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완의 자아들에게 - "수수께끼 변주곡"

별의 삶, 삶의 포도주, 아홉 개의 자아들로부터
글 입력 2019.08.08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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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끗 보곤 이내 까먹기도 하는 제목들 속에서 오랜만에 자기주장이 강한 제목을 만났다. <수수께끼 변주곡>. 이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이보다 더 잘 요약하고, 총합하는 제목은 없을 거라 감히 생각했다. 그만큼 뒤표지를 덮은 뒤 다시 보게 된 제목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자아에 대해, 짙고도 깊게 생각하게끔 만들지 않나 싶다. 한 번만 읽었을 땐 어렵고 복잡하다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 여러 번 읽었을 때 농축된 단물이 뽑혀 나왔다. 그 단물은 형용할 수는 없지만 어떤 환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이상하도록 책을 펼친 자리엔 햇빛이 내려오고 산지우스티니아노 섬으로, 센트럴 파크로 이동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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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다섯 가지 색 사랑 변주곡”이라는 문구를 보고, 다섯 개로 나눠진 단편이라 단정했다. 그러나 읽어나가며 이상함을 느꼈고 곧 가장 처음 나오는 “첫사랑”을 포함한 나머지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광장”이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 주인공인 폴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었다. 독자는 성에 눈을 떴다고 인식하기 전의 소년 폴부터 열렬한 사랑을 속삭이는 어른이 된 폴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이 서술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폴의 사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수께끼다. 독자들이 다섯 개의 떨어진 단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폴이 매 장마다 다른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사랑”에서는 목수 난니를 향한 무른 복숭아처럼 움켜쥐면 뭉개지고 과즙을 터뜨려버릴 것 같은 사랑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너무 좋아 사랑을 터뜨려 폭발해버리고 싶고, 울어버리고 싶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경함과 수치심을 스스로 감싸기 부족했던 어린 날. 훗날 생각해보았을 때 마음에 많은 파도가 쳤던 날, 폴의 삶이 시작되었던 때였다.


“봄날의 열병”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친구 모드와 달리 만프레드에게도 끌리는 사랑을 표현한다. 만프레드를 향한 감정을 인정하고 점점 어깨부터 젖어 들어가는 초입이다. 그리고 이내 “만프레드”에서 그를 향한 욕구와 욕망이 폭발한다. 그는 하루 종일 그를 생각하고 상상한다. 마음속으로 매일같이 그를 향해 사랑을 속삭인다. 한걸음 물러나고 한 걸음 다가서는 아찔한 줄다리기 끝에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만프레드”에선 나오지 않는다.


다음 장인 “별의 사랑”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폴은 대학교 때부터 4년마다 긴 헤어짐과 짧은 만남을 반복하는 클로이를 다시 만난다. 그들은 끝내 주말에 모든 걸 두고 서로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 장 “애빙던광장”에서는 젊은 자유기고가인 하이디와 마치 단꿈 같은 사랑에 빠졌다 이내 아내 클레어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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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정답인 양 잡고 싶었던 건, ‘과연 폴이 누구를 사랑한 걸까.’였다. 난니였을까, 모드였을까, 만프레드였을까, 클로이였을까, 화학과 신입생이었을까, 노교수였을까, 하이디였을까. 폴의 사랑은 마치 풍랑을 겪듯 갸우뚱갸우뚱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같다. 폴이 매 장마다, 매 순간마다 상대에게 열렬히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을 넘나들며 뜨거운 암시와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건 만프레드처럼 2년에 걸쳐 결실을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애빙던광장”에서의 하이디처럼 용기가 아닌 암시와 신호로 사랑을 놓치기도 한다. 그럼 그건 폴에게 사랑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다 그런 논쟁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과연 폴이 누구를 사랑한 걸까.’로, 그의 사랑이 어떻게 변해 어디에 도착했다고만 이 소설을 초점 맞추기엔 한 단면이 아닌 생각보다 넓고 짙은 소설이었다. 폴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하고 사랑을 계속한다. 그걸 보며 어쩌면 폴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끊임없이 변주하면서.


변주란 무엇일까.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로 변형하는 기법이 아니었나. 그러므로 달라지지만 또 달라지는 것은 없는, 그 첫 형태는 하나인 게 변주일 것이다. 난 변하는 것 중 중심이 되는 건 욕구와 욕망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사랑의 형태로 바뀌는 건 결국 그에게 가장 알맞은 형태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과 자체를 따라 자기 몫을 살아가는 것일 거라고. 변주곡에 어떤 정답은 없기에.



그것들은 한 여정을 속하고 난 다른 여정을 얘기하는 거야. 우리가 4년마다 발을 헛디뎌 들어갔다가 나오는 인생. 주변이 온통 어두울 때 너와 내가 멀리서 엿보는 흐릿한 불이 켜진 삶.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그림자보다도 우리에게 가까운 삶. 별의 삶. 내 삶과 함께인 너의 삶.


누군가 저녁 테이블에서 한 말인데 모든 사람에게는 아홉 가지 버전의 삶이 주어진대. 그중에 진탕 마시는 삶도 있고, 살짝 맛만 보는 삶도 있고, 또 입도 대지 않는 삶도 있대.


-


어떤 삶을 살든 손댈 수 없고 더더욱 알지도 못하는 삶이 최소한 여덟 개가 있다. 진정한 삶도, 거짓된 삶도 없고, 운 좋게 맡을 리 없는 배역의 예행연습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 p. 273, 별의 사랑 中



그래서 폴은 계속 변주할 것이다. 아직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있기 때문에. 삶을 바꿔주는 행복을 경험할 ‘삶의 포도주’를 마셔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남편이자 자식 있는 아버지이고 존경받는 학자, 작가, 세계를 여행하는 부자인 영국인 노교수에게 자신의 것이 아닌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그늘을 봤듯. 그저 깨지거나 옮겨져 계속 다른 통과 짝지어지는 소금통과 후추통처럼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살고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삶의 포도주’ 시간이 언제 오는지, 이미 지나간 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찾을 수밖에는 없는 자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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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사랑으로 작가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온전히 자기 몫이었던 것을 갖지 못한 채 주어진 삶을 다 살아버리지 않기를. 망설임으로, 후회로 자신의 성에 상처 입지 않기를. 우리를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잣대와 자신을 향한 잣대에 얼마나 가혹한 인내를 하며 살아가는 걸까. 그래서 또 얼마나 성에 상처 입고 있을까. "고요한 밤, 아홉 개의 흔들리는 가로등이 마치 불꽃 같은 우리의 자아들 같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머리에 불을 밝힌 아홉 개의 볼링핀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태어나지도 않고 살지도 않은 아홉 개 미완의 자아와 다르지 않다는 말.


우리는 미완의 자아들. 그래서 사랑과 삶과, 우리의 성은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예측되지 않고 돌아왔다 튀어 나가는 걸 반복하고. 삶의 포도주는 여전히 마시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대로 나 또한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 흔들리는 자아 하나하나에 뮤즈의 이름을 부여해주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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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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