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 하세요? -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전시]

글 입력 2019.07.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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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가 열풍이더니 이젠 추억의 영화가 돌아왔다. <알라딘>, <토이 스토리 4> 그리고 <라이온 킹>까지. 원작을 봤다면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추억의 영화를 보고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면, 전시를 보는 건 어떨까? 조금 더 특별하게 동심을 떠올릴 수 있는 전시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전>을 소개한다.


[앤서니브라운의 행복극장展] 포스터_웹용최종.jpg
 


어렸을 적 우리 집 책장 한구석엔 앤서니 브라운과 존 버닝햄의 동화책이 꽂혀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유인원을 무서워했는데, 앤서니 브라운의 《달라질거야》나 《고릴라》는 매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세계를 다녀온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땐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없어 이야기를 지어내곤 한다. 브라운의 그림들은 상상 친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령 《고릴라》에선 바쁜 아빠 대신 주인공과 동물원에 같이 가주는 고릴라가 나온다. 어른이 된 지금은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는다. 누군가가 없을 땐 SNS나 심심이 같은 앱에 이야기한다. 지금 보는 《고릴라》의 고릴라는 상사에게 깨지고 힘든 날, 같이 치킨에 맥주를 마셔줄 수 있는 친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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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의 그림은 사실적이지만 분위기는 현실을 초월한다. 《달라질거야》의 물 주전자와 고양이가 합쳐진 일러스트라던지, 액자 밖으로 삐져나온 그림 등이 그 예다. 어릴 땐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등장인물의 생각이 오브제에 반영된 것 같았다. 위로받았고, 공감했다.


위의 그림처럼 감정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제일 처음 볼 수 있는 <리틀 뷰티(Little Beauty)>가 그렇다. 작가가 “그림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두와 함께 읽기 좋다”고 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그림책의 그림은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기분이 어떤지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런 단서를 읽음으로써 독자는 이야기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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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브라운의 작품엔 텍스트가 많지도 않고, 그림과 그림에 간격이 있다. 바로 다음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생각할 말미를 준다. 일러스트를 볼 때처럼 어떤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위의 네 컷은 《특별한 손님》의 일부분이다. 재혼가정을 다룬 이야기로 아이가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때의 마음을 바닷가를 통해 비유한다.


그림을 설명하는 텍스트는 없지만, 충분히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다. 카톡이 오면 칼답을 해야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1초 만에 찾을 수 있는 요즘, 그림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의미를 찾는 게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어렸을 땐 인터넷 속도가 지금에 비해 엄청 느렸다. 멀리 있는 친구들과 연락할 땐 전화나 편지를 주로 이용했었다. 조금 기다리는 그 순간이 설레곤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행간의 숨은 의미도 찾아보고, 조금 느리게 걸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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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중앙에는 벤치와 동상이 있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마음껏 길을 잃으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힘들면 앉아서 쉴 수 있다. 느긋하게 전시를 즐기라는 의도 같았다. 대부분의 전시는 앉을 곳이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다리가 아파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빨리빨리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있다. 벤치 덕분에 앉아서 생각도 정리하고, 다시 보고 싶은 그림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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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그림을 ‘보는’ 장소다. 관람객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관객은 그림과 잠시 눈을 맞추고 떠난다. 발길을 붙잡으려면 에너지가 넘치거나 볼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브라운의 작품이 그렇다. 원화 곳곳에 고릴라나 다른 상징을 숨겨두어 찾는 재미가 있다. 재미를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를 다른 동화 작가와 구분 짓는 특징이 있다. 바로 관람객이 그림 안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능력이다. 위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림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테이트 모던 그림 아래로는 다른 그림들도 걸려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발걸음 소리, 그림을 감상하며 나누는 대화들이 어우러져 전시장이 그림의 연장선 같았다. 어렸을 적 브라운의 동화책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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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작품 안에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유에는 공간의 힘도 크다. 전시장은 원화의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쇼룸, 인형, 거울 등의 오브제를 활용했다. 부스마다 색깔과 디자인을 달리해 여러 개의 전시를 한곳에서 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넓은 느낌을 준다. 고릴라가 사는 집에 가봤다가, 해적선을 타고 사진도 찍고, 왕관을 쓰고 소파에 앉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공간도 있다.

전시는 작품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에겐 책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어른들에겐 오브제를 통해 동심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면, 친구나 연인의 손을 잡고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展>에 가는 건 어떨까?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 동화 속 세상으로의 초대 -


일자 : 2019.06.08 ~ 2019.09.08

시간
11:00 ~ 20:00
(입장 및 매표 마감: 19:00)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티켓가격
성인(만19세이상) : 15,000원
청소년/어린이/유아(24개월~만18세) : 10,000원

주최/주관
예술의전당
아트센터 이다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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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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