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안정함,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안드레 애치먼의 다섯가지 사랑 이야기
글 입력 2019.08.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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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그 뜻과 느낌이 다양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하루는 너무 뻔하다며 시시하게 여겨지는 게 사랑이지만, 또 다른 하루는 삶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대면하게 하는 극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함께했던 것 중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이야기의 소재로써 선택된 것은 ‘사랑’이다. 그만큼 사랑은 우리를 타오르게 하기도, 차갑게 식혀버리기도 하면서 늘 우리와 함께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에 함께했던 ‘사랑’이지만, 지금까지 모두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은 그만큼 사랑은 불안정하고 다채롭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책인 <수수께끼 변주곡>은 사랑의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그해, 여름 손님>이 대표 작품인 작가 안드레 애치먼은 신작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복잡한 사랑을 다각도에서 담아낸다.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주인공 폴(파울로)이 했던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서질 듯 불안정했던 첫사랑, 사랑과 늘 함께하는 권태라는 감정,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 등 폴의 인생에 찾아왔던 5가지의 사랑의 면모를 담고 있다. <그해, 여름 손님>에서도 밀착적인 묘사와 표현으로 사랑을 그려냈던 안드레 애치먼은 이번 작품에서도 뛰어난 감정 묘사로 알 수 없는 사랑의 세계를 드러낸다.



첫사랑


첫 번째 이야기는 파올로의 어린 시절 첫사랑을 그린다. 그곳에서 만난 난니를 짝사랑한 파올로는 어떻게든 그와 함께 있는 우연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어린 소년이다. 남부 이탈리아라는 배경, 소년이 사랑하는 어른 남성. <수수께끼 변주곡>의 첫 번째 이야기는 <그해, 여름 손님>과 가장 그 분위기가 닮아있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자신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음을 떠올리는 파올로의 생각은 복선이 된다. 후에 다시 섬을 찾았을 때, 아버지와 난니가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의 어리고 서툴렀던 사랑은 어른인 난니에게는 꽤나 노골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니는 파올로에게 선을 그었고, 또 그가 사랑한 사람이 파올로의 아버지였기에 더욱 거리를 둔다.

한편,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난니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는 <그해, 여름 손님>에서의 마르시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첫 번째 책에 이어서 두 번째 책에서도 두 남성의 사랑 뒤에서 상처받는 존재이자 그 상처조차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그저 침묵하는 존재이자 평면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는 여성 캐릭터들이 아쉽기도 했다.

내용상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년 파올로의 불안정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첫사랑의 감정은 제대로 전달됐다. 아주 얇고 투명한 유리, 그래서 손이 닿으면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운 소년의 사랑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뻔히 보이는 것이면서도 그 소년에게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할 비밀이다. 떠올려보면 모든 감정에 서툰 편에 속하는 나 또한 혼자서는 꼭 쥐고 있는 비밀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던 적이 많아서 그런 파올로의 상황이 잘 이해됐던 것 같기도 하다.



봄날의 열병



이런 일이 있고도 나는 그녀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아니,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녀가 나와 살 수 있을까? 진실은 이렇다. 나는 살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봄날의 열병’은 읽는 내내 긴가민가하다. 처음에는 주인공 폴이 자신의 연인 모드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읽어 내려갈수록 그가 진심으로 그녀와 다른 이의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을 지키고 싶은 이의 안타까운 눈가림으로 여기기엔 그의 인내심이 꼭 변명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봄날의 열병은 주인공 폴이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림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연인을 떠남으로써 얻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모드가 아니라 만프레드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바람을 피우는 연인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정을 그렸다면 지긋지긋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떠나서 일종의 보호막으로써 연인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바라보는 폴의 심정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런 식으로 자신의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을 가리려는 폴의 시선이 비겁했고 불쾌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것들은 늘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지지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또한 사랑의 한 면모이기도 하다.


굳이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택시에 탄 지금 이 순간 나는 알고 있다. 우리 두 사람 중에서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간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만프레드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 내용보다도 표현에 집중하고 싶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채롭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내게 안드레 아치만의 표현은 조금 무겁다. 그의 대표작인 ‘그해 여름’을 책으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한 건 영화화된 ‘Call me by your name’이었다.

‘Call me by your name’은 영화 속의 색채, 여름이라는 계절, 이탈리아 남부, 그리고 소년의 사랑, 이 모든 키워드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져서 인상 깊었고, 결국 내 취향의 영화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청량감과 오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했던 영화와는 달리 좀 더 육체적이고 끈덕한, 혹은 날 것의 표현이 많았던 책이 내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수수께끼 변주곡>의 여러 편들 중에서 ‘만프레드’는 안드레 아치만의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입 밖으로 드러내는 사랑은 어느 정도 정제된 상태인 것과 달리 그 속에 들어 있는 마음과 상상은 좀 더 직설적이다. 좀 더 뜨거운 편에 있는 사랑의 속살을 그리고 있는 ‘만프레드’가 누군가에겐 본능적인 사랑으로 느껴져서 인상 깊을지도 모르겠다.



별의 사랑


사랑은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네 번째 이야기인 ‘별의 사랑’은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책 속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폴의 사랑이 모두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난니와 만프레드에 대해서는. 그러나 네 번째 이야기에서 폴은 만프레드를 사랑하는 동시에 클로이도 사랑한다.

우리는 대개 사랑에 대해 배타적으로 생각한다. 단 한사람만을 위한 사랑. 그것만이 진짜 사랑이라 여기고, 누군가의 사랑이 여럿을 향할 때 그것은 배신이자 죄악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늘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말들은 ‘질투’나 ‘복수’와 같은 잔인한 단어들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그로부터 나 또한 온전한 사랑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수께끼 변주곡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도중에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주제를 꺼내든다.

“우린 절대 끝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절대 끝나지 않아. 별의 사랑, 내 사랑, 별의 사랑. 살지는 않을지라도 절대로 죽지 않아. 세상을 떠날 때 내가 가져갈 유일한 것. 너도 그렇겠지.“

오직 한 사람과 공유하는 온전한 사랑, 혹은 그것의 동시다발적인 발생. 둘 중 무엇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또한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지는 않는다. 다만 울퉁불퉁한 사랑의 단면을 독자들에게 꺼내 놓을 뿐이다.



애빙던광장 (Abingdon Square)



당연히 나는 이 일을 쉽게 이겨 내고 무심해질 것이다. 후회에 대한 모든 접근을 차단하는 법을 곧 배울 것이다. 아픈 마음은 사랑처럼 미열처럼 테이블 건너편의 손을 만지고 싶은 갈망처럼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수수께끼 변주곡>의 마지막 이야기는 폴이 나이가 든 뒤, 조금은 그 색이 어두워진 사랑을 그린다. 첫사랑처럼 푸릇하거나 위태롭지도, 만프레드나 클로이와의 사랑처럼 불타오르지도 않는다. 그저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아픔 또한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까슬까슬한 단면들이 부딪혀 스파크를 만들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깎이고 깎인 폴의 감정은 뭉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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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수수께끼 변주곡>은 제목처럼 사랑의 다양한 변주를 그려내고 있다. 동시에 <그해, 여름 손님>의 이미지가 강했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사랑을 다루는 또 다른 변주를 엿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라고 여긴다면 다채로운 사랑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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