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을지도.

* 메이퀸은 대학교 때 뽑던 메이퀸인가! 하면서 또 전투력에 불탔을 것 같고. 지금 우리는 아니고 부모님 세대 기준. 경기 종목이 둥글게 둥글게라니 이거 한국사람한테 상당히 유리한 종목이다. 대니 긴장해!

* 연구주제는 스스로 노력해서 씁시다. 건강을 상하진 말고 살아 있어야 합니다. 대학원생의 고뇌란.

* 이걸 베드신이라고 해야 하나,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여튼간 영화관에서 다들 피식거리며 웃기 바빴다. 머쓱함에서 오는 웃음도 생각보다 세던데.

* 옷이 예쁜데 어떻게 사업 한 번 해볼 생각 없는가.

* 호르가 사람들을 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이유 없이 떠올랐다. 후, 하! 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는 호르가 사람들이 1Q84에서 호우호우 거리는 리틀 피플이 떠올랐다.

* 꿈결 같단 걸 솜사탕처럼 달콤하다고 오해하시지 말기를. 꿈은 온갖 의미와 장르를 내포하고 있다. 내 꿈엔 스릴러, 미스터리가 많더라.

* Danny boy 가 떠오르는 건 대니의 여러 표정 때문이었다. 낭만적으로 보자면 호르가 사람들이 대니에게 불러줄 수도 있는 곡. 그들이 오래 기다린 후에 대니가 여름이 되어서 돌아왔다면.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nd all the roses falling,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But come y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Ti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오 대니, 파이프 소리가
계곡에서 계곡으로 산기슭 아래로 울려 퍼져

여름은 지나가고 장미가 시들고 있어
넌 떠나야 하고 나는 기다려야만 하네

그러나 대니, 너는 저 초원에 여름이 오면 돌아올까
아니면 저 계곡이 흰 눈에 덮여 적막할 때 돌아올까

난 낮이나 밤이나 여기서 기다릴게

-Danny Boy - Frederick E. Weatherly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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