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대인기피증 극복기 [사람]

나만의 방식으로 치료하다
글 입력 2019.07.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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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만 없으면 완벽한 그림인데


병원을 간 것은 아니었으나 단번에 대인기피증에 걸렸음을 알 수 있었다. 아주 꽤 오래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밝게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잘못 덧칠한 그림처럼 어색하게 붙어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남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어색한 그림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하나둘 모여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잡아먹힐 동안, 그저 외면해왔다. 어색한 기분을 낯가림으로 치부하며, 밝은 표정의 가면으로 감쌌다. 가면을 쓸 동안 완전히 잡아먹혔고, 잡아먹히자마자 두려움으로부터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숨고 싶은 마음부터 들었다.

여기까지가 상담의 요지였다. 해가 바뀔 무렵 찾았던 상담실에서 이처럼 말했던 것 같다.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낯가림이라고, 사회성 부족이라고 여겨왔던 순간들이 모두 아픔으로 인해 비롯된 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에 한 번 잘 살아보고자 극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 사람들을 안 만나보기


‘왜 이렇게 낯가림이 심해?
이래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사람 많이 만나다보면 나아질 거야’


어릴 적 사람들만 보면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두려울수록 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때는 그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꾹 참고 사람들에게 늘 밝게 웃어주고 대화를 건네는 노력을 이어갔다.

밝게 변한 나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성격이 좋아졌다, 사회생활을 참 잘하는 젊은이라는 등 칭찬을 듣자 대인기피증을 완전히 극복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밝기 위해 애쓰는 것이 너무나 지쳤고, 밝은 가면이 들통 난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안 만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피해버리는, 비겁한 행동일 뿐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인간관계에도 쉼표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했다.

이에 휴학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로움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외로운 나머지 엉엉 울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생겼고, 혼자 먹은 음식을 남들과 함께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아주 서서히, 나는 진정 누군가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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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 버리기 연습


싫어하는 사람을
내 가슴 속에 넣어두고 다닐 만큼
그 사람이 가치가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
나를 응원하는 친구만
마음에 넣어두십시오.

싫어하는 사람 넣어두고 다니면
마음 병만 얻습니다.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몇 년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다. 계속 기억해두고자 책갈피로 끼워놓기까지 했음에도, 나는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왜 나를 싫어할까?’라는 고민을 줄곧 해왔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싫어한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에 깊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떤 이도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만 상대의 미움을 사게 된 원인을 생각하다 보니. 다음부턴 어떠한 행동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이처럼 자신 없는 행동이 대인기피증의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미움받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문득 혜민 스님의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그 구절을 읽고, 그토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 또한 상대가 싫지만, 그저 상처받기 싫을 뿐이었다. 나를 싫어한다면 나도 똑같이 상대를 싫어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 더 그를 내 마음에 담아둘 이유가 없어진다. 이처럼 나는 ‘사람 버리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을 내 마음에서 보내고 나니, 마음속에 비어있는 공간이 차츰 생겨났다. 그래서 그 공간에 고마운 사람들을 채워 넣기로 했다. 살면서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고마움을 느꼈을까? 오랜 시간 깊이 생각하면서, 그간 잊고 지냈던 고마움이 기억났다. 내게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라고 말해준 사람, 울고 있는 나를 따스하게 안아준 사람, 내가 너무 좋아서 꿈에 나왔다고 말해준 사람, 나랑 이야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말해준 사람 등 여전히 따뜻한 말들이었다. 고마운 감정을 선사해준 이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깨닫게 됐다.

이처럼 나는 정말 자연스럽게 대인기피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아직 대인기피증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 말고도, 대인기피증을 인지하지 못해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인기피증을 치료하기 위해 무작정 사람들과 마주하려고 애쓰지 않길 바란다. 그보다 우선 스스로 얼마나 아팠는지 돌아보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당신도, 나도 세상의 무리 속에서 진심으로 웃으며 볼 수 있지 않을까.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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