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연극이 불편했다면, 다행입니다.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연극]

글 입력 2019.08.0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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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기괴했고, 불편했다. 연극이 아닌, 행위예술을 보고 온 기분이었다. 음악, 연기, 무용까지 모든 게 하나가 되어 분위기를 형성했다. 스토리보다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부조리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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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트랜드에 뒤처지는 여성들이 사라지는, ‘하이드비하인드’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트랜드를 따라가기 위해 뷰티에 관심을 두고, ‘새뷰티운동’을 벌인다. 혹여 예쁘지 않게 보일까 봐 겁내고 외모에 극심하게 집착을 한다.

다시. 트랜드에 뒤처지는 여성들이 사라지는, ‘하이드비한인드’ 사건이 발생했다.

왜 ‘예뻐지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야 할까? 포인트는 트랜드에 뒤처지는 것이 아닌, 여성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전부 그 사건을 뒤로 한 채 뷰티에만 관심을 둔다.

사건을 뒤로 한 채 예뻐질 생각만 한다는 것은, 우선 그 사건을 ‘수용’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하이드비하인드를 수용한 채, 그것을 해결할 생각을 안 하고 사회적 분위기로서 자신들이 맞출 생각을 한다. 공포의 대상 앞에서 맞서지 못하고 순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사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과 관심은 연극 내내 보이지 않는다. 왜, 누가, 어떻게 일으킨 사건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사실인지, 사건 자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극 중 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

우리 사회로 돌아와 보자. 여성들이 외모를 가꿔야 하는 이유. 이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 많은 사람이 의문을 던지려 하지만, 자발적으로 “왜?”를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저 “그래야 하니까” 따를 뿐이다.

하이드비하인드처럼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사회라는 괴물에 맞서는 일이 쉽지 않아서일까? 그저 순응하고, 수동적으로 따르려 한다.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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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연극 속 유명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이런 말을 한다. “오히려 잘된 일이죠. 어찌 됐든 뷰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거니까.” 연극 중 가장 불편했던 대사였다. “어찌 됐든” 잘된 일일 수는 없다.

실제로 주변 사람 중 위와 같은 마인드를 가진 친구들도 많이 있다. “좀 꾸미고 다녀라.” “다이어트는 자기관리지. 자기관리 소홀한 건 욕 먹을 만 해.” 그들은 코르셋을 더욱 조인다. 모르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더 숨이 막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힘이 빠질 때가 많다.

‘새뷰티운동’은 종교처럼 묘사되었다. 뷰티운동에 대한 간증, 전도 등 기괴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뷰티운동을 전개한다. 이는 예뻐짐으로써 구원을 받고자 하는 태도이다. 살아남는 법을 뷰티에서 찾은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이유를 뷰티에서 찾는다. 자신이 사랑받는 이유, 성공한 이유, 미움받는 이유, 버림받는 이유 등 전부 예뻐서 혹은 예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어찌 됐든”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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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나는 이 연극을 통해 부조리 앞에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연극 속 이야기처럼 수동적, 순응적, 수용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이 태도는 부조리를 인정하고 굳히는 역할을 한다. 부조리에 대한 인지, 반발, 그리고 근본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 코르셋에 대해 우리 역시 자꾸만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게 된다.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는 일부러 이런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근본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생략했다. 우리는 ‘해결’의 진정한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게 아니라, 현실


연극 내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기괴했지만, 누구도 욕할 수 없었다. 나의 모습, 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이드비하인드’ 사건이라는 설정이 무색하게 연극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조금 자극적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내용이었다.

보통 다른 연극들이 일상적이라면 우리는 보통 ‘공감’을 하고, “맞아, 맞아” 하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너무나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간혹 웃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웃음조차 불편했다. 내가 프로불편러여서일까? 나는 왜 이 연극이 내내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과장되고 자극적인 연출만 없었다면, 그냥 ‘오늘 하루’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이야기였다. 우리 현실이 이토록 기괴했던가? 환멸감이 들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듣던 노래가, 대회가, 전부 모순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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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너무나도 기본으로 깔려버린 ‘예뻐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더 어린아이들이 자극을 받고, 더 많은 사업들이 이익을 창출한다. 우리 여성들은 그 희생양이 되고 있다.

연극이 끝난 후, 이 연극은 그저 우리 사회에게 ‘하이드비하인드’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이 없었고, 그 사실이 가장 불편했던, 그런 연극이었다.




불편함을 직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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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연극은 안락한 빛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그리고 벗어난 후 자유로운 춤을 추며 끝이 났다.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아팠지만, 용기 있었다. 두렵지만 설렜고, 가슴 떨렸다. 그들이 그래서 정말 자유로워졌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수동적인 태도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피하고 적응하려 하는 게 아니라, 맞서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기에 시작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지만, 연극 속 주인공들처럼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연극을 보고 계속 불편했다. 내가 연극을 제대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된 불편함이었기 때문에, 내가 불편함을 느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피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문제라면 분명 마주해야 한다. 불편함은 분명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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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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