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뻔한 판타지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 드라마 "호텔 델루나"

현실에선 보기 쉽지 않은 조금은, 따뜻한 순간들이야말로
글 입력 2019.08.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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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게 드라마를 보는지 안 보는지 물어보면 대략 반반으로 나뉘는 것 같다. 그중에서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로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는 뻔하고 유치한 킬링타임용이 아니냐고. 나 역시도 평소에 가벼운 킬링타임용 콘텐츠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드라마를 볼 때 수사 물이나 범죄 물, 혹은 인물 간의 감정선을 잘 담아낸 드라마 등을 선호하는 편이다.



판타지 설정, 뻔한지 아닌지는


그런데 이번에 선택한 드라마는 바로 아이유, 여진구가 등장하는 tvN 판타지 드라마<호텔 델루나>다.

호텔 델루나는 오랜 시간 속에 묶여 이승을 떠나는 영혼들을 위한 호텔의 사장으로, 죽지 못한 채 벌을 받는 여자 주인공 장만월(아이유)과 귀신을 보게 된 호텔 지배인 구찬성(여진구)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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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나 여진구에 상당한 팬심이 있어 선택했다기보단, 어딘가 사연 많아 보이는 젊은 여자 호텔 사장의 이야기를 뻔하게만 표현하진 않았을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궁금해졌다.

왜 계속 챙겨보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은 왜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대충 짐작이 되는 판타지 설정이 왜 인기가 있는 걸까. 귀신이나 신이 나오는 드라마라면 이미 선사례로 tvN 드라마<도깨비>가 전폭적인 인기를 누렸기에 이미 학습된 시청자들은 뻔해질 게 분명했다.

또, 최근엔 오랜 시간 죽지 않고 살아 벌을 받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콘텐츠들이 종종 보인다.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신석기녀> 속 주인공 숙희도 신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죽어도 몸이 재생하는 슈퍼유전자를 가지게 되어, 기나긴 생을 끝낼 기회만을 찾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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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신석기녀>


그런데 너무나도 흔해진 판타지 설정이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정체불명의 힘을 쓰는 모습이나, 섬뜩하게 그려낸 귀신들의 모습, 혹은 겉으로 보기엔 작고 볼품없는 건물이 안으로 들어가면 몇십 층을 넘는 어마어마한 호텔이었다는 물리적 판타지 요소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런 판타지적 요소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피식하고 넘기거나, CG나 VFX 팀이 애를 좀 썼을 거라 생각하고 만다. 진짜로 판타지인 건 영혼들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환생이라는 다음 단계를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즉 현실 속에선 찾기 어려운 착한 인간이 드라마를 이끄는 메인요소라는 점일 것이다.



현실에선 보기 어려운 사람


호텔 델루나 5화 에피소드에선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현생을 떠나기에 사혼식을 치르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혼식은 여자의 신체 일부인 손톱과 머리카락이 담긴 행낭 주머니를 처음으로 주운 인간 남자가 여자의 남편이 되어 식이 이뤄진다.

운이 나빠 졸지에 영혼의 남편이 된, 산 남자는 무슨 죄인가 싶어 참으로 이기적인 여자가 아닌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여자의 진짜 남편의 부모가, 자기 아들만큼은 온전히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보여준다. 각자의 입장 아래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이 안타깝고 씁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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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5화 에피소드 중


그런 마음들을 온전히 헤아리고 결국 모두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호텔 지배인 구찬성(여진구)은 신의 선택을 받을 만큼 따뜻하고 진지하다. 그 이외에도 사연 많은 영혼을 도우며 나름의 뿌듯함마저 얻는 그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은 정말이지 판타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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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보내는 그들


그런데 사실 그의 판타지스러움과 대비 돼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사장 장만월(아이유)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 그리고 그 이외에도 각자의 사연이 있는 영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극 중 장만월(아이유)은 오랜 세월 속 숱한 경험 때문인지 구찬성(여진구)이 델루나의 지배인으로서 받게 되는 손님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조금 냉소적인 태도로, 마치 처음부터 손님들의 사연과 원인을 알고 있었다는 듯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한다. 이런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억지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 모습은 마치 매체 속 사연 가득한 인물들의 뻔한 클리셰를 많이 봐온 시청자들의 태도와도 겹쳐 보인다. 그리고 가끔은 철옹성 같고 인성이 개차반 같은 1300년을 산 장만월(아이유)이, 다만 조금의 씁쓸함과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틈새로 느끼는 모습은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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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월(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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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살아온 장만월(아이유)


물론 남은 회차에 그녀의 설정을 조금 더 풀어나가야 할 여지가 보이지만, 어쨌든 착하기 그지없는 반듯한 청년 구찬성(여진구)이나 천 년을 넘게 살며 모든 것에 담담해진 장만월(아이유)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판타지는 아닐까. 그래서 이젠 찾아보기 쉽지 않은 그 따뜻한 인간성을 조금은 상반되는 두 캐릭터를 통해 조금은 쿨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려는 방식이, 결국 계속 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 요인은 아닐까.

그 외에 마고신(이 세상의 자연물 또는 지형을 창조한 거인여신)이나 홍실(인연을 묶어주는 빨간 실) 등 극 중간에 나오는 한국의 설화적 요소가 꽤 반갑기도 했다. 참고로 과거 민간설화가 부흥하던 시절은 그 어떤 때보다도 현실이 팍팍해, 미련하게 묻어둔 마음들을 해소하는 일이 절실했던 때였다고 한다.

그러니, 드라마 속 가득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조금은 세련되지 못한 비주얼적 연출이 눈에 들어와도 계속 보게 되는 건 현실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일말의 희망적이고 따뜻한 순간들이 조금은 그립고, 기대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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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이후로 흐름이 바뀌는 <호텔 델루나>


물론 판타지인 이유 이외에도 <호텔 델루나>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자칫 신파극처럼 과잉 감성으로 흐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두 주인공의 티격태격함과 웃긴 요소로 조금은 가볍게 완화한 점이나, 장만월(아이유)의 컨셉에 맞는 개화기 레트로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기존의 뻔한 드라마의 성 역할에 반전을 준 것도 흥미롭다.

또, 두 주연 배우의 딕션이 참 좋다. 여진구는 아역 때부터 다져온 오랜 내공으로 인해 그렇고, 아이유 역시 짧지 않은 가수 활동으로 가사 전달력을 길러와서인지 대사에 힘이 있어, 다소 오글거린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극의 설정이나 캐릭터의 성격을, 가볍지 않고 진정성 있게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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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1화 에피소드 중



그러니까


현실성이 짙어 진정으로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웰메이드 작품들도 좋지만, 가끔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가 있는 드라마를 보며 환상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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