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episode 3.

글 입력 2019.07.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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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 to X] episod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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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나에게는 세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이다.

 

- p.327



애인에게 그의 삶의 세 가지 키워드가 무엇인지 물었다. 애인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애인도 내게 물었다. 내 삶을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해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세 단어로 설명하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는 남몰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을 떠올리며 그것과 내 삶의 간극을 헤아려보았을 것이다.


가령 사랑, 그것과 내 삶. 그 사이를 메꾸고 싶다는 욕망과 지난함.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내 삶의 세 가지 키워드는 영혼, 예술, 공동체라고 말해보았다. 나는 이 세 단어를 심보선에게서 훔쳐왔다. 그에게서 훔쳐오고 싶은 것이 비단 이 세 단어만은 아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그가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들을 모조로 훔쳐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쪽의 풍경은 환합니까? 그의 물음은 아주 멀리에서부터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 오는 것도 같고 어쩌면 바로 곁에서 넌지시 건네는 거 같기도 하다.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그의 안부, 그가 속한 세계의 안위를 묻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런 질문이 상실되고 더는 아름답지 않은 우리에 대해 생각한다.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은 지금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그는 어째서 그날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일까.


무언가를 묻는 일조차 버겁게 여겨질 때, 편리하고 간단한 것을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벼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삶을 에워싼 세 가지 수수께끼에 매일의 삶, 대화, 만남을 통해 답하고 다시 묻고 다시 답하길 그치지 않아야 한다. 가족과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 불현듯 우리를 통과하는 영혼을 감각하기 위해, 예술의 형식을 빌려 고상한 척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기 위해, 죽이지 않기 위해.

 

요즘은 부쩍 세계의 모든 것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걸음걸이로, 다른 속도로, 다른 표정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럴 때 두 가지 방법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들도 나와 같이 미숙한 모습으로 겪어냈을 일들을 떠올리기(사랑하는 친구가 일러준 방법이다.


그는 어색한 장소에서 쩔쩔매는 상황에 놓일 때면 클럽에 처음 간 신형철을 떠올린다고 하였는데, 그런 상상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기. 나는 그런 이유로 이런저런 모습의 심보선을 떠올린다. 그는 부지런히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고, 그는 가끔 아재 개그에 실패하고 엉뚱한 새를 벌새로 꼭 믿어버린다. 그는 투쟁 현장을 오가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분노하고 슬퍼한다.

 

어설프고 서글프고 어색하고 부끄러운 나는 자꾸만 더 어설프고 서글프고 어색하고 부끄러워진다. 마음을 죄는 일들을 끝없이 듣고 자꾸만 사람은 죽고 죽어 나가고 나는 그들의 죽음에 나를 대입하지 않을 수가 없고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엇인지 대답할 수 없고 모두를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면, 나는 큰 소리로 묻기로 한다. 해고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장에게,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에게, 삶의 현장을 공유하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모두에게, ‘그쪽의 풍경은 환합니까?’

 

우리는 자꾸만 그쪽의 풍경이 환한지 물어야 한다. 나는 영혼과 예술과 공동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에 대해 죽을 때까지 단 하나의 그럴싸한 답을 찾지 못할 것이며 어떤 해명도 성공적으로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라 예감한다. 나는 그저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세계를 부각하고 그 세계에 관여하며 성실하고 끈질기게 자꾸만 묻고 또 묻는 일을 하려고 한다.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된다. 나는 삶과 일, 삶과 작품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세사을 떠난 이들의 충고와 살아 있는 이들의 부름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기쁨과 슬픔은 그 사이 어디에선가 태어나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 p. 9




*

사진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스틸컷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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