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의 탄생 : 에릭 요한슨 展 [전시]

상상력보다 더 중요한 것
글 입력 2019.08.04 06: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Erik Johansson ⓒJakob de Boer, 2014.jpg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의 전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표어이다. 내게 있어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비현실이나 창의력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데, 상상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 없는 것을 머릿속에 그리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식상하고 익숙한 것들을 일단 잊어 버려야 한다. 현실에서 잠시라도 발 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 같은 사람에겐 별로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가 창의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평소에 하는 상상이라고 해도 로또 당첨되는 상상, 날 열 받게 했던 사람에게 복수하는 상상 등 지극히 사적이고 폭이 좁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우연한 기회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이라는 것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창작이라는 일에 생각보다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창작은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들이 뿅 하고 떠올린 후보들 중에 괜찮은 것들이 선발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인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는 약간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다양한 시선으로 빚어지고 디테일을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면 얼마든지 구색을 갖출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건 상상과 창작을 동일시했던 내 입장에서만 새로운 깨달음일 수도 있는데, 차라리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원래 생각한대로 구현해 내는 일은 정말 어려웠던 것이다.


Full Moon Service.jpg
 
Imminent.jpg
 
The Light Keeper.jpg
 

이번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보고 가장 인상 깊었던 점도 작업 결과물보다 그 과정 자체였다. 에릭 요한슨은 뛰어난 포토샵 기술을 가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시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체 약 1년의 기간 중 그가 사진을 일반적인 작품과 비슷한 형태로 만드는 데는 4~5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소모하는 시간이 전체 프로세스의 약 80%라고 한다.

시간이 이처럼 오래 걸리는 이유는 작품을 잊어버린 후 객관적인 눈으로 보기 위해 한 달 이상의 간격으로 작업이 진행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릭 요한슨의 상상력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치밀함이 받쳐주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 년에 발표되는 작품이 평균 한 점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설치 작품을 만들 때도 생각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 힘들다고 한다.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디테일을 구상한 후에 작업을 시작해야 그나마 성공적으로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에릭 요한슨이 아이디어 구상에만 최대 12개월이 걸린다는 이유도 이와 같은 듯하다.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결과가 생각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사진 촬영 과정을 항상 철저하게 계획한다.


촬영을 지휘하는 에릭 요한슨.jpg
촬영을 지휘하는 에릭 요한슨
 

한편 자연의 상태 등이 예상과 달라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 적절한 순간이 올 때까지 밤낮이고 대기한다고 한다. 나도 사진을 즐겨 찍지만 취미로 하는 입장에서는 원래 찍고 싶었던 장면보다 순간의 느낌을 좇는 편인데,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어 작품을 만드는 입장이니 이런 집요함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 쓰인 ‘순간을 담는 것보다 아이디어를 캡쳐하는 것의 문제이다’ 라는 말이 그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머릿속에서 구상한 바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현시키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그를 지금과 같은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아닐까. 공상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의 상상력은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이었다. 그가 잉태한 모든 상상들이 태어날 앞으로가 기대된다.


양_700.jpg
 


아트인사이트 임예림 태그.jpg
 



[임예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33105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