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랑 한 줄에서 시작된 변화 - 달랑 한 줄 [공연]

글 입력 2019.07.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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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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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명희, 현주, 연실


연실 - 한국 어느 평범한 가정의 엄마. 남편의 미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으며 남편과 싸우고 두 딸과 함께 집에서 나온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엄마 노릇을 하며 꾸역꾸역 딸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 나와 친구네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이 극에서 가장 변화를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변화하게 되는 인물이다. 어느 가정에 있을 법한 엄마의 이미지로 결혼을 하면서 전업주부로 살면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점점 그 틀을 깨고 나오며 극의 마지막에서는 누구보다 크게 소리치는 사람이다. ‘여자가 미리 조심해야지.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라는 말들을 했던 그녀의 생각이 점점 바뀌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극을 보게 된다.

명희 -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며 번역 일을 한다. ‘책에 나오는 표현들이 불편하다’라는 이유로 번역을 중단한다. 출판사에 수정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계약을 파기 당하고 만다. 그녀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그녀를 더 번역 일에 매달리게 했다. 원서에 나오는 표현들이 너무나 여성 혐오적이기에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세상은 이를 무시한다. 그러한 일들에 결국 다른 인물들과 함께 시위에 나선다.

은주 - 2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 여자다. 직장에서 남직원들이 여자 화장실에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한 사건이 발생해도 뭐라고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회사를 잘 다닐 수 있기에 그런 현실을 모른 척 괜찮은 척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가족들과 명희 이모의 변화가 두렵고, 외면하지만 결국 함께 외치게 된다.

현주 - 고등학생으로 학교의 교칙이 부당하다고 여기며 반기를 든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바꾸는 시도를 계속하며 당당히 살아간다. 명희 이모가 마음이 잘 맞고 명희 이모의 부당한 계약 파기 사건을 듣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 그녀를 돕기 위해 시위에 앞장선다. 그녀를 보며 나의 학생 시절이 생각났고 부끄럽기도 했다.



박차고 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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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당연한 글일 수 있고, 불편한 글일 수 있다. 이를 눈감고 넘기느냐, 짚고 반기를 드냐 아직도 나에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극을 보면서 나도 굉장히 틀에 박혀있는 사람이구나 느꼈다. 연실 엄마는 정말 친근한 우리 곁에도 있을 법한 아주머니다. 가부장적인 가정의 딸로 태어나 오빠를 항상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며 자랐다.

그랬기에 ‘나는 저렇게 대하지 말아야지. 딸들이 모든 것을 하게끔 해줘야지’ 다짐을 하지만 엄마가 되어 돌아보니 자신도 가부장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힘들어한다. 자기가 듣던 미운 말을 딸들에게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환경이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여자가 미리 조심하면서 다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딸들을 걱정한다. 이런 면은 우리에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말이 누구에게는 미운 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이니까 나도 이런 부분을 조심하고 항상 자신을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연실이 자신을 깨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바뀌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가 바뀐다고, 내가 나선다고 무엇이 바뀔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고,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가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 자체가 그녀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마지막,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직접 소리를 내어 외친다. 그 현장에 같이 있는 나는 너무나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교칙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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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극에서 제일 관심이 간 인물은 학생 현주였다. 그녀를 보며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가 반기를 든 교칙은 교복 안에 색깔이 있는 티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선도부였던 내가 단속했던 교칙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저런 교칙이 왜 존재하는 것이며 교칙을 만든 이유도, 이를 어기면 벌점을 받는 이유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순진하게 선도부로서 학교의 규정들을 따르고 이를 어기는 학생을 등굣길에 단속하는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학생을 단속하는 일에 흥미와 나름의 자부심도 느꼈었다. 교복 안에 색 티를 입으면 야해 보인다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는 것. 지금 돌아보면 참 어이가 없는데 내 동생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중학교에서 존재하는 교칙이었다.

그 교칙이 뭐길래, 그렇게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문제 아닌가 싶었다. 이런 교칙에 반기를 들며 대항하는 현주가 멋있게 다가왔고 그렇지 못한 나의 중학교 시절을 계속 다시 곱씹게 되었다.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면 단속하고, 치마의 주름이 15cm보다 길면 단속하고, 남학생들의 머리가 눈썹을 가리면 단속하고,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으면 단속해 벌점을 줬다.

아침에 일찍 나와 선도부 생활을 했던 그때는 학교의 올바름을 위해 기여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던 생활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틀에 박혀 이런 체제에 순응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와는 달리 현주가 부럽기도 했다.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는 후회와 함께 지금도 존재하는 불편한 교칙들, 한마디, 글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월에 모교에 멘토링을 하러 가게 되어 교실에 오랜만에 들어갔는데 책상 아래 무엇인가 둘러싸여 있었다. 멘티 학생에게 무엇이냐 물어보니 어떤 분이 치마 가리개를 설치하라고 기부했다고 했다. 순간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다닐 때도 하지 않았던 치마 가리개라는 것을 만들어서 여학생들 책상다리 사이에 이상한 천을 붙여 제대로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불편하고 담요 덮고 있으니까 그런 목적이라면 필요가 없고 왜 우리가 이를 가리려고 노력하고 불편을 참아야 하는지, 왜 이를 전교에 뿌렸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 아닌가? 이 치마 가리개를 기부받고 학생들 교실에 설치될 때까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고 설치되어 학생들이 불편을 겪게 했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불편하게 살아왔고 이상한 교칙들이 있어도 감수하며 생활했는데 더 이상한 것들로 우리를 더 숨 막히게 해야 할까? 이 연극을 보며 더 분노가 이는 순간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이상 나도 참지 않고 이 불편함을 맞서 대항하고 싶게 됐다. 너무 늦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변화가 나에겐 깨달음과 큰 용기가 합쳐져 생긴 변화이기에 솔직하게 우리의 힘을 위해 나아가고 싶다.

*

누군가에게 ‘달랑 한 줄’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 줄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여성 혐오적인 표현이 담긴 글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계약 파기를 당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분명 많이 존재할 것이다. 평생을 불편을 감수하며 모른 척하며 살아왔고 지금의 불편함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달랑’인 일에 목소리를 냈는데 이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달랑’인데 그렇게 사소하게 치부되는 것을 바꾸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이 일에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체제와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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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에서는 여성 혐오 작가 OUT, 여성 혐오 출판 OUT 피켓을 들며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담은 글을 재생산해내지 않기 위해 시위를 하며 이를 눈감는 사람들을 향해 매일매일 소리친다. 처음 마주 볼 때는 무서워하며 떨려 하는 연실처럼 나도 마냥 무섭고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냐며 하지 말자고 하는 은주처럼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눈감고 귀 닫는다면 계속해서 이 현실을 꾹꾹 참으며 살아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

나도 그렇다. 생각만 하고 주저한다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도 바뀌지 않는다. “불편한 한 줄을 바꾸기 위한 네 여자의 사소한 투쟁.” 사소한 투쟁이 우리 사회 전체를 바꾸는 순간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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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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