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 앞에 놓인 고대 그리스의 시간 - 그리스 보물전

고대 그리스인의 삶과 만나는 <그리스 보물전>
글 입력 2019.07.3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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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전시였다. 고대 그리스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조각을 감상하고 싶어서 전시관을 찾았다. 미술품 중에서 조각을 특히 좋아하는 친구가 이야기한 압도감과 감동 같은 것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가니 조각이 주는 그 자체의 미적 감동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작품이 드러내는 당시의 세계관과 우리가 가진 것을 비교해보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가늠해보았다.




1. 신과 인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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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클레피오스와 가족을 묘사한 봉헌용 부조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대부분의 조각에서 인간이 신보다 훨씬 작게 묘사되어 있다. 신장 차이에서 오는 시야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신을 올려다보고, 신은 내려다본다. 중앙 쪽에 뱀이 휘감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었다. 오른편으로 줄지어 서 있는 그의 아들, 딸들도 의술과 간호에 관련된 신들이었다. 신에게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권위가 주어져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신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인간이 밝혀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신화 안에서 설명되고 상상되었다. 물론 그것이 갖는 폐해도 있었겠지만 분명 신의 존재는 인간 존재의 초라함과 보잘것없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기능을 갖는다. 인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고 믿고, 세계 가까이에 신이 존재할 때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겸손과 미덕을 간직할 수 있다.



2. 고대 그리스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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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경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비극배우 가면을 보면 슬픔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비극은 잔인하고 참혹한 운명을 가진 인간이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문학적 서술이나 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사건 발생에 의해 전개되는 연극의 형식적 특성상 비극은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슬퍼할 틈 없이 또 다른 비극이 눈앞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디오니소스 축제는 어느 시기에 가서는 비극 경연 대회로 발전됐다. 3대 비극 시인으로 알려진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도 이 대회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사실주의적 연극이 정립된 19세기와 20세기에도 디오니소스적 연극의 원형성은 또다시 강조되곤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학과 언어 중심으로 발전해온 연극이 다시 음악과 공연 중심의 고대 그리스 비극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고, 앙토넹 아르토는 연극이 제의적 원시성을 되찾아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소환되는 이 연극성에 대한 질문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논쟁이다.

  

3. 죽음과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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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에는 루트로포로스라는 이름의 긴 항아리가 새겨져 있고, 그 안에는 공을 가지고 운동 중인 청년이 묘사되어 있다. 공을 무릎 위에 올려두는 자세는 흔하지 않았지만 이처럼 운동하는 모습으로 고인을 표현한 비석이 많았다고 한다.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 즐겨 하던 것들을 하리라고 생각했을 그리스인들의 내세관이 엿보인다.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이 지금보다는 밝고 일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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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기마다 여러 가지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안에는 연극 하는 사람들의 모습, 시를 낭독하는 시인의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은 그 사회의 문화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위 사진 속 도자기의 가운데 부분을 보면 죽음 앞에서 애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내세가 있다고 믿었던 그들에게 죽은 자를 기리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를 위한 기도를 올렸을까? 지금의 애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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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물이 아니라 보물전이라 이름 붙였을까? 유물은 ‘앞선 세대의 인류가 후세에 남긴 물건’, 보물은 ‘매우 드물고 귀하여 가치가 있어 보배로운 물건’이라는 뜻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본 미노스 문명의 토기를 보고는 곧바로 그 이유를 납득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들이 모두 생생한 무언가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 존재로서 증명하고 있다. 생생한 그때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대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보물임이 분명했다.


*

관람 중간부터 도슨트와 함께 전시를 감상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같은 시간 동안, 하나의 맥락을 공유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어린아이가 지도를 보며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누군가가 작게 웃음 짓는 것을 보면서 관람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공동체적 체험이 되어감을 느꼈다.


다만 정해진 시간 안에 딱 맞는 분량의 설명이 이루어져야 하다 보니 중간중간 질문할 기회는 따로 없었다. 그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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