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 최성호, 필로소픽 [도서]

성범죄 재판에 대한 철학자의 성찰
글 입력 2019.07.2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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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성범죄의 고소인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묻는 것은 정당한가? 최성호의 책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성범죄 고소인의 피해자다움을 묻는 것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성범죄의 고소인에게 피해자다움을 묻는 것이 곧 하나의 가해라고 주장하는, 그래서 재판에서 피해자다움을 묻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더 해악적이라는 여성 운동 단체나, 주류 언론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최성호가 자신의 주장을 책 속에서 정당화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노파심에 몇 마디 첨언을 하고 싶다.


며칠 전 안희정 성폭행 사건을 두고 일어난 교수 신문에서의 논쟁을 우연하게 발견했다.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먼저 교수신문에 <안희정 무죄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논쟁은 시작된다. 이 기고문이 올라 간 이후,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교수가 최성호의 기고문에 반박하는 글을 <안희정 무죄 판결이 정당하고 볼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기고한다. 이후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 교수도 최성호를 비판하는 기고문 <왜곡된 위력공간을 간과한 안희정 판결의 부당성>을 투고하고, 이어 이상룡 부산대 철학과 강사도 최성호를 비판하는 기고문 <안희정 무죄 판결의 부당성 – 성적 자기결정권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된다>를 투고한다. 이후 최성호가 이들의 기고문들에 대해서 반론을 작성하여 투고하였고 그 이후 재반박 기고문들이 투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이 마무리 되었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의 입장으로서, 언론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논쟁들을 항상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처음 이 논쟁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각 글들을 모두 읽었다. 사실 처음에는 약간 편견에 가득 찬 채로 최성호의 글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해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주장을 펴는 성 차별주의자’라는 근거 없는 선입견을 지니고 글을 읽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최성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주장이 맞든, 틀리든) 진지한 검토를 요구하는 철학적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이 이루어졌는지는, 그의 책을 살펴보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것이지만 어쨌든 비판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보다는, 선입견에 기대어 먼저 판단을 내려버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


그래서 스스로의 편협함에 대해서 반성도 하고, 교수 신문에서 벌어졌던 논쟁에서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도 할 겸, 이번에 새로 출간된 최성호의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주문했다. 그가 그의 주장을 어떻게 더 발전 시켰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그 자신의 주장을 나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글의 첫머리에서 이렇게나 상세하게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밝히는 이유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오해들에 대해서 소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하고 있는 주장이 정말로 옳고,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직관들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에 어긋난 주장들을 만난다.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게 비춰지는 사실들이 틀렸다고 하는 주장들을 말이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논박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 글의 끝에서도 주장할 것이지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유혹이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엄밀한 사고가 뒷받침 되지 않는 직관이란 통찰이 아닌 독단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주장이, 진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철학적 주장일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유혹을 물리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나름의 견실한 이론적 배경과, 논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이 책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독자의 몫이지만, 어느 쪽이든 독자는 스스로에게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 할 수 있어야 한다. 차근차근 최성호의 주장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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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이라클리온 박물관



1.



가장 먼저 이 책에서는 논의를 위해 ‘피해자다움’이라는 개념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일단 ‘피해자다움’은 각 범죄에 대해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상해 범죄의 피해자의 피해자다움과, 강간 범죄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은 다를 것이다. 또한, ‘피해자답다’라는 술어는 범죄가 발생한 시점 이후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행위자의 행위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니까 범죄의 피해자가 이전에 무슨 행위를 했는지(전과가 있다, 정신 병력이 있었다, 야한 옷을 입었다.)는 ‘피해자다움’이란 개념을 구성하지 않는다.


이런 피해자다움은 형사재판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범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고소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진술의 신빙성’은 그 진술을 재판에서 얼마나 고려할 것이냐를 결정한다. 성범죄에서는 보통 피해자의 진술 증거가 범죄 사실을 증명할 만한 거의 유일한 증거이기에, 더더욱 ‘진술의 신빙성’의 고려가 중요하다.


‘진술의 신빙성’은 여러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는데, 보통 ‘믿음직함’, ‘정직성’, ‘일관성’, ‘남김 없이 진술하기’ 등이 고소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다. ‘피해자다움’ 또한, ‘진술의 신빙성’을 측정하는 주요 기준이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는 피해자다움이란 개념을 행위철학적인 개념을 통해서 정의한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범죄 C의 시점 t이후에 A의 행위가 C에 대하여 피해자다울 경우에, 그리고 오직 그런 경우에만 <A가 C의 피해자이다>라는 가설 하에서 A의 행위 S는 <A가 C의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가설 하에서 보다 더 잘 설명되고 이해된다. (p.35)


 

이를 상술하기 위해 책에서는 상해 범죄의 피해자의 예시를 든다. 상해죄의 고소인 A가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모습은 A가 상해죄의 피해자라는 가설 하에서 더 잘 설명되고 이해되는 피해자다운 모습이다. 이에 반해, A가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심지어 철인 3종 경기에 참여 했다면 이는 <A가 C의 피해자 아니다>라는 가설 하에서 더 잘 설명되는 피해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행위 S가 더 잘 설명되고 이해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제시하여야 한다. 이 과제는 추후의 논의를 통해서 해결될 것이다. 이 분석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함축은, ‘피해자다움’의 판단이란 더 많은 맥락과, 정보가 제공 될 경우 철회 가능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만약 위의 예시에서 A가 다쳤음에도 철인 3종 경기를 꼭 참여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이 행위에 대한 ‘피해자다움’의 판단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책에서는 가짜 피해자다움을 피해자다움의 정의를 통해서 규명한다. ‘가짜 피해자다움“이란 A의 행위 S가 <A가 C의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가설 하에서 행위 S가 더 잘 설명되고 이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A가 C의 피해자이다>라는 가설 하에서나, <A가 C의 피해가 아니다>라는 가설 하에서 동등한 수준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해죄의 피해자가 범죄 이후 한 <숨을 쉬다>라는 행위는 두 가설 중 어느 것을 채택해도 잘 설명되고 이해된다. 이런 행위들은 피해중립적인행위들이다.


만약 고소인이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면,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은 증가할 것이고, 가짜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면 신빙성은 하락할 것이다. 피해중립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그 것은 어떤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의 논의를 진행한 이후, 앞에서 예고했던 인간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인간 행위 설명에 관한 여러 철학적 전통을 제시하고, 그 연속성 위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고 있지만, 요약을 위해 최종적으로 이 책에서 채택하고 있는 관점만을 제시하겠다. 인간의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은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모종의 심리 상태 R에 근거하여 행위자의 행동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심리상태 R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행위자가 R을 가지고 있다.

2. R은 행위자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3. R은 행위자의 행위의 원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서 제시한 예를 살펴보자. 상해죄의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통해 병원을 찾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P1. 내 몸은 현재 상해로 인한 상처를 입었다

P2.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이후 나의 삶이 불행해질 수 있다.

P3. 나는 나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P4. 병원에 가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C. 따라서 나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상해죄의 피해자가 병원을 찾는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은 곧, P1-P4라는 믿음(심리상태)을 행위자가 실제로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1), 이 믿음들이 바로 그 사람이 병원을 찾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3)한다는 것을 알고, 행위자가 스스로 위와 같은 논증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2), 우리는 그가 병원을 찾는 행위에 대한 설명적 이해를 달성할 수 있다.


첫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과 같은 경우는 행위자를 관찰함을 통해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이다. (최소한 그렇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조건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추론 과정을 우리가 심리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봄으로써 그런 앎이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일 때 내가 해보았을 법한 추론을 구성하고, 그 추론의 결론으로 나온 행동이 행위자의 행동과 동일하다면, 행위자가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면,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명하였고, 이를 피해자다움에 대한 분석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행위가 피해자다움이라는 것은 범죄 C의 시점 t이후의 행위자 A의 행동 S가 <A가 C의 피해자이다>라는 가설 하에서 더 잘 설명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행위가 설명된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3가지 조건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A가 C의 피해자이다>라는 가설 하에서 위의 세 조건을 만족하는 심리적 상태를 구성하는 것이 다른 가설을 상정할 때보다 용이하다면, 그 행위가 더 잘 설명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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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에토, 성 패트릭 우물
Deshi Deshi Basara
배트맨 보고 싶다



2.



‘피해자다움’이란 개념이 책에서 정의된 방식으로만 꼭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책은 이렇게 피해자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피해자다움이라는 개념의 오남용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밝힌다.


‘피해자다움’을 논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의 성격을 지닌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피해자다움의 개념이 훨씬 넓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피해자다움은 “피해자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충분히 취했는지, 과거에 어떤 성경험을 지녔는지, 전과나 정신병력이 있는지” 등등과 모두 관련되어 있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다움을 범죄 행위 이후의 고소인의 행위와만 관련시켰지만, 피해자다움은 흔히 행위자의 역사 전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사용되고는 한다.


그래서 이 개념은 피고인 측 변호사가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기 위해 ‘고소인이 성적으로 문란한 이성’이라든지 혹은 ‘고소인이 사실은 성범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을 하며 고소인이 피해자답지 못했다고 주장할 때 동원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고소인이 방어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태도를 인용을 통해 확인해보자.

 


“자신의 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기전에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만한 ‘온건한’ 성이었음을 증며하는 동시에 이 ‘정상적인’ 성이 ‘비정상적인’ 성에 의해 침해받았음을 증명해야 할 부담을 지게 된다. 편의를 위하여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을 ‘이상적 피해자상’이라고 부르자.” (p.94)



책에서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피해자다움 그러니까 이상적 피해자상에 호소하여 성범죄 고소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것은 논증적으로 설득력 없을 뿐만 아니라 부도덕”(p.94)하다고 말한다. 먼저 이런 이상적 피해자상은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과 아무런 증거적 상관관계를 지니지 않기에 논증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이상적 피해자상에 대한 호소는 고소인에게 증언할 수 있는 능력을 부당하게 박탈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


하지만 이런 입장의 연장선에서, 아예 피해자다움을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객관적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사법적 정의를 확립할 수 없다.”.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은 재판에서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피해자다운 행동은 <A가 C의 피해자다>라는 가설이 행동을 더 잘 설명한다고 여길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가설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는 것은, 그 가설이 참이라는 신빙성을 높이는 지표이다. 이는 최선에의 설명으로의 추론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성취된다. 이 추론의 전형적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F는 설명이 필요한 사실이다.

2. 가설 H는 F를 설명한다.

3. F를 H만큼 잘 설명하는 경쟁 가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4. 따라서 아마도 H는 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소인 A의 피해자다운 행동은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 F가 고소인 A의 행위 S라고 생각해보자. 행위 S가 피해자답다면, <A가 범죄행위 C의 피해자이다.>라는 가설의 설명력을 높인다. 가설의 설명력이 충분히 높아지면, 추론의 세 번째 단계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소인 A의 피해자다운 행위 S는 가설의 설명력을 높이고, 그 결과 가설이 참이라고 믿을 수 있는 더 강력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피해자다움’ 개념의 오남용을 경계하고 있다. 피해중립적 행위들을 마치 가짜피해자다운 행위로 취급하거나, 넓은 방식으로 남용되어 고소인의 증언능력을 박탈하는 경우들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피해자다움’의 개념이 남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 다움에 대한 고려를 성범죄 재판에서 완전히 배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공권력이 남용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을 일절 폐기하자는 주장만큼 어불성설”(p.120)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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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융프라우
막 찍어도 이쁜 풍경
또 가고 싶다



  

3.



다음 장들은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을 실제 사례에 대입하여 적용, 분석한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논의의 시작점이었던 안희정 성폭행 사건의 1심과 2심 판단에 ‘피해자다움’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간략하게 논하고, ‘피해자다움’과 ‘성인지 감수성’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펼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대한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 이후 자기파괴적 의사라는 개념을 통해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심각성과 그 무거움을 지적한다. 국회의 개정안들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와 자기파괴적 의사의 관계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문제 있는 개정안들을 발의한다고 주장한 뒤, 관련 법 개정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내용들 또한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간략하게 다룸을 이해해 달라. 실제 사례에 앞의 결론들을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내용이 진행되기에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과 의견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요약을 통해서 이 주장들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히 이 글의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 부분들에 대한 요약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내 개인의 판단을 드러낼 것이다. 이 글의 의도는 서론에서도 밝혔다시피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의도를 벗어나지 않고 책 후반부의 내용들을 요약하지 못하는 필자의 부족함을 용서하라.


결론을 쓸 때가 다가왔다.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것을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우리가 올바르다고 믿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는 무엇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절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정 반대의 주장들이 충돌 하는 경우에서 한 입장을 택하기 위해 양 쪽의 주장들을 탐구하다 보면, 각 주장들이 나름의 체계 내에서 정합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쪽의 입장에서 다른 쪽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고, 완전히 틀린 주장처럼 보인다. 결국 내가 어떤 관점과 체계를 내 것으로 받아들일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진정으로 옳아 보이는 것이 휙휙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성찰과 비판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온전하고 완벽하게 설득할 수 없는 주장들은 과감히 폐기하고, 오로지 이성에 기대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우리의 신념은 어느 순간 독단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독단은 우리에게 이유도, 근거도 묻지 않는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할 것이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채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선율에 이끌려 절벽으로 향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이런 자기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주장들이다. 이런 주장들은 내 믿음의 근거를 다시 한 번 스스로 되물어보게 만든다. 이 주장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이 온전하다면 내 믿음은 조금 더 확실성과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무너진다면 수정과 보완을 통해 더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내 믿음과 대치되는 주장과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이득이다. 물론 이 검토의 과정에서 사용되어야 하는 도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이다.


이런 지점에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제목을 보고 또 다른 성차별적 도서가 나왔구나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말이다. 특히나 굉장히 논증적이고, 엄밀한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하려고 한 노력이 선명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당신이 이 책을 모두 읽고 저자의 결론에 동의를 하든, 동의를 하지 않든 간에,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당신의 믿음은 어느 방향으로든 견고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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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락페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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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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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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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onymous
    • 최성호의 주장을 소개했다면, 이에 반론을 펼치는 다른 학자의 입장도 소개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을 것 같다.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성호가 펼치는 주장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전제들을 밝히고, 그 전제들이 가지고 있는 남점과 어려움을 밝히는 형식으로 자신의 반론을 전개한다. 관련 링크를 첨부한다.

      피해자다움 왜곡의 안희정 1심 무죄 판결의 부당성
       http://naver.me/xWM7C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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