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거야"
글 입력 2019.07.2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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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뉴젤대_표지.jpg
 

리뷰 제목이 책 제목과 같은 까닭은 이 이상 매력적인 제목을 지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뉴서울파크'와 '젤리장수', 그리고 '대학살'이라는, 제각각 노는 세 단어가 나열되었을 뿐인데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더운 어느 여름날, 인기 있는 테마파크 '뉴서울파크'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젤리로 변해 녹아내린다' 라는 설정에 들어맞게 어떤 은유도 없는 직설적인 제목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간략한 책 소개와 표지를 보고 어떻게 이 책에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나 그놈의 마음이 문제다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시작은 그 말이었다. 고양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그중에서도 제일 제멋대로인 것은 마음이다. 누군가와 나눈 마음은 제 것인데도 완전한 제 것이 아니었다.

- 234쪽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 못하게 하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은 누군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생겨나고 바뀌고 또 사라지는 변화무쌍한 마음을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뇌과학자를 모셔와야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갖고 있기에 마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꽉꽉 들어찬 사람 하나하나가 그렇게 격동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때가 있다. 사람의 희노애락에 관여하는 이 마음에는 분명 에너지가 있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 어떤 마음은 욕망을 품고 있고, 또 다른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하기도 하다. 무언가를 성취해내거나 다른 것과 부딪혀 상쇄되지 못한 그 마음이 가진 에너지는 모두 어디로 갈까.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은 기묘한 이야기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가장 큰 사건은 어느 여름날 놀이동산에 있던 사람들이 젤리가 되어 녹아내린 것이지만 소설을 이루는 9개의 작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결국에 이 소설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이 남긴 흔적, 흔적보다는 부산물, 찌꺼기 같은 것들의 이야기다.

부모님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너무 오래 억눌려 시커멓게 변해 버린 마음...가닿을 곳을 잃고 폭발하는 마음들이 수상한 젤리장수를 만나면 겉잡을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제목에 '젤리장수 대학살'이 들어가서 마치 젤리장수가 이 모든 대학살을 저지른 것 같지만  읽어보면 사실 젤리장수가 한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사람들에게 함께 먹으면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며 젤리를 나눠준 것 뿐. 그럼에도 놀이공원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녹아내렸다는 건 누군가와 헤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심지어 네 번째 이야기, '오늘부터 1일'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귀던 연인과 영영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녹아내리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선뜻 젤리 먹기를 선택한다. 함께 젤리로 녹아내리며 영영 헤어지지 않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 끔찍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녹아내린 사람들이 저마다 그들을 젤리로 변하게 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욕망이라는 게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소박하고 보편적인 바람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젤리로 변해 가는 사람과 이미 젤리가 되어 녹아 버린 사람이 마구잡이로 엉겨 붙어 나뒹구는 광경이 펼쳐졌다. 유지는 멍하니 섰다. 그 모습은 뭐랄까, 꼭 놀이공원에서 준비한 퍼레이드 같았다. 코를 찌르는 단내에 구토감이 일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 49쪽





판타지는 현실의 또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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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맹랑하게 여겨지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현실이 들어 있다. 예컨대 국가별로 또는 세대별로 다르게 유행하는 괴담은 그 집단에 속해 있는 이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 <오즈의 마법사> 등 당대 여러 판타지는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담론을 <홍길동전>처럼 아예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로 만들어 검열과 비난을 피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도 환상의 포장지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이리저리 헤매던 이들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쉬지 못했다. 마음을 하나씩 매일매일 돌아보고 보듬기에 우리는 너무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해소되지 못한 마음들이 품은 에너지는 차곡차곡 쌓여 결국 마음의 주인인 그들 자신을 덮친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주요 배경이 영원한 꿈과 희망을 약속하는 테마파크라는 점도 재밌다. 테마파크 캐릭터나 인형들은 항상 웃고 있어서인지 묘하게 오싹할 때가 있다. 젤리 역시 달콤한 간식이지만 먹으면 이가 썩는다며 아이들에게는 금지되는 것들 중 하나다. 테마파크와 젤리가 가진 모순적인 면들이 사라지지 못한 마음의 욕망과 만나면 대학살이 일어난다. 테마파크의 목적이 방문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소설 속의 뉴서울파크야말로 방문객에게 그야말로 영원히 지속되는 (끔찍한) 환상을 선사했으니 가장 목적에 충실한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그 아이러니가 마음에 든다.


오픈 직전의 활기와 흥분은 다른 방향으로 모습을 틀었다. 곳곳에서 밀지 말라는 외침과 욕설이 들려왔다. 뒤쪽에서 좀비라도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소란에 울음소리가 묻혔다. 누군가 넘어져 다친 것이 확실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에 치이고 발이 밟힌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늘어났다. 어디서부터 줄이 꼬였는지 당최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스크린과 스피커에서 퍼지는 노랫소리는 여전히 즐겁기만 했다.

- 256쪽


이 어마어마한 사건이 마무리되는 방식 역시 지극히 한국스럽다. 온갖 괴소문이 BJ나 유투버를 중심으로 한차례 세상을 휩쓴다.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여전히 이 달콤한 악마를 숭배하고,  뉴서울파크는 다시 문을 연다. 뉴서울파크의 마스코트인 꿈곰이는 다시 웃고 춤춘다. 특별히 재개장 첫 번째 날은 무료다. 덕분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아이들은 발을 밟히는데,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그 울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야기의 문을 연 아이는 이 사건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음에도 후에 자발적으로 젤리를 삼키며 이 이야기를 닫는다. 늘 애정이 부족한 부모와 현실을 살아가기보다 사라짐으로써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택한 것이다. 모든 결말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무엇도 해결되지 않고, 방황하는 마음은 계속 방황할 것이며 그 마음들이 쌓여 언젠가 제 2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사건을 불러올 것임을.

 

다시, '읽는 즐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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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으니 이번에는 작품에서 한 발 떨어져나와서 생각해 본다. '순수문학'에 대한 환상은 언제부터 내 안에서 자라났을까. 학교에서 필독도서를 정해주던 때부터?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칭찬 받는데 어떤 책은 그만 놀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사실 순수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나누는 기준도 모호하고, 그 구분이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문학 전반에 대한 취급이 좋지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순수문학이 아닌 것들, 그러니까 교과서와는 관련이 없는 장르성 짙은 문학은 가장 과소평가되어왔다.

언제부터였든 나 역시 '순수문학'(이라 여겨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해왔고 독서를 한다면 모름지기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믿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어른들이 권장하는 문학을 읽는 것도 보람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었는지' 묻는다면 조금 망설이게 된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부터 그 '재미'는 유투브나 넷플릭스처럼 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매체로 충족하게 되었다. 책은 한층 더 경건하고 진지한 콘텐츠가 되면서 즐거움과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읽은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예전에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설렘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참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계속 그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어딘가 틀에 갇혀 많은 이야기를 놓쳐온 나 자신을 조금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활자의 형태로 잠든 채, 그것을 읽어서 의미를 부여해 줄 당신을 기다리면서. 당신이 읽는 즐거움을 잊었다면, 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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