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 그리스 보물전 [전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글 입력 2019.07.30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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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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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보물전-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는 6,000년의 그리스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기원전 6,000년 경의 선사시대 그리스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인 기원전 323년까지의 광대한 역사, 아름답고 화려한 그리스 문화와 예술, 영광스러운 그리스인들의 업적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신화와 역사가 숨쉬는 영원한 그리스의 세계, 서양문명의 뿌리가 된 그리스 문명을 보여주는 360점의 보물들은 그리스 전국의 박물관 24곳에서 모아져 한국에서는 최초로 공개된다.





참신하고 새로운 눈



그리스 로마신화, 그리스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학기에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다. 주로 서양미술사에 대해 배우며, 미술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탐구가 대부분이었다. 유명한 책,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앞부분에서 그는 매우 흥미로운 말을 한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조각상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조각들이 어떻게 되어 있어야 제대로 된 것인 것 말해줄 수 있는 규칙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미술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미술 작품에 모든 것을 바치고 그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던 미술가는 우리에게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요구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과거의 미술품을 보고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 보자마자 소름이 돋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게 그 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곰브리치 말대로 예술에 규칙은 없기 때문에 이 미술품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미술품을 바라볼 때만큼은 창작자의 입장이 되어, 그러니까 나의 눈이 아닌 참신하고 새로운 눈으로 그 작품을 바라봄으로써 더 깊은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저마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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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주한 그리스 보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 보물들은 어우러져 나에게 재미있는 상상을 가져다주었다. ‘그리스 박물관 24곳에서 온 360점의 보물’이라는 말처럼 방대한 양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내 눈앞에 정말 역사 속의 보물들이 있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의미 있고 귀중한 보물들이 많았다. 보물을 마주하였을 때 그가 겪었던 시간과 나의 시간 사이의 간격에 소름까지 돋았다. 그중 흥미롭게 본 보물 몇 점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보려 한다.


아 그전에, 작은 팁이라면 팁일 수 있는 것들.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용에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 배가 고파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 중간에 엉덩이를 땅에 붙일 공간조차 없으므로 든든한 체력을 가지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덧붙여, 보물이라는 말에 혹하여 무작정 전시를 보러 가는 것보다, 서양의 역사와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 지식을 어떻게 쌓아야 좋을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유튜브에 그리스 문명과 미술사에 대한 동영상이 정말 많이 있다. 본인이 흥미롭게 느끼는 동영상 몇 편을 본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은 서양미술사를 추천한다. 두께부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펼쳐보면 생각보다 쉽게, 술술 읽힌다.

 


문명의 서막, 에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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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첫 부분이 제일 재밌다고, 유럽 최초의 문명인 ‘에게해 문명’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에게해 문명은 말 그대로 지중해 동부 에게해 주변 지역에서 번영한 문명이다. 이는 또다시 전기 문명과 후기 문명으로 나뉜다. 전기에는 그 유명한 크레타문명, 또는 미노스 문명이라 불리는 이 있다. 이 문명은 후에 후기 문명인 미케네 문명으로 인해 멸망한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으로, 크레타 문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섬을 통치했던 왕의 이름이 바로 미노스이다. 미노스라고 하니 연상되는 이름 하나쯤 있을 것이다. 바로 미노타우로스. 인간의 몸을 하고 얼굴과 꼬리는 황소의 모습을 한 괴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이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미노스 왕과 관련이 있다.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쳐야 할 아름다운 소를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다. 이에 대한 벌로 신들은 미노스 왕의 아내가 소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저주를 내린다. 결국 미노스왕의 아내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된다. 이 괴물을 증오했던 미노스 왕은 괴물을 가두기 위해 미로를 만든다. 그리고 이 괴물을 먹일 음식으로, 젊은 여성과 남성을 재물로 바친다. 후에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물리친다.


개인적인 사족을 조금 덧붙이자면, 이 신화를 읽을 때마다 미노타우로스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태어나자마자 미궁 속에 갇히고 결국 죽임을 당하니까. 성격이 난폭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싸움을 묘사한 크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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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ter with Theseus and Minotaur, Archaeological Museum of Argos



어찌 됐건 미노스 왕 때 크레타 문명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미노스 왕은 바다의 패자였으며, 그리스 전역에 힘이 미치던 막강한 존재였다. 크레타 섬에서 발굴된 청동기 문명은 이 신화적 인물의 이름을 따서 ‘미노스 문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적회식 크라테르에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한쪽 옆에서는 아리아드네가 이를 바라보고 있다. 미노스는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게 한 벌로서 아테네에 각각 7명의 청년과 처녀들을 해마다 바치도록 했으며, 이들을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삼았다고 한다.

 



황소머리 장식의 헌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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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s Head Libation Vessel, Zakros Archaeological Museum of Herakleion



그리스 신화에는 황소가 자주 등장한다. 앞의 미노스 왕과 미노타우로스 이야기에서도 황소가 등장하는 것처럼. 미노스 왕이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는가? 미노스 왕은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의 자식이다. 제우스는 페니키아의 공주인 에우로페에게 첫눈에 반하였고, 하얀 황소로 변해 에우로페에게 다가간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등에 태워 크레타 섬으로 데려간다. ‘유럽’의 어원 또한 이 ‘에우로페’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미노스 문화는 청동 조각과 금속 세공업이 활발했다. 장인들의 세공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 이 전형적인 황소 머리 장식의 헌주잔 역시 정교한 기술을 잘 보여준다. 머리 꼭대기에는 액체를 부어 넣는 사입구가 있고, 코끝 부분에는 사출구가 뚫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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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adic figurine, Naxos Archaeological Museum of Naxos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이 미술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흥미로운 것은 그 설명을 쓴 학자들의 생각이다. 앞의 ‘황소머리 장식의 술잔’은 누군가 그것을 술잔이라고 명명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술잔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술잔이라는 확실한,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을까?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증거는 그것이 술잔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황소의 머리 부분과 코 부분이 뚫려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액체를 담는 용도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것이 요강일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닐까? 엉뚱한 상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관람하면 마치 내가 그 시대의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정말 그 시대의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관람을 해도 재밌다. 내 눈앞에 보이는 아가멤논의 가면이, 술잔이 그냥 지금 내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들이라고 상상해보는 거다. 그러면 더 자세히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지금 쓰는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기능부터 디자인까지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가. 과거의 예술가들도 창작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이 모두 사라진 세대에 그것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나는 유럽 문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게해 문명에 대한 설명으로 그쳤으나, 후에 미케네 문명, 호메로스, 그리스 신화와 역사, 아케익 시대의 귀족, 쿠로스와 코레, 아테네,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까지. 전시장에서 본인만의 이야기를 더해 그들을 재미있게 상상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전시 관람에 재미를 더해준다면 더욱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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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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