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View] 할리우드에서 온 아티스트, 경다솜의 음악 Part 1

글 입력 2019.08.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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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생 아티스트의 시작은



글 - 작곡가 오상훈(Dike)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게 되면 사람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반응은 나에겐 놀라웠다.


MI(Musician Institute, 미국)를 졸업하고 긴 시간을 음악을 하며 살아온 그녀가 자신의 공연을 찾아온 관객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동받는 모습이나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 준다는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내가 생각한 그녀의 모습과는 꽤 달랐다. 얼핏 보면 냉미녀의 느낌도 있고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던 그녀와 긴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티스트의 팬이라면 팬질하는 게 완전 보람차겠군!!!'


작곡가가 만나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 <인디 View>. 열여섯 번째 주인공인 경다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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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A. 경다솜 :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경다솜입니다. 작사,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오늘 오후에 신곡이 발매되는 것을 알고 있어요.(인터뷰 당일이 <삐끗삐긋>의 발매일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A. 경다솜 : 그동안 저는 계속 곡 작업을 하고 다른 가수들의 곡 작업도 했어요. 아이돌 친구들의 레슨도 하고 학교도 출강을 하고 있어요. 매일 일을 하는 게 보통이고 이번엔 좀 다르게 오랜만에 여행도 다녀왔어요. 원래는 잘 못 다니는데 이제 마음먹고 두 달에 한 번씩은 가보려고요.



Q.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눌러주신 걸 봤는데 혹시 이전 인터뷰들을 읽어보셨나요?


경다솜 : 네, 다 읽어봤어요! 검색해서 찾아서 읽어봤어요. 사실 전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이유가 공연을 보러 와주신 게 너무 깜짝 놀라고 감사해서 꼭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둘 다 웃음) 그러고 난 다음에 찾아봤어요.


Dike : 그날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웃음) 읽어보셨다면 먼저 어떤 질문을 드릴지 아실 거예요. 다솜님의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지금까지의 일생을 짧게 들려주세요.


A. 경다솜 : 음악적인 일생을 얘기하자면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성악을 했어요. 그러다가 6학년 때 갑자기 목이 너무 안 좋아져서 성악을 포기하고 1년을 노래를 쉬었어요. 그리고 중2 때부터 다시 노래를 시작해서 서울 실용음악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리고 바로 MI를 갔다가 지금까지 계속 음악을 하고 있어요. 계속 노래만 하고 지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칠 곳이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가끔 슬프기도 하지만요.(웃음)


특별하게 힘들었던 일은 없었는데 몸은 좀 약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는 종종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음악을 못하게 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셨대요. 덕분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죠.(웃음) 아버지는 지금도 음악보다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지만 어머니는 계속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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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 학원 원장님이 성악가였어요. 그때 테스트를 하다가 제가 절대음감이 있어서 어머니에게 노래를 꼭 시켰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셔서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때 원장님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할 수 없는 성대라는 얘기를 들었어요.(웃음) 선천적으로 성대가 얇고 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게 손상이 올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여자도 변성기가 있는데 제가 그걸 몰랐어요. 목소리가 변하지 않으니까. 그때 갑자기 성대가 너무 크게 안 좋아졌고 그 나이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평생 노래를 하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상황적으로는 약간 우울증 비슷한 게 있었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집에서 노래를 하면 하지 말라고 하고 연습할 곳도 없고 노래를 할 곳이 없으니까 그게 크게 스트레스가 됐어요. 다행히 지금은 목이 많이 회복이 되었고 발성을 열심히 하면 충분히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Dike : 나름대로 고비들이 있었네요.


경다솜 : 음, 그렇게 따지면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중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공연을 하는데 절대음감이라서 음정이나 박자가 나갈 일이 많지 않다 보니 그 나이 대에 친구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해주는 거예요. 그게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고 나는 역시 노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노래를 안 배우면 죽을 수도 있다고 졸라서 음악학원에 노래를 배우러 다녔어요.


서울 실용음악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목은 계속 안 좋아서 담임선생님이 작곡으로 전과를 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막상 맘을 먹고 전과서를 드렸더니 교감선생님이 안된다고, 너는 노래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러던 찰나에 MI에 합격했고 그래서 당연히 전과를 할 수 없었어요. MI를 보컬로 붙어서.(웃음) 그래도 작곡으로 전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대학교에 가서도 했던 것 같아요. 욕심이 많아서 다 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노래만이 아니라 모든 걸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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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ke : MI에서의 미국 생활은 어땠나요?


경다솜 : 자유로웠어요. 처음으로 남들 시선에 맞춰서 음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노래를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려고 이걸 시작했다는 걸 크게 깨닫고 왔어요.


MI에서는 한국 친구들이 많지 않았어요. 수업을 들어갔을 때 다 외국인들 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막 노래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노래를 너무 잘하는데 왜 그렇게 음정에 집착을 하는지 저에게 물어봤어요. 노래를 머리로 하지 말고 진짜 마음으로 한 번 해보라는 말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때부터 가사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MI에서 정말 많은 성장이 있었어요. 음악적인 성장은 열심히 하면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변하고 여러 가지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Dike : MI에서 공부했던 기간이 길었을 것 같은데...


경다솜 : 아니에요. 2년 6개월 있었어요.


Dike : 생각보다 짧네요?


경다솜 : 과정이 4년제 과정과 전문대 과정이 있는데 MI는 원래 1년 6개월 과정이 유명한 학교예요.


Dike : 아하, 그렇군요. 제가 MI를 잘 몰라서.(웃음) 그럼 졸업을 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신 건가요?


경다솜 : 네. 돌아오고 나서는, 사실 전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어린 나이에는 아이돌처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직업을 가지면 감정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와서 20대 초반이었고 아직까지도 아이돌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런 제의를 몇 번 받고 나니까 ‘난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선생님이 되는 거라서 유학도 다녀온 거였는데 선생님이 되기에도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던 거죠. 그래서 한동안은 집에서 쉬었어요.(웃음)


그러다가 처음 일을 시작한 건 작사, 작곡으로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어요. SS501의 멤버였던 김현중님의 일본 앨범 타이틀곡과 수록 곡을 작업했고 그게 일본 차트에서 2위 정도까지 올라갔던 걸로 알고 있어요. 작사로는 신인 친구들 곡을 몇 개 했어요. 노래는 오래 전공을 했었는데 반면에 작사, 작곡은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작사를 혼자 오랫동안 했어요. 상상의 나래를 막 펼칠 수 있는 게 설레었어요. 지금 내고 있는 앨범도 그때 썼던 가사들 중 하나를 쓰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하다가 1년 정도가 지나고부터 엔터회사들에서 보컬 트레이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고요.



경다솜의 <비가와>



Q. 다솜 님은 데뷔 때부터 MI 출신으로 알려져 있어요. 많은 분들이 버클리는 들어 봤지만 MI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생소할 것 같은데 MI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그리고 MI에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궁금해요.


A. 경다솜 : 저희 학교는 실무위주의 학교예요. 이론적인 것도 물론 배우고요. 필드에서 유명한 분들이 정말 많아요. DNCE의 기타리스트 진주 언니도 같은 학교이에요. 열로우 자켓의 피아니스트인 러셀 페란트도 학교 교수님이에요. 필드에서 유명한 분들이 선생님으로 오시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소니뮤직과 계약한 친구도 있고 빅션의 드러머인 친구도 있고 머라이어 캐리의 드러머인 친구도 있어요. LA에 아직 있는 친구들은 유명한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공부를 할 때와는 커리큘럼이 바뀐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있었을 때는 여러 가지 수업이 있었지만 가장 재밌었던 수업이었고 제가 앞으로 레슨을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수업 중 하나는 학생들이 동그랗게 서서 노래를 한 소절씩 나눠서 불러요. 뒤에서 선생님이 블루스 스타일로 연주를 해주시면 그 노래를 블루스 스타일로 불러요. 그렇게 펑크나 R&B, 힙합 등의 여러 장르에 맞게 즉흥으로 부르는 수업이었어요.(웃음) 그 외의 이론수업도 들었고 다른 수업은 어느 학교든 비슷한 것 같아요.


개인 레슨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저는 여러 선생님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많이 옮겨 다니려고 했었는데 애드리안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한국 분이신데 MI를 졸업하시고 교수님으로 계신 분이었어요. 그분을 보고 너무 센세이션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사람이 이렇게 R&B를 한다고?!라는 생각을 했죠. 머라이어 캐리 같았어요. 처음 갔을 때는 제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런 부분도 많이 도와주셨고 ‘음악은 이런 거다’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주신 분이에요.



Q. 할리우드(Hoolywood)는 영화만 생각나고 제 주변에선 여행지로 가는 사람들도 흔치 않아서 어떤 곳일지 궁금해요. 유학생활 당시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그리고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A. 경다솜 : 제가 유학을 갔을 때가 환율이 제일 높았을 때에요. 부모님이 200만원을 보내주면 제가 130만원 정도를 받는 수준이었어요. 학비도 저렴한 편이 아니라서 배를 곪는 일이 많았어요. 부모님에게 얘기하면 더 보내주시긴 하겠지만 그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월세도 진짜 비싸요. (카페 공간을 가리키며) 여기 절반 정도 크기가 100만원 정도예요. 게다가 엄청 허름한 방이죠. 원래 처음에 살던 집에서는 쥐가 나와서 이사를 했어요.(웃음) 제가 곤충이나 동물을 무서워하거든요. 두 번째 살았던 집에서는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박멸되지 않는 날파리들과 함께 했죠.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도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화려한 이면이 있어요. 그곳에서 스파이더맨 옷 같은 것들을 입곤 하시는 배우 지망생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꿈을 좇는 도시이자 저의 기억에는 벌레가 정말 많은(웃음) 도시라고 기억이 돼요. 특히 바퀴벌레가 정말 많아요. 손가락 두 개만한 크기의 도시... (손으로 크기를 보여주며) 더듬이 빼고 몸통만 정말 이만해요. 근데 이게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웃음) 학교가 할리우드의 메인 거리에 있는데 차가 있던 게 아니라서 항상 학교 근처에 살았어요. 그렇다 보니 저에겐 할리우드는 배가 고픈 사람들이나 홈리스 분들이 많고 음식 값은 비싼데 맛있는 곳은 많지 않은, 벌레가 많은 동네였죠.(웃음) 그렇게 2년 6개월을 보냈어요.



지훈아울즈 프로젝트 III 의 <Hollywood Sky> MV



Q. 이제 음악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데뷔 이전에 이미 음원에 참여하신 적이 있었어요. ‘지훈아울즈 프로젝트 III’의 <Keep On Dreaming>과 <Hollywood Sky>에 참여하셨어요. 지난번에 공연을 보러 간 덕에 <Hollywood Sky>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보니 행운이었군요.(웃음) 이 두 곡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그리고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A. 경다솜 : 참여했던 멤버들이 전부 MI 졸업생들이에요. 지훈아울즈의 지훈님은 그때 오셨던 카페의 대표님이에요. 피아노를 치신 분은 폴킴 노래의 작곡가 분이시고요. 그리고 다들 동기예요. 아, 그리고 지훈오빠는 제 후배예요.(웃음) 지훈오빠가 프로젝트 앨범을 하면서 MI 사람들을 다 모아서 만들어진 앨범이에요. <Hollywood Sky>는 원래 같이 피처링을 한 정치왕 님의 곡이었는데 제가 듣고 너무 좋아서 하고 싶다고 얘기해서 뺐어왔어요.(웃음) 그래서 같이 부르게 되었죠. 하다가 브릿지 파트는 제가 수정을 하면서 작곡으로도 참여가 되어 있는 노래예요.


<Keep On Dreaming> 같은 경우는 모든 걸 한 번에 라이브로 녹음을 했던 기억이 나요. 악기들은 전체가 한 번에 라이브로 녹음하고 보컬만 다른 악기 소리가 섞여 녹음되면 안 된다고 해서 그 뒤에 따로 녹음을 했어요. 세션 분들이 정말 빵빵하셨어요. 드럼은 김대형 님이라는 지금 유명하신 분이랑 피아노는 배우 강성연님의 남편이신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김가온) 분이 있으신데 그분이 참여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다 MI 사람들이 지훈 오빠를 통해서 모여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었어요.


제가 지금도 R&B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때는 한창 딥하게 빠져있어서 발음이 ‘길을 나선다’고 해야 하는데 끈적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너무 이상하게 발음을 해서 지훈 오빠가 애를 먹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들어보면 상큼하게 ‘길을 나선다’가 아니라 뭔가 ‘기를 놔아선다~’ 같은 식으로 발음해서.(웃음) 스타벅스도 ‘스타북스’라고 해서 그런 요소를 빼 달라고 했던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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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온 아티스트

경다솜의 음악 Part 2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녀만의 느낌적인 느낌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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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싱팀 Vlinds의 작곡가이자 인디레이블 캔들인유어스(Candle In Yours)의 공동대표.


자아가 생길 때부터 밴드음악에 빠져 일렉기타를 치며 음악을 시작한 인디덕후.


사실 음악보다 글 쓰는 일을 더 좋아해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중이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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