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미, 그 이상의 연극 "그때, 변홍례" [공연]

글 입력 2019.07.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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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이라는 말은 종종 '난해하다'는 뜻으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그때, 변홍례>는 간만에 폭소를 터뜨리며 본 유쾌한 연극이었다. 실험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으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낯선 시도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계속해서 던져준 것은 물론이다.

이 연극의 힘은 '형식'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 데에 있는 것 같다. 무대는 1931년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무성영화의 형식을 빌린다. 무성영화라 함은 영상 자체에 소리가 없는 영화를 말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상영 때마다 라이브로 직접 소리를 입히고 화면 밖 '변사'가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고 한다.

<그때, 변홍례>도 마찬가지다. 우선 배우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대신, 무대 뒤 다른 배우들이 대사와 음향을 얹는다. 그리고 변사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이런 형식이 단지 참신한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연극의 주제의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욕망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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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없는 등장인물들"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효과음은 모두 다른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 자기 목소리를 가진 캐릭터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 변홍례다. 무성영화처럼 과장된 몸짓과 대사 때문에 우스꽝스럽고 연극적인 다른 인물들과 달리, 그녀는 유일하게 정적이고 사실성 있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하얗게 얼굴을 칠한 분장을 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조선인 하녀 변홍례가 아닌 일본인 '마리아'를 자처할 때, 그녀 역시 목소리를 잃는다. 혼자 현실에 발 딛고 있던 그녀가 다른 인물들처럼 무성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성영화가 그 시대 가장 인기 있는 양식이었단 걸 생각해보면, 소위 '아웃사이더'에서 벗어나 주류 세계에 편입되길 바라는 그녀의 욕망을 '무성영화적'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처절한 욕망도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짓밟힌다. 시작도 끝도 결국 다른 인물들의 욕망을 위한 희생양이 된 변홍례가 안타까웠다. 강렬한 이야기지만 허구성을 강조하는 특유의 형식 덕에 거리감을 두고 바라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인물들에게 느끼는 이런 우스꽝스러움, 희극성이 실제 우리 모습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가장 진정성 있는 표현방식이었던 무성영화가 지금 우리의 눈에는 허구적으로 보이듯 말이다.



#연극의 틀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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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변홍례>는 욕망이라는 주제 외에도 '연극'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즉 연극의 형식을 질문하고, 연극이 현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변사의 존재"

변사는 상황을 설명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이 내용은 이미 알고 있으니 지나가겠다"며 장면을 훅 건너뛰기도 하고, "잠깐"이라며 극을 멈춰 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변홍례가 울면서 뛰쳐나가는 장면이 있다. 관객들이 그녀의 가여운 처지에 감정이입하려는 찰나, 변사는 전개를 멈추고 "너만 힘드냐, 우리 다 힘들다"며 판을 깨뜨려버린다. 진지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웃음으로 승화된다.

이런 이야기꾼의 존재는 연극을 사실이 아닌 허구로 바라보게 한다. 관객들이 극에 빠져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이건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계속 깨우치는 것이다. 변사의 존재가 대표적이지만, 인물을 대놓고 따라다니는 조명 등 각종 무대효과까지 모든 요소들이 '연극성'을 강조한다. 보통 연극은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최대한 진짜같이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 극은 그 틀을 깨는 것이다.


"공연장 밖 연극"

심지어 이 연극은 공연장 밖에서도 계속된다. 8시 공연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로비 한켠에 마련된 세트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분장을 하고 있었다. 로비에서부터 연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연장 안과 밖, 무대와 관객석을 넘나들며 연극의 틀을 확장한다. 공연장 문을 경계로 일상과 연극이 뚜렷하게 나눠진다고 생각했던 내 무의식을 능청스럽게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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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마지막 장면은 현실을 대하는 이 연극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변홍례를 둘러싼 사건이 마무리되고 변사는 연극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흥겹게 배우들이 퇴장하는데, 무대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림자에 가려진 변홍례의 모습을 다시 비춘다. 이야기가 완벽하게 끝났음에 어떤 희열을 느낄 찰나, 뒤에 남은 변홍례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 너머 실재가 있음을 다시 깨우치는 것이다.

순간 내가 변홍례의 아픔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흥겨운 커튼콜로 모든 것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명확한 완결이 있을 수 없고, 실제 인물의 아픔 역시 무대 뒤에서 계속되곤 한다. <그때, 변홍례>는 이런 한계를 의식하고 연극 안에 담아낸 것이다. 일상과 연극의 경계를 또 한번 질문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재미, 그 이상

재미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정말 많았던 연극이다. 하지만 굳이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스크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간단한 소품으로 다이나믹한 효과를 내는 등 무대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작품이니 가볍게 즐겨도 좋을 것 같다. 극단 하땅세의 다음 작품에 기대가 더 커진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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