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전하지 않은 채로 함께하는 것 - 연극 "달랑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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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한 줄'을 바꾸는 것의 의미
나의 불편한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연대는 시작된다. 연극 <달랑 한 줄>은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에 부딪혀온 이들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연대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 그대로 ‘달랑 한 줄’ 때문에 중심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들이 마주해온 것은 그 한 줄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목격해온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 직장에 들어간 뒤 상사에게 당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 재판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2차 피해, 그리고 지금 눈 앞에 놓인 불편한 문장 한 줄.
ⓒ 김민솔이 연극이 가진 힘은 서로 다른 네 인물이 연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크고 작은 변화에 있다. 연실은 남편의 폭언을 참다못해 두 딸과 함께 집을 나왔지만, 이혼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딸인 현주와 은주에게 “여자가 조심해야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문장 한 줄이 불편해 시위를 결심하는 친구 명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연실이 명희와 함께 시위장에 나간다. 그 ‘달랑 한 줄’을 바꾸기 위해.
연실이 시위를 나가게 된 배경에는 명희와 은주가 겪은 사건들이 있다. 연실은 그 여성 혐오적 사건들이 결국 ‘우리’의 일임을 직감한다. 맏딸인 은주가 불편한 일을 바꾸려고 일어서기보다는 답답한 마음 그대로 감내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런 은주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 때 연실은 깨닫는다.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 문장 한 줄을 바꾸는 일이 곧 우리가 살아갈 삶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완전하지 않은 채로 함께하는 것
ⓒ 김민솔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일에 회의적이었던 연실과 은주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명쾌하지만은 않다. 그들이 무엇을 계기로 변하게 되는지 극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저 ‘함께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시위에 뛰어든 연실, 아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시위장에 온 은주.
우리는 그 두 인물의 모습에서 모든 변화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됨을 목격한다. 그 어떤 사회 운동도, 세상을 바꾸는 일도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연대하고 함께 부딪혀나가는 경험 속에서 그 변화가 시작됨을 느낀다.
극의 마지막에 가면 가구들이 있던 자리에 피켓과 스피커가 자리하고, 집을 의미했던 극장 공간은 야외 시위장이 된다. 집 안에 있던 여성들이 바깥의 거리로 나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를 띤다. 장소의 전환과 함께 연극은 또 하나의 시위가 된다.
각각의 인물들은 변화를 외치고, 연실은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연실'이라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발언한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이들의 선언에는 긴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 담겨 있기에, 또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큰 감동을 준다.
더 자유로운 여성 서사를 기대하며
연극 <달랑 한 줄>은 '연대의 실천'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지만, 중심인물들이 전형적인 캐릭터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어떤 이분법적인 틀 안에 인물을 가두어두고 자꾸 부딪히게 하다 보니 어느 한쪽의 입장은 설명되지 않은 채 몰아 세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개인의 삶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계몽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것처럼 다가와 불편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이 페미니즘에서 출발했기에, 그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캐릭터와 서사가 설 곳이 좁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페미니즘 연극제는 이제 2회째를 맞았다. 연극 무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나는 경험은 항상 소중하고 또 동시에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게 아쉬움을 마음에 간직한 채 다음 만남을 기다려본다. 내년에 있을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를 통해 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김주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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