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사는 남의 집 - "뉴필로소퍼 7호" [도서]

글 입력 2019.08.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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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이란 말은 어딘가 까마득하다, 집이라고 하면 그나마 가까울지라도 역시나 멀다. 살아야 하는 곳, 내가 살고 싶은 곳에 대한 고민이라면 그나마 와닿는다. 까마득한 글도 있었고 와닿는 이야기도 있었다.

 <철학자의 개집>에서 이야기하는 소유와 자의식, <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에서 이야기하는 집이 내포한 정서적 유대감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사생활은 존엄성의 문제이다>에서 언급하는 가정에서의 사생활에 대해 읽으며 ‘나도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하는 반가운 공감을, 그리고 <물건의 저주>를 읽으며 물건을 향한 집착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져볼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물질을 바라보는 비물질적이고 불가능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물건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물건을 전부 내다버릴 것이 아니라 물건을 단순히 물건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


- <물건의 저주>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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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은 가볍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글을 읽으며 자연히 떠올랐던 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조금 적어보고자 한다. 20살이 되어 가족들과 살던 집을 떠나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대와 옷장, 책상을 제외하면 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을 수 조차 없는 공간은 그마저도 내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4번의 이사를 경험하였고 곧 5번째 이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사를 반복할수록 짐을 싸는 일은 훨씬 더 쉬운 일이 되어간다.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가는 것이다. 낮은 책장 위에 늘어놓은 인형이나, 어린 시절의 사진, 가족 앨범, 일년에 한 두 번 생각 나면 다시 펴보는 소설책,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이 실린 잡지나 가수의 시디는 꼭 필요한 물건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고된 이사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어차피 그 공간은 내 집이 아니라 내가 일 년, 혹은 반년 머물다 갈 숙소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전히 나의 추억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가족들과 살던 집을 집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집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이웃은 물론 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물리적 공간은 그와 같은 정서적 유대감 보다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 <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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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해선 일상적으로 고민하지만 사는 곳에 대해서는 그 고민이 덜했던 것 같다. 아마도, 어쩌면 내가 아직 그런 고민을 하기에는 어린 탓일지도 모른다. 내 집 마련, 부동산, 같은 단어들은 여전히 너무 크게만 보인다.

그러나 내가 잠잘 곳을 고르고, 빌린 집에서 지내는 일은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쉬이 오가는 대화 주제다. 일 년짜리, 이 년짜리 집들에는 추억이나 정서적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는 분명 중요한 문제다.

<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 공간은 내가 얼마나 괜찮은 공간을 잘 고르는지에 대한 안목이나, 밤늦게 친구 한명을 더 재워줄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능력의 문제다. (물론 내 또래의 능력의 대부분은 부모의 능력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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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원하는 가격에 괜찮은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판 일, 원하는 가격에 맞추기 위해 포기한 사안들, 무례한 집주인의 횡포 등의 이야기는 잊을만 하면 화젯거리로 떠오른다. 누구는 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도어락을 포기하고, 누구는 사전에 말도 없이 대뜸 집주인이 집에 방문하는가 하면 누구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샤워 시설에 대한 불쾌함을 토로한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곳에는 사생활이 없다.

네 집도 아니고, 그저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 준 것 뿐이라고 한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주거가 사람의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세 요소 중에 하나라면, 그 안에 분명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권리가 포함된 것이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권리를 잃어가는데, 권리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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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살의 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살게 되었을 때의 감상을 꺼내 본다.

침대 위와 의자 위를 제외하고는 도대체 머물수 있는 곳이 없던 그 10개의 방은 세 개의 화장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중에 우린 그곳을 닭장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냉장고를 열어 보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낯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색함은 우리 모두를 방안에 가두어 두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사를 반복하며 상황은 (어쩌면) 점점 나아졌지만, 말했듯이 그곳은 내가 사는 곳이지만 내 집은 아니었다. 하루 일과를 밖에서 보내고, 잠을 자기 위해 들리는 정거장같은 곳일 뿐이다.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의, 내 집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런 상상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나은 내 집을 상상한다면 내가 사는 곳이 언제쯤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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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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