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화영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박화영 자신 [영화]

못나고 미성숙한 모습들
글 입력 2019.07.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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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에 가까운 비행



주인공 박화영은 가출 청소년들의 ‘엄마’다. 낳아주고 길러주는 엄마가 아니라 또래 친구들을 위해 설거지, 빨래, 요리와 청소를 하는 엄마. 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을 내어주며 또래 아이들에게 본인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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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은 ‘호구’다. 박화영의 집을 드나드는 가출 청소년들 중 그 누구도 박화영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그녀가 필요할 때만 살갑게 군다. 그러나 그 무리에 어떻게든 끼고 싶은 박화영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한다.


은미정은 무리 안에서 그나마 박화영과 가까운 사이다. 덩치가 크고 찬바람에 촌스럽게 볼이 빨개지는 박화영과 달리 은미정은 예쁜 얼굴로 쉽게 모두의 호감을 사고 무리의 실세인 영재와 사귀며 공주처럼 군림한다.


가출 청소년 무리의 행동은 비행보다는 악행에 가깝다. 영재는 은미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박화영을 때린다. 차마 자신의 여자친구인 은미정은 못 때리고, 은미정의 ‘엄마’ 박화영을 짓밟고 겁박하고 변기에 얼굴을 처박는다. 무리의 다른 아이들은 그 일련의 행위를 낄낄거리며 촬영하고 폭력에 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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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번다,는 말보다는 갈취가 잘 어울리겠다. 술집에 가서 술과 안주를 마음껏 먹고 미성년자 출입 업소라고 신고한다며 술집 주인을 협박해 돈을 뜯거나 원조 교제라는 덫을 놓고 성매매를 하러 온 사람을 협박해 돈을 요구한다.


반면 박화영이 자취방 월세를 내고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배를 불려주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자신의 엄마를 등쳐 먹는 것. 엄마에게 쌍욕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얼마 안 있어 돈이 입금된다. 돈이 생각만큼 잘 들어오지 않으면 식칼을 들고 집 앞에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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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시절, 멋모르는 한 철이라고 여기기에 그들의 행동은 짐승과 같다. 거친 욕설과 줄담배는 애교고, 도를 넘은 말들과 앞뒤 가리지 않는 폭력. 그들은 부모도, 선생님도, 경찰도 무섭지 않다.




날 것 그대로의 현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어떤 권력 구조 아래 놓이게 되는지를 낱낱이 조명한다.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그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미성숙해서 더 잔인하고 안타까운 폭력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성장기의 상처는 지독히 오래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 사람이 들어가기도 비좁은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밴다. 키스를 해주고 돈을 받고, 입던 속옷을 팔아 돈을 벌어 비싼 물건을 산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위협한다.


개중에는 돌아갈 집과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이런 생활을 ‘선택’한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무리에 머물러야만 한다. 냉혹한 현실 앞에 미성년자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박화영은 왜



박화영은 왜 저럴까,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왜 집을 나오게 되었는지, 박화영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는 영화 속에서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박화영이 스스로를 속이며 ‘센 척’을 하고 있다는 점과 돌아갈 곳이 있으나 온갖 핍박을 받은면서도 자의로 무리 속에 있고자 선택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박화영은 무리의 먹잇감이다. 무리에 끼기에는 충분히 강하지도, 예쁘지도 않아 자격 미달이지만 대신 맞아주고, 대신 치워주며 궂은일을 맡는 역할로 명목상 무리와 함께한다. 아무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자신을 방어하는 대신 그냥 속도 없는 사람처럼 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한다. “진짜 너넨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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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은미정의 엄마가 되기를 자처했던 박화영의 속내는 알 수 없다. 성인이 되어 재회한 은미정에게 박화영은 초라한 모습으로 머뭇거리며 “옛날 때…우리 옛날 때…엄마…어땠냐..?”라고 묻는다. 이에 은미정은 싱겁다는 듯이 웃으며 답한다.


“엄마는 무슨…”




비뚤어진 애정과 결핍



은미정을 향한 박화영의 우정은 일방통행이다. 은미정은 박화영이 자신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점을 잘 이용한다. 박화영은 은미정의 말과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점을 자각하면서도 미정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은미정이 없을 때 박화영이 하는 일은 은미정을 기다리는 일이다. 박화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은미정을 위한 박화영만이 존재할 뿐이다.


박화영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소주와 판콜 감기약을 함께 마시는, 남들에게는 라면을 끓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생라면을 씹어먹는, 자신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는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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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모든 책임은 박화영에게 있다. 은미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땅치 않은 대상에게 사랑을 갈구했으니 그녀는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신 것과 진배없다. 우습게도 박화영 또한 자신의 엄마에게는 ‘은미정’이었다. 필요할 때만 저자세로 엄마를 찾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개처럼 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밖에 모르는.




대단히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과 미친 듯이 닥쳐오는 파도: 질풍노도



박화영 역을 맡은 배우 김가희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냐는 질문에 자신의 10대 시절을 돌이켜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박화영이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은미정이었을 테니.


영화는 단순히 가출 청소년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지나온 사춘기, 어리숙하고 무모했던 그 질풍노도의 시기 안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은 이들을 담아낸다. 지나온 시간은 어찌할 수 없고, 스스로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는 오롯이 타인의 몫이다. 영화 속 불량한 무리만큼 거칠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서툰 관계는 있기 마련이다.


엎질러진 물처럼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관계들도 분명 있다. 상대방을 탓했으나 결국 내 문제였음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곱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거센 바람과 파도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걷다 보면 과거의 파편들이 몸과 기억에 남아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털어내면서, 마주하면서 나아간다. 중요한 건, 내가 받은 상처를 남에게 되갚지 않는 일, 미처 몰랐던 내 실수를 사과하는 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영화의 끝에 박화영은 또 다른 친구들에게 집을 내어준 듯 보인다. 함께 라면을 먹으며 이번에도 그녀는 말한다. “너넨 나 없음 어쩔 뻔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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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탕하게 웃는 그녀 앞에 앉은 친구들이 이번에는 좋은 이들이기를. 밑 빠진 독처럼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을 베풀고 사랑을 가르쳐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기를. 그리고 박화영이 박화영 스스로를 아끼고 보듬기를 오래오래 바랐다.



[정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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