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려놓음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

글 입력 2019.07.3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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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아팠다.


죽 외에는 소화를 못 시킬 정도로 많이 아팠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많이 아프다. 이유는 과식.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맘껏 나의 양을 초과해서 먹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먹을 때는 냠냠 좋았지만, 먹고 나니 남은 것은 위장병, 그리고 올랐다고 자축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히려 더 줄어든 것 같은 몸무게. 물론 무게에 집착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지만, 며칠 만에 다시 빠진 것을 보니, 인터넷에서 말하는 급진급빠(?)정말 맞는 것 같다.


뭐든 천천히 그리고 나에게 맞는 것을 알고 서서히 변화를 해야 하는데, 이놈의 빨리빨리. 뭐든 빨리 이룰려고 하니, 오히려 전보다 악화된 상황만이 나의 앞에 주어졌다. 나는 뭐든 이렇다. 뭐든 빨리 이루려고 한다. 남들보다 빨리. 그러다보니 완성도보다는 ‘완성’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아트인사이트도 그렇다. 사실 나의 마감일은 토요일이다. 하지만 늘 토요일 이전에 글을 낸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정해놓은 마감일보다 빨리 내고 싶어서. 그러다보니, 대표님에게 죄송할 정도로 실수를 한다.


비단 아트인사이트 일만이 아니다. 요가도 그렇고 뭘 하더라도 나는 늘 쫓기는 듯 다음 일만 생각했다. 요가를 하면서도 요가 끝나고 청소하고 뭐해야지. 밥을 먹으면서도 이거 하고 뭐해야지. 책 읽으면서도 뭘 해야지. 한 번도 온전히 하나의 일에 충실한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뭐든 빨리 빨리 해내지만, 그리고 하는 일은 많지만, 뭐든 실수가 있다. 요 며칠일이 아니다. 나의 평생의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이랬던 것 같다. 일에 치여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뭐든 그냥 완성에만 집중하여서 그놈의 ‘내’가 정해놓은 것보다 많이. 그리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을 스스로 어기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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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히 영화만을 보지도 못하는 나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휴식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인데, 휴식을 하면 그동안 내가 한 일을 그리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지 못하니까. 아파 쓰러져서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는 타당한(?) 일이 아니고서는(하지만 지금껏 이렇게 입원을 하는일은 없었다.) 쉬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든다. 한번 씩 너무 아파서 병원에서 쉬라고 하기 전까지는 쉬지 못한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는 이런 나의 성격이 그저 나쁘지 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남들에 비해서 나는 일을 많이 하고 성실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일을 하면서는 뭐든 해내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의 몸에게 그리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위해서 이런 삶이 계속 되어도 되나?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 근래 읽었던 ‘버려야 보인다.’라는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어느 정도까지의 성취, 성공은 자기가 짜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위로 올라가려면, 그 것을 버리라고. 나는 아직도 그 것을 버리지 못한다. 나의 틀. 그리고 나만의 규칙에서 어긋나는 하루는 너무나 힘들다.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20대 중반인 지금(물론 어리고 젊은 나이인 것은 안다) 몸으로 나타나는 변화들도 무섭다. 이제 예전처럼 하루 아프고 끝! 이 아니라, 정말 너무 아파서 되려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

 

그래서 이번에 아픈 동안에는 내 자취방에 있으면 사부작 사부작 일을 할 것이 뻔해서, 이모 네 집으로 한 주간 가있었다. 가는 동안 푹 쉬었냐고?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아무도 눈치 주는 이도 없지만,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스트레스가 되어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게 되고, 막판에는 친척의 노트북도 빌려 결론적으로 가서도 일을 했다.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나의 규칙에 의해 절대 못하는 침대에서 핸드폰 하기는 실컷 하고 왔다. 이 것도 나의 고질병인데, 내가 만든 규칙을 어기면 나 스스로 죄책감과 부담감이 있어서, 자취 방는 나 스스로 아파서 쓰러지기 이전에는, 절대로 잘 때 빼고는 침대에 올라가지 ‘못’한다. 정말 ‘못’한다. 아무도 감시하는 이도 없어도 나 스스로 죄책감이 들어서 침대에 올라가지 못한다. 

 

몸이 망가져서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지금에 와서야, 이제는 정말 중도를 알고, 나의 몸, 그리고 정신에 맞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쉴 때 잘 쉬더라. 모두 자신의 몸의 소리에 잘 맞춰서 살더라.


적당한 강박은 삶의 활력과 성취에 도움이 되지만, 나 같은 강박은 오히려 활력보다는 기계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일에 치여서 일을 못하고,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쳇바퀴같이 살아가는 삶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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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뿌리는 향수



누가 이 글을 본다면, 이 사람 뭐야. 이중인격자인가. 싶을 수도 있다. 다른 글에서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척 했으면서, 자기 몸에 잘 맞춰서 사는 척 했으면서. 하지만, 나는 뭐 이렇다. 아직도 넘어지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 머리로는 잘 알겠고, 나의 문제점을 잘 알면서, 오히려 가장 실천이 안 되는 것. ‘내려놓기’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살기. 남들한테는 그러라고 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예쁘고 싶고, 그리고 남들이 나를 똑똑하고, 부티 나는 사람으로 봐주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자기관리를 잘하고 성실한 사람. 내가 바라는 이미지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 같다. 요즘은 삶 자체가 혼란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과연 책읽기가 맞을까? 재즈가 맞을까? 향수? 내가 정말 향수랑 책을 좋아하나? 모두 외부의 기준인 것 같아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고, 나랑 더 친해지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아직도 나는 ‘최송희’는 알지만, 내가 만든 최송희는 알지만, 나는 모르겠다. 그냥 작은 소녀밖에 안 보인다. 사랑 받고 싶은 소녀.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 그 아이밖에 안 보인다. 어쩌면 그 아이는 뭔가를 좋아한 적도 없을지도. 그럴 시간이 없었을 수도.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픈 동안에. 어쩌면 아픔이라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라고 이렇게 해놓은 것인가 싶다. 오늘은 누워서 책을 보는 아주 파격적 행보를 취하고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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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노력해보고 하나씩 하나씩 나랑 친해져야지..싶다. 이것만큼은 빨리 빨리 안 해도 된다. 괴테도 자신을 알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했는데, 그의 한참 못 미치는 내가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 합리화라고 해도 좋다. 합리화 한 번 못해본 나를 위한 작은 위로라고 할까?

 

어릴 때부터 아파서, 열이 너무 나서 아무 것도 못할 상태가 되어서야 숙제를 안했던 작은 소녀에게 이런 합리화 한 번쯤은 약 아닐까?



[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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