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치고 박고 달리며, TO FIELD! [스포츠]

운동장을 통째로 쓰는 여자들 (feat.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글 입력 2019.07.29 00: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천성적으로 승부욕이 약한 타입이다. 프로야구 시즌에는 일가친척 모두가 충청도 출신이라 모태신앙처럼 꼼짝 없이 한화를 응원해야 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용감하게 ‘두산 파이팅! 한화 져라!’를 외치고 새우깡으로 뒷통수를 얻어맞으며 깔깔대는 인물이었다.


물론 한화가 이기는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종일 ‘최강한화’를 부르짖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승부욕과는 거리가 먼 순혈 철새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이든 운동 경기든 늘 승패에는 별 관심 없는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바로, “이기는 편 우리 편!”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승부욕에 활활 불타오르고 아쉽게 진 경기가 분해 점심도 거르고 교실에서 엉엉 울던 날이 있었다. 열일곱 살이 되어 나는 여고에 가까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분반 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해에 여학생들만의 반 대항 체육대회가 개최되면서 내 인생 가장 터프하고 야성적인 시기가 막을 열었다.

 

 

two-girls-schoolyard_23-2147667403.jpg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나는 상당히 열의 넘치는 체육 선생님 지도하에 여러가지 팀 스포츠를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드물게 운이 좋은 여학생이었다. 여자반은 보통 드리블 몇 번, 슈팅 몇 번 정도의 실기 위주로 체육 수업이 진행된다는데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토너먼트 형식까지 갖추어 제대로 된 (많이 어설프긴 하지만) 팀 경기를 하며 일 년 내내 운동장을 누볐으니까.


반 대항 체육대회는 축구, 배드민턴, 피구, 티볼 순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배드민턴과 피구, 티볼 반대표로 참가했다. 날고 기는 체육소녀는 아니었지만 기묘한 민첩성을 지닌 문학소녀였던 나는 공은 좀 무서워해도 빠른 발과 의외로 괜찮은 지구력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생존형 선수였다. 축구를 할 때에는 미드필더 포지션을 맡았는데 (순전히 포지션 이름이 가장 멋지다는 이유로 자진했다) 예상외로 할 때마다 실력이 느는 모습을 보여줘서 친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 재능 있는 체육소녀들이 하나씩 별명이 붙는 게 내심 부러워서 스스로를 7반 이성용이라고 칭했으나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미드필더로서 톡톡히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기 상황 때마다 잊지 않고 ‘식빵’을 외치는 데에는 소질이 있어서 어떤 의미로는 확실히 1학년 7반 이성용이 맞았다.

 

 

OR2EXE0.jpg
 


처음에는 다들 웃으며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로 7반 김자철이니 10반 메시니 서로 별명까지 붙여주며 화기애애하게 경기하던 여자반 학생들은 2학기 피구 시합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변했다. 각반의 교실 앞문과 뒷문에는 ‘7반 출입금지’, ‘10반 출입 적발 시 사살’ 등의 흉흉한 문구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다들 ‘체육… 뭐… 그냥… 대충 한 시간 때우자’라는 식이었던 아이들이 피구와 티볼 시합에서 우승하기 위해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방과후를 가리지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와 맹연습을 했고, 전략까지 철저하게 세울 만큼 열의를 불태웠다.


갑자기 그렇게 돌변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부상인 10만원짜리 매점 상품권 때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우리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힘껏 공을 던지고, 목청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해가 저물 때까지 함께 땀 흘리는 팀 스포츠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다.



“여자도 축구해요.”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271-272p


아마추어 축구팀에서의 경험을 담은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는 “어느 날 운동장을 통째로 쓰며 축구가 하고 싶다는 걸 깨달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선심 쓰듯 주어진 운동장의 한 모퉁이가 아닌 넓은 피치를 누비며 먼지를 뒤집어 쓰고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내달린다. 강해지는 즐거움에 매료된 여자들은 ‘여자들이 무슨 축구냐’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필드를 가로지른다.

 

 

soccer-goal-football-green-grass-field_1339-3228.jpg
 


2014년 어느 가을날, 티볼 시합 우승에 눈이 멀어 10분만에 석식을 마시듯이 먹어 치우고 운동장에 집합한 1학년 7반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방해꾼들을 맞닥뜨렸다.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남학생들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로 귀찮게 한다는 듯이 너무도 당당하게 ‘우리 이제 축구해야 하니까 여자들은 운동장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운동장 밖으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우리에게 남학생들은 어디 한 번 버텨보라는 뜻을 담아 축구공을 공격적으로 날려 보내며 우리를 운동장 끄트머리로 내몰았다. 그렇게 날아온 공에 외야수에 서있던 한 친구가 어깨를 맞고 주저 앉으며 전쟁은 시작됐다.


타석에 선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남학생들을 조준해 배트를 휘둘렀다. 어떤 공은 표적에 명중했고 어떤 공은 담장을 넘어 공원까지 날아갔다. 뭐가 됐든 악의 담긴 축구공만큼이나 위협적인 볼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티볼 경기를 야구공이 아니라 배구공으로 했었으니까. 아이들의 분노가 담긴 배구공이 날아올 때마다 남학생들은 짜증난다는 듯 이쪽을 흘겨봤고 우리는 보란듯이 환호하며 소리 질렀다. 홈런!


 

2551862.jpg
 


내 기억 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악에 받쳐 달렸던 날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해가 저물고 남학생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고 나서야 운동장을 통째로 차지할 수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 후레쉬를 모아 들고 희미한 빛에 의지해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자꾸만 넘어지고 날아오는 공에 얼굴을 얻어맞으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우리 여기 다 있다!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214p


이듬해 나는 합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짝피구의 세계 속에서 체육에 대한 흥미를 점차 잃어갔다. 그리고 체육시간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지만을 고민하는 흔하디 흔한 여학생이 되어갔다. 체육복을 안 가져왔다는 핑계로 구령대에 앉아 에이치라인 교복 치마를 입은 무릎을 담요로 가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 역시 체육은 내 적성에 안 맞아.


베이스만 바라보며 무작정 내달리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갈려서 일주일 동안 울면서 샤워를 하고도 매일같이 운동장에 기어 나오던 열일곱 살 그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오랫동안 으슥한 곳에 밀려나 있던 서러운 그 아이가 조금씩 마음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나 아직 여기 있다, 우리 여기 다 있다!

 


 


0d951c41a63deaae9256a1b547a61d95_Pe3qHOI7kIEF9xXqpSIaCLd1X.jpg
 

[이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