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서 너는 뭐가 다른데 - 소셜포비아 [영화]

글 입력 2019.07.2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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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상론>을 썼던 존 밀턴은 공론장의 기능을 역설했다. 공론장은 토론과 논의의 공간이다. 토론과 논의는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박하며 더 좋은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에서부터 공론장이 만들어진다. 밀턴은 공론장이 마련된다면 사회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17세기 시민혁명이 발발할 무렵이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다.


지금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 온라인 공간이다. 개인은 거기서 자유로이 자기 의견을 펼친다. 의견은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온라인 공론장은 얼굴이 노출되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된다. ‘ㅋㅋㅋㅋ’ 따위의 조롱 섞인 주석을 첨부해도 당신을 모욕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가상의 공간이고 전원 끄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활자일 뿐이다.


내 말이 맞다는 고압적 태도나 인신공격이 질문을 대체한다. 예의 있는 반박보다 상대를 힐난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관전하는 이들은 기발한 욕, 재미있는 댓글에 더 반응한다. 밀턴의 예측은 틀렸다. 자유는 자기 발언에 대한 책임감의 부재를 몰고 왔다. <소셜포비아>는 온라인의 이 같은 풍경에 대해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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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과 용민은 민하영이 자살한 현장에 있었다. 트위터 유저 ‘베카’는 군대 내 부조리에 시달리다 자살한 군인을 지속적으로 모욕했다. 베카가 민하영 임을 확인한 그들은 민하영과의 ‘현피’를 방영하겠다는 인터넷 방송 BJ의 공모에 동참한다. 지웅과 용민뿐 아니라 십 수 명이 모인다. 군인 인권을 조롱한 민하영의 발언에 같은 남성으로서 모멸감을 겪었고 해당 군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는 명목은 허울일 뿐이다.


그들 대부분은 웃고 있다. 장난감을 개봉하기 전의 표정 같다. 마음껏 경멸할 대상을 찾아 욕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 지지부진 나아지지 않는 일상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망, 배설의 욕망으로 이들의 웃음을 이해하면 될까. 그것만으론 거기 모인 모든 인물의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영화는 구태여 여타 인물들의 전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신분, 지위, 소속 따위를 설명하는 장면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배설의 욕망이 이데올로기처럼 번진 혐오 감정의 원인이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간편하다. 모욕하고 조롱하는 감정의 기반엔 유희가 있다. 그냥 혹은 재미있어서. 당신과 나는 순전히 재미있어서 당신을 놀리고 모욕하고 조롱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수치심을 유발한다. 일베에서 통용되던 ‘-충’이 주류 언어로 부상했음이 이를 증언한다.


민하영의 당황하고 겁난 표정을 예상했던 그들은 본인들이 당황하고 두려워진다. 시체를 발견한 뒤 그들은 신고하는 게 아니라 민하영에게 게재했던 글들을 삭제하는데 혈안이다. 경찰은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언급하지만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시체를 목격한 자기들 역시 피해자 아니냐는 담론이 생긴다. 영화는 그때 지웅의 표정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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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은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질문하는 인물이다. 용민을 비롯해 다른 인물들이 자신과 민하영의 죽음 사이 인과를 지우기 위해 사활을 걸 때 지웅은 자문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렇게 하니까. 그냥 재미있어서 한 것뿐인데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라고 말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지웅은 민하영은 어떤 인간이었을까, 왜 사람들을 매장하고 그랬을까,를 생각한다.


당사자의 처지에 이입하려는 시도는 스스로가 뱉었던 말들의 무게를 체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임지려 한다. 모두 그러니까, 재미있으니까, 란 문장은 언뜻 온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은 책임의식을 희석한다.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지 장전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는 지웅처럼 자문해 볼 수 있다. 책임질 수 있다. 거대한 장단에 맞추다가도 대열에서 이탈해 내 발언에 장착된 성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는 그게 필요하다고 말하며 지웅을 옹호한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인터넷 방송 채팅창에서 ‘ㅋㅋㅋㅋ’ 따위의 웃음소리를 첨언하는 이들이 가장 무서운 이들이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혹은 죽음을 중계하는 과정에서도 분별없이 웃는 풍경은 영화 속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지금 내 사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무섭다. <소셜포비아>는 그 채팅창 너머의 당신에게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무관하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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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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