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을 즐겁게 의심하세요 - 에릭 요한슨 전시회 [전시]

Impossible is Possible!
글 입력 2019.07.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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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_700.jpg


Impossible is Possible.



단순한 듯 보이는 이 문장만큼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잘 설명하는 문구도 없을 것이다. 이 전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마법사의 전시회가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과 가능을 나누었던 경계를 없애버리는 예술가의 전시회였다. 에릭 요한슨의 세계에는 불가능이 없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불가능을 불가능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하여.

포스터에 실려 있던 사진 때문에 전시에 가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평소 달, 밤, 하늘,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초현실적인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동안 ‘사진’과 ‘초현실’이 맞물릴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사진전 포스터에 실린 ‘Full Moon Service’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사진이라고? 그림이 아니라?


Full Moon Service.jpg
 

전시에서 만난 작품들은 대부분이 초현실적이었고 독특한 발랄함을 가지고 있었다. 포스터에 실려 있던 ‘Full Moon Service’나 ‘The Light Keeper’ 같은 사진에서는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자연현상이나 빛, 어둠 등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어쩌면 세상 끝에는 매일 밤 달의 모양을 바꾸어주는 요정이 있지 않을까, 하며 혼자 상상의 세계에 빠졌던 기억도 났다.


The Light Keeper.jpg
 

이처럼 에릭 요한슨의 사진에서는 통통 튀는 동심도 느낄 수 있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게 정말 지구가 돌아서 그런 걸까? 혹시 낮과 밤을 바꾸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매일 커다란 시계를 들여다보며 밤을 불러 올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궁금증을 잊은 지 정말 오래 된 것 같다. 불가능이랄 게 없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를 지나치게 뚜렷하게 구분 짓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는 날카로운 풍자도 깃들어있다. 그의 작품 ‘Imminent’에는 한 마을을 통째로 뭉개버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공이 산봉우리마다 위태롭게 서 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몇 개에 의존한 채 공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모습이 흡사 우리와 같다.

이 작품의 초기 제목은 ‘다가오는 위협’이었는데, 그 위협의 정체는 각자의 해석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일수도, 점점 각박해져가는 생활일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거대한 문제를 망각하고 작디작은 문제에 매몰된다는 점이다.


Imminent.jpg
 

‘Vasen’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각을 완전히 비트는 작품이다. 떨어진 꽃병, 그리고 그 꽃병을 잡고 있던 손. 이 중에서 깨진 것은 꽃병이 아니라 손이다. 꽃병 하나를 지키려다 양 손이 깨져버린 순간,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는 꽤 자주 꽃병을 지키려다 손을 깨뜨린다. 이렇듯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서는 일상의 전도를 통한 날카로운 현실 풍자 정신이 돋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Leap of Faith’였는데, 작품을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서서 풍선 하나에 의지한 채 허공으로 발을 뻗는 신사. 무게 중심을 조금만 앞으로 쏟는다면 끝도 없는 아래로 추락할 것이 분명한 순간이다. 이 위험천만한 순간에 신사 옆에는 알록달록한 풍선이 매달려 있고, 하늘에서는 빛이 쏟아진다. 천국이라기에는 절벽 끄트머리를 지키고 있는 철조망이 너무 현실적이다.


Leap of Faith.jpg
 

이 작품은 인간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날아보세요! 모든 행동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만약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 풍선은 1인당 1개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위험을 조금이나마 감소시켜주는 풍선마저도 1인당 1개, 이를 놓치거나 터뜨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추락사할 게 뻔하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과연 이 그림 속 구름 밑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 날카로운 바위가 널려 있는 산맥만 존재할까. 그렇다면 조금 시시하다. Impossible is Possible, 불가능은 가능하기에.

도전을 멈추지 말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려움, 불안, 이 모든 부정적 감정을 감내하고 오로지 자신의 목표 하나만을 마음에 품어야 가능한 게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도전을 포기하고 현실과 손을 잡는다. 나 또한 도전보다는 현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격동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에릭 요한슨의 말처럼 ‘모든 행동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 짓고 나를 한계에 가두는 순간 모든 후회와 미련 역시 나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에릭 요한슨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그 기술을 예술에 접목시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지만, 시작이 쉬웠을 리 없다. 밑에 뭐가 있을 지도 모르는 절벽 끝에서 멋지게 발을 뻗는 일은 사진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하지만 에릭 요한슨에게는 이것조차도 ‘Impossible is Possible’, 불가능하지 못했다.

*

전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을 따라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끌려가다시피 했던 기억은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전시회에 자주 찾아가지는 않았다. 안목도 없거니와 그림과 사진을 즐길 만큼 조예가 깊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이든 사진이든, 전시회를 즐기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했다. 에릭 요한슨이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며 감탄하는 것,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추측하며 생각에 빠지는 것, 단순히 사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 등. 잊지 못할 꿈과도 같았던 전시였다.

불가능한 현실에 어서 오세요.
당신의 현실을 즐겁게 의심하세요.





에릭 요한슨 사진전
- Impossible is Possible -


일자 : 2019.06.05 ~ 2019.09.15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0,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3세) 8,000원

주최/주관
씨씨오씨

후원
주한스웨덴대사관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전문필진.jpg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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